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 선수의 경기를 보며 무척 아쉬웠습니다. 만약 결승전에서 상대방의 기술이 한판이 아니라 절반이었다면 남은 시간 동안 역전이 가능했을텐데…. 불의의 기습으로 한판으로 패한 것 때문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면 모르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큰 것 같습니다. 왕기춘 선수는 은메달을 딴 것에 대해 미안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왕기춘 선수에게 미안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솔직히 4년에 한 번, 아니 아시안게임이 있으면 2년에 한 번 국민적인 관심으로 응원을 할 뿐 그 이전에는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그것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큰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에게만 깊은 관심을 갖고 응원합니다. 그러다가 기대했던 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뻔뻔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왕기춘 선수가 올림픽 이전까지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를 누르고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주로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지난 대회 우승자인 이원희 선수를 누르고 올림픽에 출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감은 오히려 왕기춘 선수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박태환 선수도 금메달 따기 전날에 잠을 설쳤다고 했는데,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선수에게 큰 부담감을 줄 수 있습니다. 금메달을 못 따고 은메달을 딴 것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아쉬움이 큰 사람은 바로 선수 자신일 것입니다.

 

그래도 국민들이 나름대로 그런 왕기춘 선수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욕하는 네티즌은 스스로 자신이 단세포적인 사고를 갖고 있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방송국이 이런 단세포적인 방송을 하면서 국민들이 오로지 금메달만을 원하도록 부추기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사람은 모두 다 이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축구 경기 이후에 선수들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날씨에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모습이 우리에게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이탈리아 축구는 우리보다 한 수 위입니다. 그런 이탈리아와의 대결에 앞서서 물론 승리를 다짐하는 것은 좋지만, 마치 이탈리아가 우리와 대등하거나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메스컴에 주목을 받지 않았던 최민호 선수가 부담감 없이 금메달을 획득한 것처럼 선수들에게 있어서 부담감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왕기춘 선수는 아직 젊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처음 출전한 그가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결승까지 진출한 것에 우리는 박수를 쳐 주어야 합니다. 결승전에서도 실력 차이 때문에 진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실력은 검증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다음번 대회를 위해 재기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성원해 주는 것입니다.

 

왕기춘 선수가 가져야 할 것은 다시는 같은 기술에 당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각오, 같은 선수에게 두 번 연속으로 지지는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왕기춘 선수에게 이긴 선수는 그야말로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기뻐했습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이긴 것입니다.

 

왕기춘 선수가 이런 마음을 갖고 열심히 훈련에 임할 때, 우리들은 국민으로서 그러한 왕기춘 선수를 다시금 4년 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4년 후에 아는 척 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꾸준히 그가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관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 U포터뉴스, 티스토리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8.12 11:36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 U포터뉴스, 티스토리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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