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5종 대표팀의 훈련 3종 세트 ⓒ 박상익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제 외모를 보고 운동선수냐고 물어요. '근대5종'이라고 대답하면 아~ 이러면서 아는 척을 하시다가 곧 '그 자전거랑 수영하고 달리기 하는 거?'라면서 철인3종 경기 이야기를 하시면 맥이 풀리죠. 전 근대5종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존심이 상해요. 그래서 요새는 그냥 수영한다고 둘러대요."

현 상무 소속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남동훈(25) 선수의 하소연이다. 주변에 근대5종 이야기를 꺼내도 그것이 무슨 종목인지 알기는커녕 스포츠 종목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단 하루에 사격·수영·승마·펜싱·크로스컨트리를 해내는 종목이라 설명해 주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상무)를 찾았다. 국가대표선수라 하면 당연히 태릉선수촌을 떠올리겠지만, 근대5종 대표팀은 상무 안에 훈련장이 마련되어 있다. 체육부대라 해도 엄연히 군대는 군대. 갑자기 근대5종이 '군대5종'과 겹쳐진다.

만능스포츠맨의 자부심, '비인기' 설움 털고 올림픽 쏜다

 사격 경기는 20발을 1분 40초씩의 시간을 두고 표적지에 맞춰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높은 집중력을 보여야하는 정신력의 종목이다.

사격 경기는 20발을 1분 40초씩의 시간을 두고 표적지에 맞춰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높은 집중력을 보여야하는 정신력의 종목이다. ⓒ 박상익


사격 훈련장 안은 공기 권총이 총알을 날리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사격이 조금 부족하다고 자평한 남동훈 선수는 한 발을 쏠 때마다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국가대표팀 강경효 감독이 뒤쪽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하루에 100여 발 정도 훈련을 합니다. 사격을 할 때 손이 떨리면 조준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아령 등으로 팔이 흔들리지 않게 수많은 훈련을 하지요."

이날 훈련은 아침의 육상훈련을 시작으로 사격과 수영, 펜싱을 할 예정이라고 강 감독이 설명했다. 일반인이라면 하루에 한 가지만 해도 힘들 것이고, 운동선수들이라도 여러 종목을 하지 않지만 이들은 하루에 여러 종목을 하는 게 당연하다.

사격을 마치자마자 별다른 휴식 없이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사격 훈련을 마치고 시원한 물에 들어가니 한결 나을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100미터를 왕복하는 훈련은 강약을 조절하며 끊임없이 이뤄졌다.

"(이)춘헌이 조금 늦다."

강 감독이 선수들을 독려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수영이 가장 고되고 힘든 종목이에요. 아무리 물속에 있다고 해도 계속 헤엄을 치다 보면 몸이 더워지고 땀도 많이 흘립니다."

그냥 수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영을 위한 근력 강화 훈련까지 물속에서 이뤄진다. 선수들은 손에 '패들'이라는 물갈퀴를 끼고 헤엄을 쳤다. 이렇게 하면 물을 가르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깨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치고 나가는 힘을 키우기 위해 허리에 낙하산까지 채웠다.

 상무의 남동훈 선수는 첫 올림픽 출전이지만 군인의 패기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각오다.

상무의 남동훈 선수는 첫 올림픽 출전이지만 군인의 패기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각오다. ⓒ 홍현진

남동훈 선수는 이것도 모자라는지 고무 튜브를 몸에 묶어 저항력을 높인 상태에서 수영 훈련을 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수영장에서 나온 선수들은 가쁜 숨을 내쉰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사우나에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더운 열기를 내뿜는다.

꿀맛 같은 점심 시간은 선수들에게 오전 훈련의 피로를 덜어낼 좋은 기회다. 오늘은 부대 밖의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날.

강경효 감독은 "아무리 선수들을 위한 식단이라 해도 부대 밥은 부대 밥인지라 선수들의 입맛을 위해 종종 외식을 한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밥을 싹싹 비워냈다.

