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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을 거슬러 올라 용현계곡 끝으로

보원사지 발굴 현장 전경
 보원사지 발굴 현장 전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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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에 가기 위해서는 신창리에서 647번 도로를 따라 운산면소재지 방향으로 가다 618번 도로를 만나 우회전해야 한다. 이 도로는 고풍리와 원평리를 지나 봉산면 봉림리로 이어진다. 이 길은 역천을 따라 이어진다. 역천은 가야산의 한 줄기인 석문봉(653m)에서 시작해 서해바다인 당진군 석문호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보원사지는 고풍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강상교를 건너 바로 오른쪽 소로를 따라 가야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나 있는 골짜기가 바로 용현계곡이다.

용현계곡은 골이 깊고 물이 맑아 이 지역 최고의 피서지이다. 여름이 지나 그나마 한적하지 여름에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이 골짜기에는 고란사와 마애삼존불이 있고, 더 상류에 보원사지가 있다. 우리는 ‘꽃피는 산골’에 점심을 예약했기 때문에 이들 유적지를 지나 조금 더 계곡으로 올라간다. 버스가 가기에는 길이 좁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꽃피는 산골’까지 들어간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편하게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버스는 차를 돌리기 위해 뒤로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보원사지 중심부
 보원사지 중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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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정말 심산유곡 골짜기에 들어앉았다. 이곳에서 문화재청장이 식사를 했다고 누가 귀뜸을 한다. 문화재청장이 보원사지 발굴 현장에 들렀다가 들른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전화로 음식을 주문했기 때문에 음식이 금방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가스레인지가 적은지 한번에 15인분 정도 밖에는 나오질 않는 것이다. 음식이 세 차례에 나눠 나오니 점심을 먹는데 1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나마 음식 맛이 괜찮아서 넘어갔지, 음식 맛까지 없었으면 회원들의 원성이 대단했을 것 같다. 답사라는 것이 늘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보통 답사는 아침 8시에 출발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므로 대개 오전에 한두 군데 정도 답사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보통 1시나 2시 사이다. 그리고 나서 오후에 세 군데 정도 답사를 한다. 답사지가 가까이 있으면 네 군데도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적게는 네 군데 많게는 여섯 군데 정도를 보게 된다. 그리고 늦어도 여섯 시 정도에는 답사지를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아홉시까지 출발지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찾은 보원사지 발굴 현장    

보원사지 발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보원사지 발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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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보원사지 발굴 현장으로 걸어서 내려간다. 한 이백 미터 정도 내려가니 왼쪽으로 넓은 평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1987년 7월10일 사적 제316호로 지정된 서산 보원사지이다. 지정면적만 10만 2886㎡로 3만 평이 넘는 방대한 지역이다. 이곳은 국립 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6년부터 발굴에 들어가 현재 3차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발굴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2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발굴조사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보원사지의 사역 범위를 확인하는 일이다. 두 번째가 보원사의 가람 구조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이러한 발굴과 연구를 토대로 보원사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러한 발굴 조사를 통해 보원사 유적을 종합적으로 정비하고 복원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려는 것이다.

보원사 당간지주
 보원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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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현장으로 접근하니 저 멀리 당간지주가 눈에 들어온다. 보원사지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역천의 지류를 중심으로 동편의 예토 영역과 서편의 불국토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예토 영역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유물이 당간지주와 석조이다. 당간지주는 하천의 동쪽 예토 영역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고, 석조는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당간지주(보물 제103호)는 양식과 조각수법에서 절제와 균형을 나타내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당간지주가 70㎝ 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안쪽 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바깥 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넓은 띠를 새겼다. 기둥의 윗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글게 깎아 놓은 형태이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약간 넓어져 안정감을 준다. 마주보는 당간지주의 안쪽 꼭대기에 네모난 홈을 팠고, 아래 부분에도 네모난 구멍이 있어 당간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했다. 당간 받침돌은 직사각형으로 2단이며, 윗면의 중앙에는 당간을 끼우기 위한 둥근 구멍이 파여 있다.

보원사지 석조
 보원사지 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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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는 사찰에서 쓰는 물통(水曹)으로 반원형, 팔각형, 사각형 등으로 되어 있다. 이곳 보원사 석조(보물 제102호)는 화강석을 파서 만든 직육면체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톤 정도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고 내부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다. 바닥 한쪽에 8㎝ 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풍상을 겪었을 텐데도 화강석의 밝은 회색빛이 너무나 깨끗해 보인다. 최근 발굴하면서 세척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원사지 한 가운데 우뚝한 오층석탑

보원사 오층석탑
 보원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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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를 보고 나서 발굴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개울을 건넌다. 한 4-5m쯤 되는 개울이다. 남쪽의 석문봉에서 흘러내리는 역천의 지류로 물이 아주 깨끗하다. 이 개울에 돌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보니 보원사지가 완벽하게 구획 정리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남북으로 14칸, 동서로 10칸이다.

