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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촛불집회 안 나갔어!"

 

촛불을 처음 경험했던 2002년, 당시 고3인 나에게 촛불집회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께 행한 거짓말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 종종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집회에 참여할 때다. 6년 전부터 지금까지 집회에 참여하면서 제대로 집회에 간다고 이야기한 적이 드물다. 최근 촛불집회에는 MT, 캠프 등을 간다는 이야기로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렸다. 6년전 당시도 그랬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던 때였다. 무죄판결을 받고 마크워크가 미국으로 떠났을 때, 우리 국민들의 분노는 매우 컸다. 그리고 우리는 광화문으로 나가 초를 밝혔다. 2008년 '촛불소녀’라 불리는 귀여운 여중생들의 선도적인 촛불이 있었다면 당시에는 의정부여고생들의 촛불이 있었다. 어찌되었든 12월 연말 촛불집회가 매주 진행되었던 때였다.

 

"오늘 또 어디 나가는 거야!"

"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했어."

"대체 매번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녀!"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으며 집을 나섰고,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나갔다. 촛불을 밝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촛불파도타기와 질서정연한 사람들의 행진. 당시 촛불은 지금의 촛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생명력이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명확한 '살인자가 무죄라니'라는 걸로 쉽게 정의내릴 수 있었고, 한미관계의 현실이 이렇구나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촛불행진이 끝나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각에서 의정부로 오는 막차를 겨우 타고 집으로 들어온 시간은 이미 새벽 1시쯤이었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는데 어머니가 내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째려보시면서 이야기 하셨다.

 

"대체 이 시간까지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오는 거야? 수능 끝나면 인생 다 끝난거니?"

"친구 생일이었어. 다음에는 일찍 들어올게."

"촛불집회 같은데 간 거 아니지?"

"엄마, 나 촛불집회 안 나갔어!"

 

그 당시 그렇게 얼버무렸던 기억이 생생했던 거는 촛불집회에서 생일을 맞이한 친구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길거리에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속으로 나는 '오늘도 다행히 넘겼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었다.

 

다음날, 아침식사에 아버지가 물으신다.

 

"요즘 뭐하고 다니냐."

"그냥 뭐 이것 저것해요."

"적당히 해라. 항상 말하는 거지만 뭘 하든 몸조심하면서 하고."

"네......."

 

아버지의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했고, 나는 걸렸나 싶었다. 식사를 다하고 방으로 쏙 들어온 난, 안방에서 어제 입은 외투를 세탁하기 위해 정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외투에는 전날 촛불집회 때 생긴 촛농이 묻어있었다. 어머니는 그 촛농을 조용히 닦고 계셨다. 

 

내 눈에는 눈물이 어느새 고여 버렸다. 모른 척 해주셨지만 이미 알고 계셨던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어머니는 그 뒤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집회에 나가는 것을 아시면서도 나의 거짓말을 묵인해주신다. MT에 다녀온 아들의 책상에는 전날 집회의 선전물들이 가득해도 어머니는 그 유인물을 정돈해주실 뿐,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어머니는 이렇게 아직까지도 군대 안 가고 학생운동하며 살고 있는 아들을 말없이 보살피고 응원해주신다. 힘들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을 생각한다. 그리고 한 달 전, 일본으로 야스쿠니 반대 촛불집회에 후배들 데리고 간다는 나에게 보내주신 아버지의 메모.

 

'이 세상에 너만큼 소중한 놈이 어디에 있을까? 아들아 더운 날씨에 몸 조심히 하고 무사히 잘 다녀오렴.'

 

나의 거짓말을 꾸짖지 않고 이해해주셨던 부모님의 따스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겠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응모글'


태그:#촛불, #거짓말, #어머니, #부모님,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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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힘들지만 우직하게 한 길을 걷고 싶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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