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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거들랑 생애굿이나 걸게 잔 해주고 어르신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음식대접 하여라.'

월급을 미리 받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신의 상여굿을 당겨하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유언까지 남겼다. 이게 어디 예사 굿이던가. 굿 중 으뜸이요 소리 중 최고인 상여굿이요 상여소리 아니던가. 기어코 일을 내고 말았다.

소포리 마을축제에 상여놀이를 올렸다. 마을에 보관해온 상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주검을 옮기던 100년이 훌쩍 넘은 상여다. 벌교 가서 주먹자랑하지 말고, 순천 가서 인물자랑하지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 하지 말라했던가.

진도 가거들랑 소리하지마라. 오늘 망자로 나서는 이는 두 눈이 시퍼렇게 뜨고 손님을 불러놓고 아침부터 동분서주하는 소포리민속놀이체험관 김병천(46) 관장이다. 마을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어디 가면 '노래 잠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도 진도사람이 아니던가. 

상여놀이
 상여놀이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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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여.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리로 시집올 걸.'

한껏 멋을 낸 할머니는 이웃마을 인지리에서 상여굿을 보러왔다. 이곳은 친정어머니 고향이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소금밭에 의지해 살았던 마을이었다. 염전으로 이어지던 물길을 막기 시작한 것은 1973년 새마을방조제였다. 그리고 1986년 진도읍까지 이어지던 소포만방조제가 막아졌다.

그 무렵 진도와 해남을 잇는 다리가 놓였다. 섬은 육지가 되었고 뱃길도 끊겼다. 목포를 오가던 뱃길 닿던 소포리 포구 주막도 문을 닫았다. 숱한 사연이 이어지던 뱃길 위로 자동차가 달리고 태양광발전소가 만들어졌다. 

진도 서남부 사람들이 읍내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뱃길이었다. 주민들은 농사보다는 염전에 익숙했고 갯일을 하며 살았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사람들은 목포에서 배를 타고 염전 일을 하겠다고 몰려들기도 했다. 염전과 갯벌은 농지가 되어 검정쌀이 재배되고 있다.

소포리와 안치를 잇는 대흥포가 막아지기 전 소포리는 소금마을이었다. 지금은 농지로 바뀌어 검정쌀을 재배하고 있다. 이곳 간척지를 습지(갯벌)로 복원하는 문제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소포리와 안치를 잇는 대흥포가 막아지기 전 소포리는 소금마을이었다. 지금은 농지로 바뀌어 검정쌀을 재배하고 있다. 이곳 간척지를 습지(갯벌)로 복원하는 문제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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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화재요 보물이다

진도에서 문화재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섬이 민속이요, 사람이 보물이다. 그리고 엄청난 진도의 에너지를 한편으로는 '꾼'들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가두어 버린 것도 진도사람이었다. 스스로 육지가 되고 싶고, 양반이 되고 싶은 욕망의 발로였다.

그나마 전승되어 오던 진도문화는 1960년대 문화재보존 정책으로 오히려 미신이 되었고, '문화재'라는 껍데기만 남고 말았다. 그중 일부는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전승되고 있다. 다행스럽게 최근 갇혀진 진도의 보물을 하나씩 꺼내 '문화상품'으로 포장을 하고 있다.

잊혀진 것은 복원해 새로 전승되고 있다. 그 중심에 소포리가 있다. 소포리민속보존회만 해도 소포걸군농악, 강강술래, 닻배놀이, 명다리굿, 세시풍속, 어머니노래방, 베틀노래 등이 있다. 함부로 소리자랑 했다간 코가 석자나 되고 만다. 소포리 마을민속이 전승되고 문화상품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소포어머니노래방'과 '소포걸군농악'이다. 이곳에는 프로를 넘나드는 '꾼'들이 있다.

새로 지은 마을회관과 민속놀이체험관을 기념해 당산제를 지내 후 풍물을 치며 기쁜 소식을 당산할머니와 조상들에게 알렸다.
 새로 지은 마을회관과 민속놀이체험관을 기념해 당산제를 지내 후 풍물을 치며 기쁜 소식을 당산할머니와 조상들에게 알렸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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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물론 전국 많은 행사와 방송 등에 참여하고 있는 소포걸군농악은 '소포어머니노래방'과 함께 소포마을민속의 두축이다.
 진도는 물론 전국 많은 행사와 방송 등에 참여하고 있는 소포걸군농악은 '소포어머니노래방'과 함께 소포마을민속의 두축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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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겨진 삶은 고스란히 여성들의 몫이었다. 온갖 농사일, 산 일, 옷을 짓는 일 등 모두 여성들 차지였다. 그들이 부르는 강강수월래, 둥당이 타령, 육자배기, 흥타령, 남도들노래, 산타령, 물레타령, 도깨비굿 모두 삶이 배인 노래들이다. 그 소리에는 '섬사람'과 '여성'의 아픔을 넘어 해악과 희망이 있다. 양반과 남성중심 사회를 뒤집어 버렸다.

상여놀이만 해도 그렇다. 유교식으로 엄숙하게 치러야 할 의례를 북과 장구를 치고 소리를 하는가 하면, 해학적 연극으로 놀이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남성들의 틈을 비집고 상여를 끄는 이도 여자들이다. 자연스레 진도소리는 여성들 몫이 되었다. 그 기운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것이 소포어머니노래방이라면 과장일까. 소포상여놀이에 상두꾼들도 소포노래방 출신 어머니들이다.

노제를 지내다 말고 한바탕 놀이판이 펼쳐졌다.
 노제를 지내다 말고 한바탕 놀이판이 펼쳐졌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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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 길닦음처럼 하얀 질베를 잡고 상여를 끄는 '진도만가'는 소포리에서 시작되어 진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전한다. 진도민속의 으뜸이다.
 씻김굿 길닦음처럼 하얀 질베를 잡고 상여를 끄는 '진도만가'는 소포리에서 시작되어 진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전한다. 진도민속의 으뜸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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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저 축제다

10여 명의 여자들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도로를 막았다. 애처롭던 상여소리는 진도아리랑과 흥타령에 묻혔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춘다. 마이크가 몇 순배 돌아간다. 이곳이 노래방인가, 급기야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판이 벌어진다. 씻김굿에 길닦음처럼 무명 질베를 잡고 상여를 끌던 여자들도 퍼질러 앉았다. 이렇게 저승길을 닦는 상여놀이를 '진도만가'라 하던가.

진도무속에서 비롯되었다는 만가는 1970년에 소포에서 처음 시작되어 진도전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부모 주검 앞에 자식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걸게 판을 벌인다. 육지것들 잣대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진도에는 상가집에서 출상 전날 상주는 물론 마을사람들 앞에서 재담과 노래로 밤을 새며 노는 '다시래기(대시래기)'도 있다.

이들은 상여소리를 하는 소리꾼과 함께 흥을 돋아 이승에 남은 가족에게는 위안을 주고, 구경꾼들에게는 굿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망자의 넋을 위로하면서. 세상에 죽음의 굿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진도에서 죽음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안에는 밤달애놀이가 있다. 섬사람들은 죽음을 단순히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음은 산자들의 삶을 다잡는 카타르시스요 축제였다. 진도문화는 그 자체가 축제요 놀이였다. 소포상여놀이 제대로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진도, #소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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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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