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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떤 정부도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보면 숙명이에요. 경제 전반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위험성을 띠고 있고… 그럼, 미국은 잘 했나요? 3~4년 전부터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이야기 나왔지만… 정부의 역할이란 게 한계가 분명하죠."

 

그는 되물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분명히 바라보고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홍성국(46)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그는 국내 증권가에서 현장 분석과 예측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사람중 하나다.

 

최근 경제위기설에 대한 정부 대응 능력을 물었을 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택한 것은 과거보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하라는 것 아닌가"라며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선 정부가 잘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최근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실제로 정부가 (시장에 대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면서 "현재의 우리 경제 규모나 개방 정도를 보면 정부 컨트롤을 넘어섰고, (정부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6년 대우증권에 몸담은 지 23년째인 그는 '정통 대우맨'이다. 90년 투자분석부로 자리를 옮긴 후, 20여년째 시장분석만 해온 조사통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증권사 리서치센터 수장인 그를 지난 4일 오후에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각종 경제수치와 표가 들어간 분석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현재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과 현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해 나갔다.

 

그는 특히 현재 한국경제가 사실상 글로벌 경제에 거의 편입돼 있는 현실을 강조했다. 경제 위기를 둘러싼 논란과 해법 모두 국내 경제만 놓고 볼 수 없으며, 대외적인 각종 변수 등과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위기 대응 미숙, 현재 경제시스템에선 숙명"

 

- 최근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경제위기설 등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만의 문제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리 경제, 특히 자본시장 자체가 글로벌 시장으로 편입돼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금융시장 자체가 매우 불안한 상태에서 아마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웃으면서) 대답하기 좀 그렇다. 옛날로 치면 지금 내 위치가 공무원 아닌가? (대우증권의 최대주주가 공기업인 산업은행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듯). 사실 시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지금 같이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숙명이라고 본다."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생각을 굳이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또 그럴 수도 없다고 했다. 책상위에 놓여진 각종 경제수치와 분석 자료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최근 시장에 대한 정부 발언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와 같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재의 한국경제 시스템 자체가 과거처럼 정부의 말 한 마디에 크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의 말을 좀 들어보자.

 

"요즘 보면, 정부가 지나치게 다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잘못된 것이죠. 현재 민간 쪽의 경제 규모 등을 보면 정부가 컨트롤 할 정도로 작은 것이 아니예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삼성전자의 매출을 보면, 국내보다 해외 쪽이 많아요. 갈수록 국가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지게 돼있어요.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시스템 속에선…."

 

- 정부 스스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나? 환율 정책 등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글쎄, 정부가 그런 인식을 분명히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 보면 이중성이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다."

 

- 어떤 모습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뽑지 않았나. 다시 말하면,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하라는 것 아닌가. 신자유주의적 것은 정부가 안 보여야 한다. 정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제 와선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하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 그것은 정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이다. 좀 주제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정부가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것을 (정부도) 인정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선 잘하고 싶어서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의욕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 앞으로도 정부의 역할을 놓고 많은 논쟁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정부가 모두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버려야"

 

현재 국내경제 현실에 대한 분석을 듣고 싶었다. 물가를 비롯해, 고용·성장률 등 각종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생각하는 경제의 위험요인이 무엇일까. 그 역시 우선 '환율 리스크'를 꼽았다.

 

"요즘 수출이 좋았던 것은 환율 효과가 가장 컸어요. (자료를 내보이며) 수출지역인 미국·일본·중국 등의 경기지수는 내리막을 보이고 있죠. 우리 수출증가율도 이런 지수와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최근 크게 상승하고 있어요. (정부의 고환율정책에 따른) 환율 효과죠. 문제는 (환율)효과가 없어질 때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죠."

 

9월 위기설의 단초를 제공한 외환 보유고에 대해선 조심스러워 했다.

