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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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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 리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자, 장관학/시장학, 우리 시대의 목민심서, 마쓰시타 정경숙의 비밀….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로터리 동일빌딩 4층. 'think’라는 문패가 붙어 있는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방으로 들어서자 화이트보드에 검은 매직으로 휘갈겨 쓴 메모가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인권변호사·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가게 등의 짧지 않은 궤적을 거쳐 도달한 희망제작소에서 박 변호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키워드인 셈이었다.

"시장·군수·구청장은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치단체장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열정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즉 준비된 시장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는 '참여와 통합의 리더십'을 겸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덕성과 투명함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과정과 프로그램을 우리는 감히 '시장학'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직후인 6월 15일부터 이틀 동안 제1기 '시장학교'를 열면서 희망제작소가 선포했던 '시장학' 서문(序文)이다. 당시 37명의 지방자치단체장 당선자가 시장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그것은 다시 지방선거가 2년 후로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학' 본론(本論)의 집필을 준비하고 있을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봤다.    
     
좋은 시장 충원하는 등용문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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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제작소가 2010년에 있을 지방선거에 대비해 '좋은시장학교'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강은 언제 하나?
"오는 6월 20일 입학식 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2006년 시장학교가 1박 2일 단기코스였다면 이번에는 4개월 동안 20개 강좌가 진행되는 장기코스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2010년 지방선거 때까지 모두 3~4기의 학교가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 한 기수에 몇 명이나 선발하나?
"적으면 30명, 많으면 50명 정도를 선발할 생각이다. 50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두 150~200명의 '학생'이 우리 시장학교를 거쳐 가게 될 것이다."

- 등록금 액수가 궁금하다.
"400만원으로 책정했다. 일반 대학원의 한 학기 수준이다. 뜻은 있지만 돈이 없는 분들을 위해서 장학금 제도의 도입도 준비하고 있다."

- 이런 학교를 구상하게 된 동기는?
"자치단체장 한 명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성공하는 자치단체장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소양과 조건, 능력과 자세, 지식과 전략 등을 사전에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작은 시골의 군수라고 해도 주민의 삶과 직결된 모든 영역과 분야를 다루는 중대한 자리다. 준비 안 된 사람에게 그런 중책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 막상 문제가 코앞에 닥치거나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준비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2년 전이라는 시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벌써'라고 토를 달며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시장을 꿈꾼다면 최소한 10년은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아서 당선됐다고 곧바로 직무를 수행한다면 지역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자신이 시장이 된다면 주민들과 손잡고 어떻게 지역을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도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2년이라는 시간은 도리어 너무 짧다."

- 주목할 만한 커리큘럼 내용을 소개한다면?
"향부론, 지역재정론, 정책준비론, 주민참여론, 협상조정론, 갈등영향분석론, 환경·생태도시론, 지역문화 활성화 방안, 내·외부 브레인 활용법, 커뮤니티 비즈니스론 등 다양한 주제의 과목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국내 최고의 전문 강사진을 통해 진행될 것이다. 신봉승(방송작가)의 세종 리더십과 이덕일(역사저술가)의 정조 리더십도 흥미로운 인문학 강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자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연구, 국내․외 스터디 투어 등의 현장학습도 병행할 것이다."

- 운영 내용이나 방식과 관련해 특별히 강조해서 설명할 것이 있다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과 비전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지자체의 독립적 권한이 강화됐기 때문에 한 지역의 시장이나 군수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졌다. 통찰력과 비전을 갖춘 사람이 자치단체장을 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전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고 디자인하는 실천력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시장학교'를 성실하게 수료한 사람은 선거와 공천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정당공천이 없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에게도 추천을 부탁할 것

ⓒ 여의도통신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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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운동 같은 네거티브와 상당히 대조적인 느낌이다. 
"희망제작소는 과거의 네거티브에서 벗어나 포지티브를 지향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현상보다는 본질적인 어떤 것을 형성해 나가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이미 당선된 시장을 두고서 좋다, 나쁘다를 논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좋은 시장이 당선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 지원 자격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나?
"원칙적으로 문호는 개방돼 있기 때문에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나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가능하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비전·열정·콘텐츠를 흡수할 수 있는 태도와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면 좋겠다. 좋은 학생을 엄선하기 위해 공정하고 권위 있는 심사위원단을 이미 별도로 구성해 놨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사항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추천제도도 활용할 생각이다."

- 추천의 주체로 어떤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예컨대 국회의원 간담회를 열어서 시장 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별로 시민단체를 통해서 시장출마 의사가 있는 사람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과거 지방선거에서 낙선했거나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 중에 괜찮은 인물을 찾아내 우리가 직접 권유하는 것도 고려할 생각이다."

- '좋은시장학교'의 운영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가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준비된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희망제작소 시장학교를 졸업한 것이 '좋은 브랜드'가 될 수도 있지만 '천형의 낙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런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좋은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확신한다. '좋은시장학교'를 졸업한 150~200명 중에서 10%만 당선된다고 해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좋은시장학교'를 졸업한 시장은 정말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이미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선 4기 자치단체장 37명을 대상으로 시장학교를 열었던 전례가 있다. 교육의 효과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곳곳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당시 내가 '시장 십계명'을 써 줬는데, 다수가 그것을 사무실 벽에 걸어 놓았다고 하더라.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청렴'인데, 뇌물을 전달하려는 민원인이 있으면 그 십계명을 보여줬다고 고백한 단체장도 있다."

