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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떨어지는 흐린 날씨에 도착.
▲ 상크티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입성 빗방울 떨어지는 흐린 날씨에 도착.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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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도시가 1514년 투이니쿠 강(Rio Tuinicú)을 끼고 세워졌으며, 1524년 야야보(Yayabo) 강기슭으로 옮겨진 쿠바 내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란 말이지?'

가이드북을 훑어보다가 쿠바 내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짤막한 한 구절에 시선이 멈춰졌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쿠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순간 마음이 흡족해지며 지명도가 높지 않은 낯선 도시에 온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의 화원에 나만 특별히 발을 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달리기만 하는 주행보다는 오전에는 자전거를 잠시 세워 놓고 천천히 도시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계란버전, 햄치즈버전, 패티버전 등이 있으며 하나에 5페소(약 200원) 정도 한다. 생각 외로 맛도 괜찮고 속이 든든하다.
▲ 아침 식사로 먹은 햄버거 계란버전, 햄치즈버전, 패티버전 등이 있으며 하나에 5페소(약 200원) 정도 한다. 생각 외로 맛도 괜찮고 속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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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듯한 '붉은 꽃'이란 의미다. 열정적인 색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쿠바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란다.
▲ 플램보이언트(Flamboyant) 타는 듯한 '붉은 꽃'이란 의미다. 열정적인 색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쿠바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란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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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내륙도시에 대한 기대를 품고

먼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서 첫머리에 나오는 이 도시의 최고의 유명한 볼거리라는 뿌엔떼 야야보(Puente Yayabo)로 향했다. 1815년에 스페인에 의해 세워지고 지금은 국립 기념물이 된 다리라니 식민지 시대 유물이 그렇듯 얼마나 멋지고 화려할까 기대가 꽤 컸다. 더구나 이곳을 통과해 야야보 강을 건너면 바로 도시가 나오니 다리의 전략적인 면 또한 중요해 보였다.

'가만있자. 이 조그만 다리는 뭐지? 분명 여기쯤에 강 하나가 나오고 다리가 나와야 할 텐데?'

고개를 푹 숙이고 지도를 살펴보았지만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야야보 다리는커녕 강 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지도대로 왔는데 엄한 곳으로 빠졌나? 여기가 아닌가? 웬 하천이 있긴 한데…. 에이, 또 길을 잘못 들어왔나 보군.'

내 눈에 보이는 건 가당치도 않은 작은 하천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돌다리 뿐이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실례합니다만 여기 유명한 야야보 다리가 어디에 있나요?"

지나가는 행인에 물어보니 어깨를 들썩이며 내 뒤를 가리킨다.

"당신 뒤에 있잖소!" 
"네?"
"바로 여기가 야야보 다리요, 난 바빠서 이만."
"여…기…? 설마, 이게?"

처음엔 정말인가, 왜인가 의심할 정도로 생각보다 특색없고 미미한 다리 규모에 놀랐다. 더욱이 처음 만났을 때 제법 폭의 규모가 있었던 야야보 강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 야야보 다리(Puente Yayabo) 처음엔 정말인가, 왜인가 의심할 정도로 생각보다 특색없고 미미한 다리 규모에 놀랐다. 더욱이 처음 만났을 때 제법 폭의 규모가 있었던 야야보 강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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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는 가이드북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전경.
▲ 야야보 다리(Puente Yayabo)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는 가이드북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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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나 덴마크 코펜하겐을 유럽 대륙과 연결시켜주는 스토레벨트교급 구조물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하다못해 광한루의 오작교 정도의 미적 가치는 되어야 국립 기념물이란 칭호가 섭섭하지 않을 것 아닌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밑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옆에서 봐도 왜 가이드북 상크티스피리투스편 볼거리 첫머리에 가타부타 부연 설명도 없이 유명하다고 떡하니 기록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애걔, 이게 그 유명한 야야보 다리?

건축학도는 아니지만 그 시대 특별한 공법을 썼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설이라도 있는 걸까, 무슨 역사적 의미라도 부여되어 있는 건 아닌지? 왜 유명한 건지는 며느리도 몰랐다. 물어봐도 대답은 그냥 유명한 곳이란다. 해서 가장 오래된 내륙도시를 잇는 상징적 의미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상크티스피리투스와의 싱거운 대면이었다.

