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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물로 버텨온 사람한테 돈 주고 산 물을 버리라고요?"

 

입구에서는 들고 있던 물도 버리라고 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시작부터 삼엄했다.

 

물값이 아까워 화장실 물을 받아마시기도 했던 내게 물을 버리라니! 석회성분이 많아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물을 사서 마셨지만, 공짜 물이라고는 화장실 물밖에 없던 로마에서는 세면대 물을 한참 애용했었다. 

 

호스텔에서 일하던 사람이 친절하게도 이탈리아의 물은 안전하며 그 나라 사람들도 화장실에서 물을 떠마신다고 안내해줬기 때문이다. 몰라서 마셨지만, 알고 나서는 마실 수가 없었다. 물을 신뢰할 수 없게 되자 지출은 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유럽에 비하면 우리가 마시던 물은 좋은 편이었다. 사실 비교적 저렴하고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한강 아리수조차도 못 믿어서 늘 끓여 먹었다. 어렸을 때나 수도꼭지에서 바로 틀어서 마셨지 커가면서는 그런 적이 거의 없다. 더구나 화장실에서 받은 물을 직접 마신 일은 없었는데, 물값조차 신경써야 하는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보겠다는 욕심은 화장실 물도 기꺼이 마시게 만들었다.

 

오직 우피치 미술관만을 위해 결정한 피렌체 행이니 만큼 관람을 위해 버렸다. 대신 물은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빈 병만 버렸다.

 

까다로운 입장이 대기시간을 길어지는데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하니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검색대의 요원의 굳은 표정도 밉상이고, 지갑이 얇은 여행자의 물값조차 배려해주지 않은 미술관 측의 철두철미한 관리도 정 떨어질만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만큼은 인정 받을만 했다. 문화재란 때로는 도시 하나를 대표하고 그 도시의 후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산이니 관리가 중요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은 누그러졌다. 조금씩 부러운 마음으로 변해 갔다.

 

이 사람들은 물병 하나도 철저하게 관리하지만 우리는 휘발유 한 통도 관리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매번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만들어 냈다. 좀 불편하더라도 중요한 문화재는 존재하고 있을 때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구경하기도 바쁜데 사진 찍을 새가 어딨어요?

 

미술관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다. 사진이 금지 돼있던 것인지, 아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촬영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소장품들 보는데 정신이 팔려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출발 전, 미술관에 입장하기 전에 꼭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가라는 조언을 들었다. 당시엔 그 말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나는 뭐든지 간접체험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직접경험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저 그림 몇 점 구경하는데 무슨 식사까지 챙겨먹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유명 미술관의 경우는 입장 자체도 굉장히 고생스러운 일이고, 그 안에 들어가면 보통은 허기를 채울만한 것들이 없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어려운데, 만일 미술관이 맘에 들거나 소장품 관람에 관심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더 많은 것을 관람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기 시작한다. 보려는 욕심과 촉박한 관람 시간 사이에서 끝도 없는 허기를 만날 수도 있다. 또 사람이 집중을 하면 그만큼 소모되는 에너지도 많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확했다. 그런 것을 직접체험 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관람은 몸과 마음에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미술 감상'이란 정말로 '배부른 사람들'만의 것일지도 모른다.

 

체력이 좋은 젊은이한테도 우피치를 하루만에 관람하는 것은 너무 무리였다. 볼 게 너무 많았다. 사전에 예약을 하고 여유있게 둘러볼 것을 권한다.

 

* 우피치 미술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 작품을 보시려면 전시실 / 예술가

 

여전히 '스타일리쉬'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우피치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이다"라고 단언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두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국적과 언어, 출신과 문화가 다른 관람객들이 모두 같은 탄성을 내도록 만들었다. 

 

내게도 보티첼리의 작품은 단연 돋보였다. 작품이 전시된 주변 공기까지 화사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화사함에 둘러 싸여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은 끼어들 틈조차 없다. 마음 속까지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작품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 전체를 둘러봐도 그의 작품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피렌체가 '꽃의 도시'라면 보티첼리는 '꽃의 화가'이고, 그의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의 꽃’이었다.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하던 이름 모를 한 무리의 관람객들과 내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 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보티첼리의 작품에서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의외였다.