 

홍 센터장은 "외환보유고가 줄어든 것은 수출업체 쪽 달러 수요가 늘고, 무역적자로 달러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어느 정도의 외환보유고가 적정한지는 정답이 없지만, 향후 외부 쇼크로 인해 환율 급변동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외환을 둘러싼 불안한 모습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율과 외환보유고를 둘러싼 위험 이외에도 홍 센터장은 부동산으로 시작되는 금융시장의 경색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에 이어 수도권쪽의 아파트 미분양이 늘고 있고, 이에 따른 건설회사들의 자금난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올 3월 말까지 부동산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투자된 자금이 73조원에 달한다"면서 "특히 지방 중소건설사들의 자금난 등으로 저축은행에서 빌려준 돈의 회수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저축은행의 PF 관련 자금 연체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고, 이에 따른 이들 금융권의 부실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앞으로 금융권에서 돈줄을 조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은행들은 해외에서 단기적으로 돈을 많이 빌려와서 부동산 담보로 가계 대출을 많이 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아져 대출도 줄일 수밖에 없고, 금리도 올리는 추세지요."

 

홍 센터장은 과거보다 금융권이 자금 운용을 보수적으로 하면서, 시중에 돈의 흐름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이 줄고,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가계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소비축소에 따른 내수 경기 침체현상이 나오고 있다"면서 "게다가 최근 주가와 부동산 하락 등 자신들의 자산가치도 함께 떨어지면서 내수 침체는 더욱 가속화되고, 구조적인 양극화 문제가 다시 대두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펀드 일단 가지고 있어라, 경제는 내년 하반기 지나야"

 

- 다음 주(오는 11일)에 금융통화위원회가 9월 금리 문제를 다루는데, 어떻게 예상하나.
"지난 달엔 금리를 올렸지만, 이번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환율보다 금리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자금 경색과 침체국면에서 금리가 오를 경우 서민과 중소기업 쪽에서 크게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일부에선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안정을 위해서 금리인상 목소리도 있는데.
"현재 상황에선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나 언론에서 말하는 것 같은데, 이쪽은 아직도 우리가 과거 후진적인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책 당국이 잘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

 

- 주식시장의 하락세가 언제까지 갈 것 같나. 펀드 가입자들의 손해가 너무 커져서 해지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다.
"펀드는 우선 기다리는 것이 좋다. 대신 이머징 마켓이라는 중국 등 이런 곳에 투자는 유보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현재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과도하게 빠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기업 이익과 주가를 비교해봐도 여전히 싼 편이다."

 

그는 "올 하반기에 주가가 반등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빠를 경우 다음달인 10월에 주가가 반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에서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각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 돈의 흐름이 주식시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일 뿐이다. 자본 시장 자체가 이미 세계적으로 통합돼 있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자료에는 당분간 경기 하강국면이 계속되면서, 주가가 상승세를 찾기엔 시간이 필요하다고 써 있었다.

 

그에게 언제쯤 경기가 나아질지 물었다.

 

"현재 세계 경기의 흐름 자체가 하강 국면이 뚜렷하지요. 우리나라를 비롯해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상태 속에 내년까지도 갈 가능성이 높아요. 내년 하반기쯤 가면 정도에 따라 경기가 나아질 수 있지만, 지켜봐야죠."

 

홍 센터장은 그동안 꾸준히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쳐 왔다. 자신이 쓴 책 <세계경제를 가린 그림자, 미국>을 통해 그는 미국 중심 금융패권과 자본시장의 불완전성, 이에 따른 전세계적 양극화 현상을 집중 분석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지금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속에 살고 있지만,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 같아요. 정치에선 민족주의, 경제에선 국가 개입이 더 늘어날 것이고, 국제관계도 그동안 협조체제였던 것이 철저하게 자신들 이익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뤄질 겁니다.

 

어찌보면, 미국 패권이 사라지고 신냉전 속에 무질서가 더 나올 것이고, 시장 자체도 여러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정부나 일반 사람들 스스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죠."


태그:#경제위기, #홍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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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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