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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그림
▲ 존자암 대웅전 대웅전 그림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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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영실에 있는 볼레오름 기슭에는 고승의 수도장으로 알려진 절집이 있다. '덕이 높고 큰스님이 암자를 짓고 거주하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집 이름은 존자암. 존자암은 '한국 불교 최초인 적멸보궁이 봉안돼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간에는 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존자암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산사 가는길
▲ 산사 가는길 산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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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존자암 가는 길

가을이 익어가는 10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제주공항에서 1100도로를 타고 한라산 쪽으로 달리다 영실 부근에 도착했다. 자동차를 1100도로 영실입구 갓길에 세워놓고 한라산 영실매표소 방향으로 걸었다. 1100도로에서부터 영실매표소까지는 30분 정도. 이 길은 사계절 한라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영실매표소에서 왼쪽으로 길이 하나 있다. 예전에 이 길은  조릿대가 무성한 산길이었다. 이 길의 특별함이 있다면 길 끝에 절집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길은 절집의 복원사업으로 새롭게 단장돼 있다.

한라산의 백미라 일컫는 영실은 사계절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영실매표소에서 존자암 가는 길은 늘 호젓하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신이 숨겨 놓은 산길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서어나무 이파리는 노랗다 못해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조릿대 사이에 홀로 서 있는 단풍은 최고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꽃인 듯 열매인 듯 아리송한 천남성열매가 산기슭에서 나그네를 유혹했다. 이렇듯 존자암으로 오르는 1.2km 산길은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노루가 살고있는 산사

노루
▲ 노루 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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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매표소에서 40분 정도 걸었을까? 볼레오름 능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볼레오름 기슭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서귀포시 하원동 해발 1280m 존자암, 드디어 절집에 도착했다. 2만800㎡ 정도 되는 절집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터였다.

산사의 가을 하오는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이 정적을 깨는 이가 있었으니 조릿대 속에 숨어 있던 노루였다. 먹이를 찾아 나들이를 나온 노루는 도망가지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

"그 녀석, 무얼 달라는 건가?"

산사를 찾은 내 마음을 훔쳐보듯, 노루는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기와편 탑
▲ 탑 기와편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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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탑 비밀은 무엇일까?

종무소 앞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었다. 이 탑은 복원작업 후에 생긴 탑이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조사하면서 나온 기와 편이라 하는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이 돌탑 같았다.

약수
▲ 약수 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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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 숨겨진 보물이 있다면 약수가 아닌가 싶다. 종무소 앞에 흐르는 약수에는 '먹는 물'과 '세수하는 물'로 구분이 돼 있었다. '먹는 물'에 목을 축이며 내 안에 든 세속의 때를 벗기는 것처럼 시원하다. '세수하는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의 온도에 겨울을 느꼈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는 산사 절집에 켜진 촛불 같았다. 그 촛불은 대웅전 앞에도 종각 옆에도, 볼레오름 기슭에도 타고 있었다.

종각
▲ 종각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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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에서 교회당 종소리를 기억하다

종각을 보니 어렸을 때 새벽마다 들었던 교회당 종소리가 생각났다. 절집 종각에서 교회당 종소리를 기억하다니. 새벽 4시에 울렸던 교회당 종소리든 절집 종각에서 울려 퍼지든 종소리는 모두 사람의 마음을 깨어나게 하는 소리인 것 같다.

대웅전
▲ 대웅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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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 대웅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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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복원된 대웅전과 국성각 그리고 요사채를 두루두루 살피자니 복원 전에 만났던 존자암이 떠오른다. 절집은 새롭게 단장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예전에 복원되지 않았던 절집의 풍경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존자암 세존사리탑
▲ 존자암세존사리탑 존자암 세존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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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최초 사찰에 대한 의견 분분

존자암에 대한 의미는 분분하다.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의 불교문화가 제주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존자암을 말한다. 존자암 가는 길 입구 간판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불교 최초 사찰, 2500년 전 탐라국 발타라 존자 창건. 한라산 영실 종자암(적멸보궁). 제주도 문화재 43호. 존자암세존사리탑 문화재 17호’.

2500년 전 탐라국 발타라 존자 창건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러나 세간에 이를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특히 존자암이 한국불교 최초 사찰이라는 의미는 대단한 일이지만, 이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하다. 

<고려대장경> <법주기>에 '부처님의 16존자 가운데 6번째 발타라 존자가 탐몰라주에 머물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탐몰라주를 제주의 옛 이름이고 그 절터가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존자암이다'라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존자암은 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에 나한을 모셨던 절로 기록되었다 한다.

더욱이 세간 사람들은 존자암의 창건 시기를 놓고 그 의견 또한 분분하다. 그 중 존자암은 제주도에 3성(고씨, 부씨, 양씨)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존자암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서 어떤 이는 존자암은 기원전 540년,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직후, 존자암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억지라 반박한다. 이는 <고려대장경> <법주기>에 나타난 발타라 존자의 탐몰라주의 불법 전승에 대해 탐몰라주는 탐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세계의 관념적 공간이라 말하기도 한다.

때문에 존자암의 존재는 우리나라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존자암이 한국불교 최초 사찰임이 확인된다면 이를 성역화 하는 작업 또한 필요 하다는 생각이 든다. 

존자암세존사리탑 안내판
▲ 안내판 존자암세존사리탑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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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암 세존사리탑의 비밀

존자암에서 가장 관심이 되는 것은 절집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존자암 세존사리탑이었다. 세존사리탑은 부도를 말한다. 하지만 존자암의 부도는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이기도 하지만,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하기도 한다. 그럼 존자암에서 일컫는 세존사리탑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종 모양으로 생긴 존자암의 부도는 연꽃의 봉우리처럼 생겼다.  2000년 11월 1일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존자암세존사리탑 앞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다.

한중일 불교 최초 전래지로써 탐라국 제6존자 발타라 존자가 2550년 인도에서 모셔온 세존사리탑입니다. 탐락국 역사와 한국불교가 살아 숨쉬는 성스러운 성지오니 경건하게 참배하십시오. - 한라산 영실 적멸보궁

존자암 세존사리탑은 석종형에 속하는 장구형으로 재질은 현무암이다. 이 탑은 '돌종'이라 불러왔다. 팔정도를 상징하는 팔각형 하대석 위에 원형의 괴임돌을 놓고 탑신석과 두툼한 옥개석을 얹었으며 꼭대기에는 옥개석과 같은 돌로 보주를 장식하였다. 하대석 위 둥근 괴임돌 가운데에는 큼직한 사리공이 탑신석 아래 오목하게 생긴 모양과 꼭 맞물리도록 되어 있다. 장구형 탑신석은 아래 위를 평평하게 다듬었으며 가운데에서 상·하단에 이르는 부분이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국성지위
▲ 국성지위 국성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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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와 단풍
▲ 기와와 단풍 기와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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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암, 불교문화에 촛불처럼 타오르길...

제주도문화재 43호로 지정된 존자암, 제주도유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된 세존사리탑, 한라산 볼레오름 기슭에 자리잡은 존자암은 분명 문화재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건시기와 '탐몰라주'의 의미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존자암의 터는 앞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10월, 존자암의 가을은 촛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존자암이 한국 불교문화에 촛불처럼 활활 타오르길 기대해 본다.


태그:#존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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