 

그에 반해 나는 레오나르도의 작품 앞에서 발이 묶였다. 한참을 서서 보니 단지 그 무리들만의 반응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나갔다.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가만히 서서 구경하고 있던 나는 동영상에 낀 스틸 사진 같았다.

 

아무래도 전시된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갖고 있는 대중적인 '인지도'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한다. 다 빈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예를 들면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같은 대표작이 이곳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 빈치의 작품들을 보며 시대를 초월한 개성에 호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쉽게, 젊은이들이 쓰는 말로 표현으로 하자면 "내 스타일이야!"

 

그 시절의 다빈치는 작업을 하면서도 마치 '난 내 스타일대로 그릴거야'라고 외치며 그렸을 것 같았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내가 보면서도 ‘이거 딱 내 스타일인데’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타일리쉬했다. 

 

그 시대의 미술가답지 않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아주 좋게 보였다. 나는 사조나, 기법, 창작 배경 등의 자세한 사항까지는 모르는 다소 무지한 관람객이지만 그 당시의 다른 미술가들이 쓰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표현법을 발명하려는 의지가 분명히 엿보였다. 시대를 초월하는 그런 자세와 예술적 발명이야 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본의 현대 미술가 요시토모 나라의 자전적 에세이 <작은 별 통신>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우피치에서 가장 큰 가이드가 돼주었다.

 

"나는 그들의 그림 앞에 서서 당시의 그들 자신이 된 기분으로, 그들이 어떤 관점에서 대상을 파악하고 표현했는지 리얼하게 느낄 수 있었다. (27 페이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개성 추구는 나쁘게 보자면 '난 너희들과는 달라'하는 오만한 태도일지 모르나, 몇 세기가 지난 지금의 눈으로 봐도 '스타일리쉬'해 보이니, 나는 설령 그가 그런 오만한 태도로 작업을 했다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기로 했다. 그의 작업물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상을 했다.

 

나가려는 사람의 갈 길을 붙잡던 그림들

 

관람 초반에는 필리포 리피가 무척 인상적이었고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있지만 그것은 감상을 적는 것만으로도 빠듯할 정도로 방대하여, 눈과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중반에 보티첼리나 다빈치의 대작 앞에서 놀랐다면, 미술관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또 한번 놀라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카라바죠를 비롯한 '빛의 화가'들이었다.

 

카라바죠의 그림들은 사실감이나, 역동성이 매력적이었다.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로 어두운 배경에서 시작되어 밝은 빛으로 끝나는 그의 그림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움직임을 담고 있었다. 표정들 역시 사실적이어서 표정만으로도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실감났던 유디트는 당연히 카라바죠의 작품인 줄 알고 나왔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니었다. 카라바죠의 유디트는 로마에 있고, 우피치에 있는 건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 수 많은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 속에서도 그렇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니 대단하다. '아르테미시아'라는 이름은 익숙치 않았지만 그녀의 표현력은 다른 어떤 위대한 화가의 그것 보다 인상적이었다.

 

같은 주제를 다른 작가들의 그린 그림들을 비교해 가며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는데, 수태고지, 동방박사의 경배, 비너스, 성모와 아기, 아담과 이브, 다윗과 골리앗, 유디트 등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어서 어렵지 않게 비교됐다.

 

그런데 성화를 보다보면 제목이 굉장히 쉽게 써 있어서 놀랍다. 이탈리어나 영어를 잘 모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단어로만 되어있다. 신선했다. 성화라면 어렵고 고상한 단어로 제목을 만들었을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려워 지는 것 같다. 비합리적인 면도 많이 있어서 관람 후에 그림을 찾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마리아와 아기'라고 간단하게 써있는 것을 굳이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수태고지'같이 난해한 단어는 좀 더 이해가 쉬운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능하면 이탈리아어 제목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옮긴다 해도 '수태고지' 같은 단어는 찾기 어려운데, 현지의 종교가 천주교인 만큼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한다.

 

우피치 미술관은 큰 공부가 됐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미술품들! 완벽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던 시절의 인간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그렸나, 어떻게 그렸나 생각하며 관람하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무척이나 피곤해졌다.

 

관람 중에 쉬어갈 수 있도록 층간의 쉼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보면, 베끼오 다리 전경이 특별한 각도로 보인다. 미술관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태그:#유럽 여행,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탈리아 , #수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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