오후 3시. 부대 내 펜싱 훈련장인 검무관은 상무 소속 선수들의 훈련으로 이미 후끈한 열기로 데워져 있었다. 펜싱 장비를 갖춘 선수들을 보니 다른 선수들이 된 듯했다. 찌르기와 막기, 그리고 반격. 선수들은 특히 펜싱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여타 종목은 자신의 기록을 유지한다면 부담없이 소화할 수 있지만, 펜싱은 상대와 직접 겨루는 종목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

재도전의 각오와 첫 출전의 패기로 메달에 도전

 베이징올림픽이 두 번째 출전인 이춘헌 선수은 자신의 최고기록을 시합에서도 유지한다면 메달은 충분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베이징올림픽이 두 번째 출전인 이춘헌 선수은 자신의 최고기록을 시합에서도 유지한다면 메달은 충분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 홍현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메달을 기대했던 국내 근대5종의 1인자 이춘헌(29·대한주택공사) 선수는 "35번의 시합을 펼치면서 분위기를 잘못 타면 연패를 하기 쉽기 때문에 특히 긴장되는 종목"이라며 펜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루에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든데 서너 가지를 해치우다니, 정말 대단한 체력과 기술이 아니면 해내기 힘들다.

이춘헌 선수는 "다른 선수들은 하루에 한 가지만 열심히 하지만 우린 여러 종목을 하다 보니 한두 가지만 하고 나면 이상하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면서 "이렇게 서너 가지는 좀 해야지 '아~ 오늘 운동 좀 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강훈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춘헌 선수는 지난 2004년 세계근대5종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아테네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시니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위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올림픽에서는 21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부족한 점을 채우지 못했죠. 많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아테네 올림픽 이후 4년 동안 많은 대회에서 예선 탈락과 우수한 성적을 내다보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준비를 잘 해왔고 주변에서 후원과 응원이 많아져서 이번엔 제 최고기록만 나온다면 좋은 성적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근대5종 국가대표 선수인 남동훈의 어깨에 새겨진 올림픽 마크. 이번 베이징 대회에 참가하는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다.

근대5종 국가대표 선수인 남동훈의 어깨에 새겨진 올림픽 마크. 이번 베이징 대회에 참가하는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다. ⓒ 박상익


한편 남동훈 선수는 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에는 출전했지만 올림픽은 이번이 첫 번째 출전. 올림픽이란 큰 대회 때문에 긴장이 될 법도 하지만, 군인의 패기인지 당찬 모습이었다. 상무 입대 전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고 나서 새겼다는 어깨의 '오륜 문신'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오히려 예선 없이 하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올림픽이 더 편해요. 처음 참가하는 올림픽이라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음 올림픽이나 다른 큰 대회도 참가할 수 있겠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정직한 땀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길

직접 펜싱복을 입고 선수들과 칼을 맞대던 강경효 감독은 헤어지는 기자에게 오른손에 칼을 쥔 채 악수를 건넸다.

"펜싱의 악수는 왼손입니다."

굳게 잡은 그의 왼손엔 땀이 가득했다.

군대에서 '훈련의 땀 한 방울은 실전의 피 한 방울'이라던가. 기합 한 번에 훈련의 고통을 이겨내는 근대5종 대표팀. 사람들의 격려에 힘입어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이춘헌 선수. 사람들에게 근대5종 하면 '사격 펜싱 수영 승마 육상'이란 종목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겠다는 남동훈 선수.

근대5종 올림픽 경기는 오는 8월 21일과 22일 남녀로 나뉘어 이틀 동안 경기를 벌이게 된다. 영원한 강자와 영원한 약자가 없이 누구에게나 금메달의 기회가 열려 있는 근대5종. 그들이 흘리는 굵은 땀방울이 베이징에서 메달의 감동으로 돌아올 것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전쟁의 향기' 담은 근대5종
전쟁의 긴장감과 스포츠의 박진감을 동시에 즐기자
 선수들끼리 연습시합을 하고 있다. 근대5종에선 전신 공격이 가능한 에페 종목을 채택해 단 한 점으로 승부를 겨룬다. 단판이기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선수들끼리 연습시합을 하고 있다. 근대5종에선 전신 공격이 가능한 에페 종목을 채택해 단 한 점으로 승부를 겨룬다. 단판이기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 박상익


