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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산과 들이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계절이다. 초록으로 날마다 더 짙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풀잎마다 천사가 있어서 날마다 속삭인다고 했던가.
 
'자라라, 자라라.'

 

오늘(5월 17일)은 밀양 표충사로 해서 재약산에 오를까, 가까운 오봉산으로 갈까, 금정산으로 갈까 선택을 하지 못하다가 금정산에 오르기로 최종 결정했다. 금정산에 가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가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외출할 때면 차창 밖 풍경 속에 들어오는 금정산 고당봉을 멀리 바라보면서 "가본지가 꽤 오래 되었구나~"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생각도 무르익어 오늘은 금정산으로 향했다.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으로 부산 시민은 무론, 많은 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그 높이도 높이지만 넉넉한 품새가 얼마나 넓디넓은지, 하루 만에 금정산을 다 알려고 한다면 큰 욕심이다. 금정산 오르는 길은 많고, 아주 많은 표정을 감추고 있어 그 속내를 다 알 길이 없다. 금정산은 서너 번 올라가 보았지만 오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고, 그 심중 다 헤아릴 수 없다.

 

 
오늘 부산 금정산행은 율리역에서 출발해 최고봉 고당봉까지 가기로 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산에 가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호포역에서 등산객들이 많이 내렸다. 그렇지, 호포역에서 가는 방법도 있다. 율리역에서 금정산 들머리까지는 지척이라 10분도 채 안되는 거리였다. 이곳 들머리는 물론 처음 만나는 곳이다. 반가웠다. 들머리서부터 아카시아 꽃, 찔레꽃, 장미꽃 향기가 짙게 와 닿아 길보다 먼저 반겼다. 꽃향기 맡으며 걷는 길, 즐거운 산행이 될 것 같다.

 

느낌이 좋았다. 아파트 화단 담벼락에 붉게 핀 장미꽃과 찔레꽃 그 짙은 향기가 먼저 반기더니 산 입구에 표시된 리본을 발견, 등산로에 접어들자 하얗게 핀 아카시아꽃이 역시 향기를 멀리 전하고 있었다. 아~이 꽃향기, 향기 그윽한 들머리 어디쯤 나무벤치에 앉았다. 사실, 아침을 먹지 않아서인지 몸에 힘이 빠진다. 지금은 출발지다.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몸이 무겁다. 겨우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산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산에 왔고 산에 들어섰건만 오르막길 힘든 길에선 언제나 가끔 생각하는 건 ‘이게 뭐하는 짓인가.’어쨌든 산에 오른다. 길은 아주 친절하다. 등산로가 예쁘다. 잠시 않자 쉬고 있노라니 이제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과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참 등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앞서가던 두 아주머니가 마주 내려오던 두 아줌마와 맞닥뜨린다. 서로가 동시에 '반가워~!' 한다.

 

장천 약수터 이정표가 나왔다. 5월의 꽃들이 산 입구부터 산 깊은 곳까지,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피어있다. 꽃향기, 풀냄새로 기분 좋은 산행이다. 금정산엔 바위도 많다. 오늘 가는 진행로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곳곳마다 바위들이 우뚝 솟아 벽처럼 앞을 가로막는가 하면 옆으로 길게 누워 있고, 여러 가지 형상들을 하고 산 곳곳에 박혀 있다. 넉넉하고 부드러운 등산로를 따라 걷는 길에 우뚝 우뚝 솟은 바위들은 금정산의 남성적인 위용과 기개를 느끼게 한다.

 

부드러운가 하면 거칠고, 거친가 싶으면 넉넉하고 또한 아늑하다. 높고 넓은 바위들은 등산로 곳곳에 놓여 있어 땀으로 젖은 몸을 말려서 가기에도 좋고, 멀리 혹은 가까운 곳을 조망하기에도 좋다. 때론 지친 산객의 몸을 눕혀 쉬어가게도 한다. 집 채 만한 기암괴석에서 작은 바위들까지, 금정산은 바위산이다.

 

넓거나 높은 바위 위에서 쉼을 얻고 있는 사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다. 햇살은 따스하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가 등에 땀이 흥건해진다. 잠시 바위 위에 앉아 쉰다. 시원해진다.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눈앞에 보이는 풍경. 소나무 높은 가지에서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매달려 반공중에 꿈틀대는 벌레 한 마리 보인다.

 

반공중에 매달린 채 바람 따라 살살 움직이고 꿈틀거린다. 거미는 이 벌레를 점심밥으로 남겨 놓은 것일까. 이 작은 벌레도, 보이지 않는 가늘디가늘지만 힘이 센 거미줄에 매달린 채, 꿈틀거린다. 살아 있는 작은 생명체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꿈틀댄다. 두 번째 철탑을 만났다. 남근 바위 옆을 지나 전망바위에 올라 상쾌한 바람을 맞는다. 금곡동, 낙동강, 그 건너편 대동마을이 보인다.