보원사지를 다시 영역별로 구분해보니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보원사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긴 축대를 중심으로 하단에 부속 건물지가 보인다. 그리고 축대 상단으로는 오층석탑과 금당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중심 건물지가 보인다. 여기서 다시 서쪽 산으로 가면 다시 한 단 위에 법인국사 보승탑과 탑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 탑과 탑비 오른쪽으로는 건물지가 보이는데 이것은 법인국사 영당과 산신각 등으로 추정된다.

오층석탑 기단부에 8부중상이 보인다.
 오층석탑 기단부에 8부중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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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오층석탑 앞으로 간다. 오층석탑은 금당지 앞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보원사 한 가운데 위치한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 기단 옆면에는 사자상을 새기고 위 기단 옆면에는 사방으로 2구씩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겼다. 8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상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석탑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8부중상은 동쪽에 건달파와 긴나라, 서쪽에 천(Deva)과 가루라, 남쪽에 아수라와 나가(龍), 북쪽에 야차와 마후라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에서도 서쪽의 천과 가루라, 남쪽의 아수라와 나가 상이 아주 선명하다. 천은 하늘나라에 거주하는 신으로 오른 손에 금강저를 왼손에 보주를 들었다. 작은 입에 코만 있고 눈은 보이지 않는다. 가루라는 3면에 얼굴이 있고 팔이 6개인 우아한 여인의 모습이다. 보주로 된 목걸이, 합장한 양손, 들어 올린 손에 들려있는 공 등이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쪽의 아수라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왼손에 일월도를 들고 있다.

8부중상 중 서쪽에 있는 천과 가루라
 8부중상 중 서쪽에 있는 천과 가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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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탑신부의 1층 몸돌 각 면에는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은 편으로 온화한 체감률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이 넓은 것은 백제계 석탑 양식을 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이 남아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의 무게를 고정하는 쇠꼬챙이(擦柱)가 높이 솟아있다. 이곳에 복발, 보륜, 보주 등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탑은 장중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고려 전기의 우수한 석탑이나 조각기법이 형식적으로 흐른 것 같아 조금 아쉽다.

1968년 6월 오층석탑을 해체, 수리한 적이 있는데 이때 탑 안에서 금동 사리갑(舍利匣)이 발견되었다. 석탑의 5층에서 발견된 이들 일괄 유물로는 금동 사리외갑(舍利外匣), 납석소탑(蠟石小塔) 12점, 유리 사리소병(琉璃舍利小甁) 1점, 금동 사리내갑(舍利內匣)과 각종 주옥(珠玉) 등이 있다. 특히 금동 사리외갑 바닥면에는 4행의 게송(偈頌)이 음각되어 있다.

모든 법은 연기에서 비롯되니  諸法從緣起
여래께서 그 연유를 말씀하셨다. 如來說是因
저 법은 인연이 다하였으니  彼法因緣盡
이것이 큰 사문의 말씀이다.  是大沙門說

보원사지 발굴 현황과 조사 결과 <2008년 서산 보원사지 발굴조사 자료>

발굴지역 유구 현황도
 발굴지역 유구 현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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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 기간           조사 지역(면적)          대표적 조사 내용             출토 유물

2006.3-2006.6       사역 북동편 일대          건물지 4동                   “丙子三月日文…”
(1차 발굴 조사)     (1,300㎡)                    보도시설 1기                명문와 등 60여점
                                                          담장지 2개소
                                                          암거 시설 2기

2006.5-2006.12      오층석탑 주변              조선시대 금당지           “普願寺三寶” 명문와,
(1차 발굴 조사)     중심부(5,000㎡)           사역 중심 건물지           龍紋 암막새 등
                                                          (ㅁ자형 유구 등)           100여점
                                                          담장지 2개소

2007.3-2007.12      오층석탑 중심부           고려시대 금당지            元祐通寶, 풍탁 등
(2차 발굴 조사)     외곽지역(7,703㎡)        부도전 및 건물지 21동     900여점
                                                          담장 10개소
                                                          석축, 축대, 대축대 등

2007.10-2007.12     보원사지 남북방향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긴급 발굴 조사)    관통도로 내 상수도      담장 및 각종 부석시설    900여점
                          공사 구간(443㎡)

2008.3-2008.12      오층석탑 주변             사역 내 건물지 세부조사  금동보살좌상,
(3차 발굴 조사)     중심부 및 외곽지역      부도전 주변 확장 조사     보상화문전 등 270여점
                         (16,130㎡)                  사역 동쪽 다리시설 확인  (2008년 7월 현재)
                                                         건물지 세부 정밀 조사

2008.3-2008.12      석조 주변 사역            석렬, 담장지, 건물지 등   철제솥, 연화문수막새 등
(3차 발굴 조사)     동편 일대(7,500㎡)                                         20여점 (2008년 7월 현재)



태그:#보원사지, #당간지주, #석조, #오층석탑, #8부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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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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