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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항상 청바지 차림으로 기억된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항상 청바지 차림으로 기억된다.
ⓒ 이유없는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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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이후론 평소대로 아빠라고 부르겠다. 나이가 있으니 아버지가 알맞은 것은 알지만 아빠가 더 친근한 느낌인 건 왜일까?)의 청바지를 택배로 보내드렸다.

우리아버지는 얼마전 40년에서 몇개월 부족한 시간을 교직에 계시다 퇴직을 하셨다.

고지식하신 분이라 평생 한여름에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하시던 아빠. 나에게 아빠의  모습은 항상 정장바지에 와이셔츠, 남방차림이셨다.

덕분에 엄마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또는 우리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던 바쁜 아침에도 아빠의 손수건, 와이셔츠, 양복바지를 다림질하셔야 했다.

그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는 아빠에게 청바지 한 벌 없다는 걸 몰랐다.

엊그제 아빠가 전화를 하셨다. 엄마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신다. 식사와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묻다가 입을 바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다림질해드릴 깔끔한 성격의 엄마가 안계시니 꼬깃꼬깃 주름진 바지 밖에 없어 입을 바지가 없으시다는 거였다.

"티셔츠에 청바지 입으시면 되죠"라고 말했으나, 이럴 수가. 아빠가 청바지 한 벌이 없으시단다. 그러고 보니 난 아빠가 정장바지나 빳빳이 다려진 면바지를 입은 모습 밖엔 본 적이 없다.

"왜 나는 내 청바지랑 옷들은 수없이 샀으면서 아빠가 청바지 한 벌 없으시단 걸 생각 못하는 부족한 딸이였을까?"
"아빠는 과연 좋아서 정장바지와 면바지만 고집하신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의 청바지를 사서 보내드렸다. 아빠가 원해서 불편한 정장바지만 고집한 건 아니실 것이다. 아빠는 당연히 정장바지에 와이셔츠, 넥타이 차림이어야 된다는 선입관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워 스스로를 가둬놓은 건 아닐까?

이제 정년퇴직하시고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으시다는 아빠.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아빠를 얽매어두던 불편한 정장바지와 넥타이는 이젠 잠시 벗어두시길.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보내드린 청바지 입고 많은 곳을 여행하시며 사셨음 좋겠다. 덕분에 엄마도 몇십년을 해오신 바지 다림질에선 이젠 해방이실 것이다.

항상 빳빳한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피곤해하며 퇴근하시던 아빠도 대학교 때는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자유롭던 통기타세대의 젊은 청년이셨겠지? 다음번엔 유행하는 청바지를 한 벌 사들고 내려가서 아빠의 젊은 시절은 어떠하셨냐고 물어봐야겠다. 평생 양복차림으로 벌어오신 돈으로 이만큼 자란 난 오늘 너무너무 죄송하고 부끄럽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다음블로거뉴스에 동시 송고한 기사입니다.



태그:#청바지, #효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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