- 당시 '시장 십계명'을 만들어 제시했는데, 화이트보드에 써놓은 '우리 시대의 목민심서'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는 공직자가 취임할 때부터 물러날 때까지의 가이드라인이 잘 정리돼 있다. 예컨대 목민심서 율기육조(律己六條) 제가(齊家) 편에는 '청렴한 선비가 고을살이를 나갈 때에는 가루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 가루는 처자를 이른다'는 대목이 나온다. '고을살이 나가는 사람이 버려야 할 3가지'라는 표현도 있다. 그런가 하면 목민심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해관육조(解官六條) 유애(遺愛) 편에는 '목민관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떠나야 한다. 그러나 비록 떠나가더라도 사랑은 남겨 놓아야 영광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 현재 시점에서도 유의미한 지침인 것 같다.
"실제로 민선 3기 자치단체장의 35%가 형사상 문제가 있었다. 일부의 경우는 억울한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10명 중에 3명 이상은 형사상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목민심서에서는 임명장을 받기 전부터 임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제시돼 있다. 현대 사회에는 윤리적 문제가 더 많으므로 이런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손학규와 김문수의 손길도 뿌리쳤다

- '시장 십계명' 중에서 '재선 생각을 버리라'는 대목이 인상적인데?
"한 지자체의 장이 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소중한 기회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준비한 비전을 소신껏 펼칠 수 있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이 지자체의 장이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행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재선에 욕심을 갖다 보면 자꾸 인기에 영합하게 된다. 나아가 권력자에 줄을 서야 하고, 비밀스런 돈을 모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사는 형국이 돼 버리는 것이다.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고 지역 주민과 더불어 고민하고 일한다면 재선이 아니라 삼선 이상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든 진실은 통한다. 시장·군수·구청장의 진심을 주민들이 모를 리 없다."

- 박 변호사는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선 후보로 거론됐다. '좋은시장학교' 때문에 괜한 정치적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걱정되지는 않나?
"의심을 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지만, 그동안 내가 해 온 일과 철학을 믿는다면 그런 오해는 이제 그만 해도 좋지 않을까. 만약 내가 진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의 중심 쪽으로 갔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17대 총선 때 김문수 지사가 두 번이나 찾아와서 나에게 공천심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번 18대 총선 때는 손학규 대표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정치에 뜻이 있었다면 벌써 어느 정당이든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야의 범주를 뛰어넘어서 이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희망제작소가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박원순의 '시장 십계명'
재선(再選) 욕심 버리면 성공한다?
박원순 변호사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직후 이틀 동안 진행된 시장학교에서 '성공하는 시장이 되기 위한 십계명'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지난 2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왔고, 6월 20일 좋은시장학교 입학식 특강에서 다시 선보이게 될 '시장(군수·구청장) 십계명'의 요지를 여기 소개한다.

1. 청렴하면 탈이 없다.
"큰 뜻을 세우면 반드시 청렴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목민심서) 부적절한 만남 자체를 거절하라. 만나더라도 언제나 배석자를 앉혀라.

2.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일당백의 능력을 갖고 있는 외부 인재를 스카우트하라. 좋은 인재라면 삼고초려라도 하라. 외부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라. 싱크탱크를 만들어라. 인재를 찾기보다 인재를 키워라.

3. 시장이 공부하는 만큼 지역은 발전한다.
학습모임을 만들어라. 전문가를 초빙하거나 방문하라. 수첩과 노트북을 끼고 다녀라. 전직 시장들로부터 족집게 과외를 받아라. 외국을 밥 먹듯이 드나들어라. 혁신하고 또 혁신하라.

4. 잘 설계된 시정 밑그림, 10년을 좌우한다.
좋은 설계도면이 좋은 건축물을 만든다. 평가는 4년 후에 받으니 서둘지 마라. 자신의 공약을 원점에서 다시 보라. 성공한 시장에게 배우고 전직 시장의 정책을 무조건 뒤집지 말라.

5. 선택과 집중, 리더십의 핵심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 사람들은 여러 개를 기억하지 않는다. 하나를 성공시키면 나머지 아홉은 저절로 된다. 쓸모없는 행사에 나가지 말고 실무자에게 위임하라.

6. 창조적 대안 없이 지역의 미래 없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를 보려고 대서양을 건넌다. 차별성이 경쟁력이다. 남이 하는 것과 반대로 하라. 남들이 소홀히 하는 것에 투자하라. 다음 시대를 준비하라. 

7. 겸손한 시장 싫어하는 사람 없다.
겸손만큼 좋은 미덕은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다. 시장은 권력이 아니라 희생의 자리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큰절 연습을 하라. 시장실은 검소하게 편리하게 꾸며라.

8. 지방의회와 시민단체는 시정의 동반자다.
언론기관, 시민단체와 정기적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라. 크고 작은 일들을 수시로 상의하고 조언 받아라. 프로젝트와 외주를 많이 주는 대신에 철저히 검증하라. 비판을 두려워 말라.

9. 주민참여가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다.
Empower the people의 원리를 잊지 말라. 베를린의 미래위원회, 함부르크의 10대 부흥전략, 뉴질랜드의 시민참여 마스터플랜, 청주의 시민참여기본조례 등 국내외 사례에서 배워라.

10. 재선 생각을 버리면 재선 그 너머가 보인다.
시장 집무 첫날 이렇게 다짐하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 붓는다. 여한 없이 최선을 다한다. 늘 처음처럼,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일한다.

대담=정지환 대표기자 ssal@ytongsin.com
정리=장지혜 수습기자
사진=한승호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의도통신 59호(4월 28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원순, #희망제작소, #여의도통신, #정지환, #시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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