 

 

경사진 바윗길을 얼마쯤 가다보니 다시 평지길이요, 흙이 발아래 밟힌다. 흙, 느낌이 좋다. 숲은 울창하고 흙길 다정하고 동행이 또한 즐겁다. 거기에 햇볕은 밝게 쏟아진다. 평지를 걷듯 하다가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이리라.

 

힘들다 싶으면 또 평지 길처럼 편안하고 살아볼만 하다고 생각되고, 그런가 싶으면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힘겹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리고 다시 평지 걷듯 한다. 가다가 다른 곳에 눈길, 마음을 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앞길만 살피고 가던 길에서 여기저기 곁길에 눈길 주기도 하고, 때로는 옆길로 한참 샜다가 되돌아오느라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높이 올라가느라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렸던 그것과 상관없이 급한 경사로를 만나 곤두박질치듯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걷는 오르막길이다. 그래도 숲은 향기롭다. 처음엔 몸이 무거웠지만 막상 산에 오르기 시작하자 차츰 몸이 가벼워지고 걸음도 가뿐해진다. 그렇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엔 어렵고 힘들게 생각해 무거워지지만 막상 그 일에 뛰어들어보면 몸도 마음도 적응되고 탄력이 붙는다. 길이 참 예쁘다. 갈수록 길은 친절하다.

 

 

이 길을 잘 선택한 것 같다. 길은 친절해서 곳곳마다 이정표, 팻말이 길을 안내하고 있고, 오르막길인가 싶으면 다시 평지길, 이런 식으로 길은 어렵지 않게 안내한다. 하지만 평지 걷듯 하는 친절한 길도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지치기 시작했다. 3시간 이상 걸었다고 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래도 금정산 최고봉 고당봉은 멀리 보이기만 할 뿐,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

 

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이곳 주변에서 사람들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넉넉한 공터에서 좀 쉬었다가 가고자 했지만 점심 먹자마자 다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다못해 사람들이 생각 없이 버린 숨은 쓰레기들이 있는 것일까. 파리가 많아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미륵사 위 바위에 도착, 금정산 고당봉, 북문, 가나안 수양관 뒤에 있는 파리봉, 상계봉, 산성 길 등이 멀리 보인다. 바위 아래 미륵사가 앉아 있다. 우린 그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조망하고 다시 일어선다.

 

칠바위를 지나 드디어 금정산 고당봉이 가깝다. 바위군으로 이루어진 금정산 고당봉 올라가는 길은 예전과 다른 외양을 하고 있다. 언제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당봉까지 가려면 예전에는 높은 암벽을 밧줄에 의지하고 발을 헛딛을까 조심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올라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금정산 고당봉은 친절하게도 나무계단과 전망대 등을 만들어 놓아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고당봉에 오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옛날처럼 금정산 최고봉 고당봉까지 스릴있는 모험을 즐기며 오르는 그 느낌은 많이 반감되었다. 고당봉 위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바위 위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거나 연신 핸드폰으로 혹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금정산 고당봉에서 내려다보는 산빛들은 초록으로 점점 번져가고 있었다.

 

다시 하산한다. 이젠 호포역 쪽으로 갈 생각이다. 우리가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크고 작은 기암괴석으로 밧줄 타고 내려갔었는데 철 계단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옛날엔 이 길이 아찔했지만 원형 철계단이 있어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다. 그래도 만만치 않은 길이다. 내려오는 길에 맞닥뜨린 사람들이 동행한 여자들에게  농 삼아 짓궂게 하는 말이 들린다.

 

"어째, 손 한번 잡을 틈이 없네."

"옛날엔 손도 좀 잡아주고 했는데."

"옛날엔, 여기가 제일 위험한 곳 아이가?!"

 

호포역 방향으로 길을 접어든다. 처음 가는 길이라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침 이 길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길은 좁고 비탈길에 그것도 아주 급경사다. 그렇다고 최단거리도 아니다. 급한 경사에 좁고 미끄럽다. 익숙지 않은 길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원래 우린 아주 느림보 걸음으로 산행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들의 뒤를 따라 빨리 걸었던 것 같다.

 

참 오랜 시간을 걸은 것 같다. 호포역에 도착, 양산행 지하철을 탔을 땐 소금물에 담근 배추처럼 즐거운 피로감이 엄습했다. 낙동강 그 넓은 강물은 낙조에 젖고 있다.

 

ⓒ 이명화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부산지하철 2호선 율리역((:50)-벽천 강변타운.인천유치원(10:00)-남근석(11:00)-석문(12:00)-석문2(12:30)-넓은 공터(1:05)-점심식사 후 출발(1:20)-미륵사위 전망바위(1:50)-칠바위(2:10)-고당봉(2:40)-고당봉 하산(3:20)-임도(4:10)-호포역(4:50)


태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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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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