근대5종은 전쟁과 많이 닮았다.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은 스포츠에 애국심을 결합시키기 위해 근대5종이란 스포츠를 고안해 냈다. 단순히 근대5종의 종목들을 되뇌면 그냥 총 쏘고 칼싸움하고 말 타고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쉽지만, 각 종목은 전쟁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격은 10미터 거리의 표적지에 20발을 쏴서 점수를 낸다. 각 사격마다 주어진 시간은 1분 40초.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충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부족한 시간일 수도 있다. 적은 나에게 충분히 총을 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내가 쏘지 못하면 적의 총에 맞는다는 점을 스포츠로 구현했다.

펜싱은 기사도의 스포츠라고 하지만 근대5종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올림픽 본선에 출전한 36명의 선수 모두가 전부 한 판씩 붙게 된다. 몸통이나 상반신 공격만 허용하는 플뢰레와 사브르가 아닌 전신을 공격하는 에페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공격과 수비의 순서를 따지지 않고 상대보다 먼저 칼을 꽂으면 승리한다. 칼에 여러 번 찔려도 상대에게 더 많은 공격을 하면 이기면 된다는 것은 순진한 스포츠다. 역전은 없다. 1분의 경기 시간 동안 단 한 점으로 승부가 갈린다.

수영은 2분 30초를 기준으로 200미터를 완주해야 한다. 사람들끼리 주먹다짐을 할 때 복싱의 규정이 필요없는 것처럼 근대5종의 수영도 가장 빨리 헤엄치면 된다. 평영 접영 등 영법 제한이 없어 가장 빠른 영법인 자유형으로 승부를 겨룬다. 기준보다 빨리 도착하면 추가점을 받고 그보다 늦게 도착하면 감점을 받는다.

승마는 말 그대로 말을 잘 타면 된다. 전쟁에서 자신의 말을 가지고 다니며 전투에 참가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개 생면부지의 말과 즉석에서 만나 전장을 누벼야 한다. 근대5종 또한 자신의 말로 승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최 측에서 준비한 말을 추첨으로 배정받게 된다. 아무리 승마술이 뛰어나도 말과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기존에 지켜왔던 순위를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

마지막 종목인 크로스컨트리는 이전 종목에서 쌓은 점수를 토대로 출발하는 시간이 다르다. 전쟁에서는 아는 길보다 생전 처음 보는 곳을 달려야 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 길에 대한 세부 정보는 없다. 오로지 달릴 뿐이다. 과거 크로스컨트리도 사전에 코스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관중과 중계 편의 등을 감안해 트랙을 도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근대5종 남자 대표 선수인 이춘헌과 남동훈 선수는 '군사적 스포츠'를 한다는 점 외에도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상무와 인연이 있다는 것. 남동훈은 현역 상무 선수고, 이춘헌도 상무 출신 예비역이다.

군사적 배경이 있는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이지만, 막상 군대에서는 운동 외에 특별히 하는 보직은 없다. 군인이라면 선봉대에서 멋지게 활약하고 싶다는 이춘헌 선수와 운동을 안 했다면 특전사에 있었을 것이란 남동훈 선수에게 상무 생활 중 재미있는 사연을 들어봤다.

[이춘헌 선수] "대표팀에 있으면서 아테네 올림픽 티켓을 따기 위해 훈련소를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올림픽에 다녀오고 나서 1년 동안 있다가 중간에 훈련소에 들어갔다. 근대5종 훈련장이 상무 안에 있다 보니 7~8년 선수생활 동안 민간인-군인-민간인 신분으로 지냈다. 그래서 군인일 때 '충성' 대신 민간인처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 머쓱해진 적이 있다."

[남동훈 선수] "신병 시절 상무 체육대회에 장기자랑을 준비하게 됐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대표팀 숙소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당시 최고의 인기였던 원더걸스의 '텔미'춤을 췄다. 신병이 올라와 춤을 추니 사격팀의 여자간부와 근대5종 소속의 제3경기대장님까지 호응이 좋았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베이징올림픽 근대5종 국가대표 이춘헌 남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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