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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설명

.. 이 글에 대해서도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  <삶·문학·교육>(이오덕, 종로서적, 1987) 138쪽

“이 글에 대(對)해서도”는 “이 글도”나 “이 글을 놓고도”로 다듬습니다.

 ┌ 설명(說明) :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   - 새 기획안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
 │     친구의 설명만으로는 문제가 이해되지 않아서 /
 │     책에는 국어학의 주요 용어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
 │     신자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다 / 학생들에게 인수 분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
 ├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 길게 말하지 않겠다
 │→ 길게 밝혀 말하지 않겠다
 └ …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일이 ‘설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마디로 ‘밝혀 말하다’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예 ‘밝혀말하다’를 한 낱말로 삼을 수 있고요. ‘밝혀말하기’처럼 써도 괜찮으리라 봅니다. ‘-말하기’를 뒷가지로 삼으면, ‘새겨말하기-깊이말하기-거듭말하기-가려말하기’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 설명이 끝나자 → 이야기가 끝나자
 ├ 친구의 설명만으로는 → 동무가 해 준 말만으로는
 ├ 잘 설명되어 있다 → 잘 풀이되어 있다
 ├ 교리를 설명하다 → 교리를 들려주다
 └ 인수 분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 인수 분해를 알려주셨다

“밝혀서 말하다”나 ‘밝혀말하다’로 적어도 괜찮고, ‘말하다’나 ‘이야기하다’로만 적어도 괜찮습니다. 자리에 따라서 ‘들려주다’나 ‘알려주다’를 넣어 주기도 하고, ‘풀이하다’를 넣기도 합니다.

 ┌ 이 글을 놓고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 이 글을 길게 다루지 않겠다

다른 이가 쓴 글이나 책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자리에서는 ‘다루다’라는 낱말을 넣어도 제법 어울립니다. ‘살피다’를 넣어도 어울리며, ‘살펴보다’도 퍽 어울립니다.

ㄴ. 원망

.. 이리 억울할 수가 있나! 태어나 지금까지 먼저 돌아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더니, 지금처럼 어머니가 미운 적이 없다. 겉으로는 우리 아가 우리 콩쥐 위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구박 다하는 새어머니보다 일찍 돌아간 내 진짜 어머니가 훨씬 밉다 ..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뜨인돌어린이, 2006) 36쪽

‘위(爲)하다’는 ‘생각하다’로 다듬습니다. ‘억울(抑鬱)할’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답답할’이나 ‘가슴이 무너질’로 손보아도 됩니다. ‘계모(繼母)’라 하지 않고 ‘새어머니’라고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때로는 ‘의붓어머니’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 원망(怨望) :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
 │   - 원망의 눈초리 / 원망에 찬 얼굴 / 원망을 사다
 ├ 원망(遠望)
 │  (1) 멀리 바라봄
 │  (2) 먼 앞날의 희망
 ├ 원망(願望) : 원하고 바람. ‘바람’, ‘소원’으로 순화
 │   - 이 중의 단 한 가지 원망일지라도 만일에 실현될 수 있다면야 /
 │     승리를 원망하다 / 시험에 합격하기를 원망하다
 │
 ├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더니 (x)
 └ 지금처럼 어머니가 미운 적이 없다 (o)

보기글을 보면 앞에서는 ‘원망’이라 했지만 바로 뒤에서는 ‘미운’이라 말합니다. 글 끝에는 ‘밉다’라 하고요. 그러면 ‘원망’과 ‘밉다’는 어찌 다른 말일까요. 아니, 다른 말이기나 할까요.

 ┌ 원망의 눈초리 → 미워하는 눈초리
 ├ 원망에 찬 얼굴 → 미움에 찬 얼굴
 └ 원망을 사다 → 미움을 사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원망’이라는 한자말이 셋 나옵니다. 이 셋 가운데 ‘미워하다’를 뜻하는 ‘원망(怨望)’만 쓰이고 다른 둘은 안 쓰입니다. 멀리 바라볼 때에는 “멀리 바라본다”고 하지, ‘원망(遠望)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먼 앞날 희망을 ‘원망’이라고 적는들, 어느 누가 알아볼까요. 한자를 밝혀 주어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 한자말 ‘원망(願望)’ 또한 거의 쓸 일이 없는 한편, 이와 같은 말을 쓰면 ‘원망(怨望)’하고 헷갈리게 됩니다.

 ┌ 단 한 가지 원망일지라도 → 어느 한 가지 꿈이라도
 ├ 승리를 원망하다 → 이기기를 바라다
 └ 시험에 합격하기를 원망하다 → 시험에 붙기를 바라다

“승리를 원망한다”라 할 때, 이 ‘원망’이 ‘바람’을 뜻한다고 생각할 분이 몇 사람쯤 될까요. “원망의 눈초리”는 “미워하는 눈초리”가 아닌 “바라는 눈초리”라 말해도 무어라 대꾸할 수 없습니다. 한글로 적어 놓으면 어느 쪽 말인지 종잡을 수 없어요.

한글로 적어 놓을 때 알아볼 수 없는 말이라 하면, 우리 말이 아닙니다. 토박이말도 그렇습니다. 한글로 적은 토박이말임에도 뜻을 모르겠다고 하면, ‘죽은말’을 쓴 셈입니다. 비록 오늘날 사람들이 그 토박이말을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서 토박이말을 걷어치우거나 내다 버렸으니, 어쩌는 수 없이 죽은말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게다가, ‘원망(願望)’이니 ‘원망(遠望)’이니 ‘원망(怨望)’이니 하면서, 자꾸만 우리 말은 좀먹고, 말장난을 하듯이 한자말 새로 지어서 쓰기를 일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한테는 우리 말 문화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끼지 않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 팔짱을 끼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판에, 무슨 문화요 삶이요 역사요 교육이 있으랴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한자어,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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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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