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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달려온 기차는 동천을 가로질러 종착지 여수로 달아난다. 동천을 지난 강물은 갈대 숲 을 따라 순천만으로 흐른다. 바다와 만난 강물은 순천만에 잠시 쉬어간다. 달과 해의 유혹에 욕망을 접고 순천만에 머물기도 한다. 그렇게 수천 년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칠면초와 퉁퉁마디가 씨를 뿌렸고, 갯지렁이와 붉은 농게가 집을 지었다. 갈대도 자랐다.

 

흑두루미와 물떼새도 둥지를 틀었다. 갯벌에 터전을 잡은 붉은 칠면초가 셀 수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짱뚱어를 잡는 노인의 낚시대가 허공을 가른다. 그물을 터는 어부의 모습이 갯벌에 묻혔다. 칠게를 찾는 도요새나 갯벌을 연신 퍼먹는 칠게와 다를 바 없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두렁 옆에 갈대가 무성하다. 

 

새벽바람에 갈대숲이 사각거린다. 누군가 그랬다. 막 식을 올린 신부가 첫날밤 옷을 벗는 소리라고. 갈대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보인다. 작은 구멍에 눈자루를 올리고 때를 기다리는 '방게'와 '농게' 소리도 들어야 한다. 주둥이를 흔들며 갯일을 하고 있는 짱뚱어도 보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아야 느낄 수 있다.

 

순천만의 갯골은 S라인이다. S라인에 걸린 해는 그 어떤 여체보다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행운을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차례 찾아왔지만 매 번 다음에는 꼭 볼 수 있겠지하는 기대만 안고 돌아왔다. 갯골에 걸린 해를 보려면 한 달 여는 족히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순천만을 가로지른 해가 산 능선에 앉아 얼굴을 붉힌다.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작은 솔숲을 깨운다. 순천만 마지막 염전은 새우양식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 때 순천만에 투기바람이 불었다. 개발바람도 불었다. 이들 바람도 '갈대바람'을 넘지 못했다.

 

 

순천만 갯벌은 순천을 지난 동천, 이사천, 해룡천이 남해바다와 만나 형성되고 있다. 그 사이에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있다. 구불구불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갯벌과 바다에 기대어 갯사람들이 살고 있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순천만은 별량면, 해룡면, 도사동에 500여 명 어민들이의 생활터전이다. 건강망을 놓아 장어도 잡고, 꼬막양식을 하기도 한다. 솜씨 좋은 사람들은 홀치기로 짱뚱어낚시를 하기도 한다. 순천만 밖 여자만에서는 전어와 멸치를 잡고, 김양식을 하기도 한다.

 

동천과 이사천 합류지점에서 시작되어 순천만에 이르는 3.5km 70ha 거대한 갈대군락. 이것이 순천만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비밀이다. 이들 갈대와 갯벌이 해양과 육상생태계의 경계에서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 태풍과 해일 그리고 홍수 등 자연재해를 예방하고 기후조절역할까지 한다. 인간들이 내뱉은 각종 생활쓰레기를 온몸으로 분해하는 것도 갯벌이다.

 

순천만은 갈대, 염습지, 갯벌, 갯골, 바다로 구성되어 있다. 갈대밭에는 물억새, 쑥부쟁이 등이 자라고, 염습지에는 칠면초가 군락을 이룬다. 염전도 있었다. 지금은 일부 새우양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갯벌에는 칠게, 짱뚱어, 갯지렁이, 망둑어 등이 살고 있다. 주변에는 쌀농사와 밭농사 그리고 미나리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이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국제희귀종과 천연기념물 먹이와 서식지를 제공한다. 특히 세계 생존 개체수의 1%에 해당하는 100마리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기 위해 매년 찾고 있다. 그 결과 순천만은 2006년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다. 람사르협약은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습지 훼손을 막기 위해 조인된 협약(물새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이다.

 

 

그곳에 사람이 머물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몇 백 년 쯤 될까. 갯골에서 고기도 잡고, 갯벌을 막아 농사도 지었다. 겨울철엔 꼬막을 주고, 봄철에 숭어를 주었다. 짱뚱어를 잡아 생활하기도 했다. 가을엔 아름다운 갈대와 붉은 칠면초도 주었다. 아낌없이 내주었다.

 

순천만은 개발중이다. 농지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농부들과 경운기가 오가던 제방은 관광객을 싫은 탐방열차가 차지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마을앞으로 대형버스가 무시로 드나든다. 쉬는 말에는 골목과 농로가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들로 가득하다. 벼농사와 미나리 농사를 짓는 인근 주민들 삶도 불안하다. 주민들의 삶이 박제화될까 걱정이다.

 

이들의 삶이 배제된 갯벌과 바다는 보전보다는 왜곡된 개발로 줄달음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지어진 건물에 새주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주민들의 삶이 만들어낸 문화 '순천만 사람들'의 삶도 생태사슬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순천만이 차별화된 관광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들이 순천만을 보전하고 이용해야 후대에게 전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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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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