얄궂게 정체를 드러낸 소박한 야야보 다리 위로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몇 명이 지나가는 한산한 풍경이다가도 어느 순간 수십 명이 우르르 지나가고 또 휑하니 비어있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소소하지만 챙겨 가 볼만한 여러 장소들이 나타났다.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탑에 만들어진 시계가 인상적이다.
▲ Iglesia Parroquial Mayor del Espiritu Santo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탑에 만들어진 시계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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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아주 특별한 교회(Iglesia Parroquial Mayor del Espiritu Santo)가 있다. 겉보기에는 다른 교회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 하지만 이 교회는 1522년 목조로 지어진 뒤, 1680년 다시 돌로 재건축되었다. 거의 도시의 역사와 같이 해 온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특히 내부는 천장이 정말 화려하다는 얘기에 꼭 보고 싶었지만 얼마 전부터 매일 오후 5시와 일요일 오전 9시에만 입장이 허용된다고 해 안타깝지만 외관만 감상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화려한 천장이라고 난리도 아니게 광고 하기에 찾아갔던 멕시코의 숱한 성당들을 봤으면 욕심도 줄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상크티스피리투스 역시 여느 도시들처럼 소소한 몇 개의 박물관이 있는데 대부분이 얼마 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유료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에 가서도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처음만 빼고서는 별 감흥이 없었기에 차라리 유일하게 무료입장이었던 작은 미술 전시관(Galeria de Arte)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지역 화가였던 오스카 페르난데스 모레라(Oscar Fernandez Morera, 1890-1946)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림과 건물의 허술한 관리가 아쉬웠고, 미술관 크기에 비해 그림이 다소 적어 보였다. 그래도 이런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
▲ 미술 전시관(Galeria de Arte) 내부 그림과 건물의 허술한 관리가 아쉬웠고, 미술관 크기에 비해 그림이 다소 적어 보였다. 그래도 이런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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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정물화가 인상적이었다.
▲ 오스카 페르난데스 모레라(Oscar Fernandez Morera)의 작품 소박한 정물화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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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특별한 뭔가는 없었지만

번화가에 자리 잡은 미술관치고는 그 내부는 여백의 미라고 하기에 뭔가 석연찮을 정도로 몇 점 전시되지 않아 썰렁해 보였다. 게다가 언제가 마지막 청소였는지 그림이나 건물이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림은 감히 미술을 평론할 수도 없는 저질센스의 내 눈으로 보기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일상의 시선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한 정물화가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 예술가를 예우하고 시민들에게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가장 번화한 거리에 무료로 개방하여 당당히 다른 박물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 때문에 박수쳐 줄만 하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무료는 참 좋은 것이다.

세 곳을 둘러보니 거의 정오가 다 되었다. 들른 곳 말고도 몇 군데 더 가볼만한 곳이 있었긴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으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장 오래된 내륙도시라는 메리트 때문에 기대가 컸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큰 여운을 안겨주지 못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오래된 도시를 둘러보며 특별하고 화려하고 뭔가 큰 것만 찾아다니려는 것에 길들여진 여행버릇을 잠시 떨쳐낼 만한 의의를 찾았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 유명세에 흔들리지 말고, 내 느낌대로 여행해 보자는 확신을 더욱 깊게 새겼다.

사회주의에도 자본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
▲ 구두닦이 사회주의에도 자본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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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내륙 도시답지 않게 중앙 광장은 현대적인 거리로 조성해 놓았다. 이곳이 사회주의 쿠바인가 할 정도로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하다.
▲ 상크티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번화가 가장 오래된 내륙 도시답지 않게 중앙 광장은 현대적인 거리로 조성해 놓았다. 이곳이 사회주의 쿠바인가 할 정도로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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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둘러보고 나니 남는 건 두 바퀴가 달린 자전거요, 말없이 이끄는 건 도로며 나는 어쩔 수 없는 자전거 여행자였다. 다시 자전거 안장 위로 올랐다. 우울하게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라이딩인아메리카, #자전거여행,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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