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5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선 2007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우승을 차지한 안산 신한은행의 축하연이 열렸다. 우승의 주역인 전주원, 정선민, 하은주, 최윤아 등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동료 및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이 광경을 행사장 출입문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수가 있었다. 수술대에 올라 선수등록을 하지 못해 소속팀의 우승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센터 강지숙(29 ·구리 금호생명)이었다. 지나가는 동료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있던 강지숙에게 '우승 축하연'이라는 행사는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은 느낌이었다.

 

친정을 물리치고 싶었던 강지숙

 

심장수술을 하고 돌아온 강지숙  강지숙의 소원은 플레이오프에서 용인 삼성생명에 승리 한 뒤 친정팀 안산 신한은행을 만나 이겨서 우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다. 그래도 지난해 꼴찌팀 구리 금호생명을 3위로 끌어올린 공은 크다.

▲ 심장수술을 하고 돌아온 강지숙 강지숙의 소원은 플레이오프에서 용인 삼성생명에 승리 한 뒤 친정팀 안산 신한은행을 만나 이겨서 우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다. 그래도 지난해 꼴찌팀 구리 금호생명을 3위로 끌어올린 공은 크다. ⓒ WKBL(여자프로농구연맹 제공)

강지숙은 지난 2006년 9월 겨울리그 개막 한 달여를 앞두고 '심실중격결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의 좌우심실 사이에 있는 심근조직에 작은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겨울리그 선수등록을 포기 한 채 같은해 12월 수술대에 올랐고 지난해 5월 완치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소속팀 신한은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없는 사이 신한은행에는 202cm의 하은주(25)라는 대형 센터가 자리 잡았다. 게다가 진미정, 선수진 등 언제든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강지숙은 1997년 신한은행의 전신인 현대 여자농구단부터 이어왔던 인연을 '임의탈퇴'라는 형식으로 끊어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 둥지를 튼 곳은 지난해 겨울리그에서 '꼴찌'의 수모를 겪었던 구리 금호생명. 금호생명은 경기를 잘 해나가다도 막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맥없이 패하던 팀이다.

 

신장 198cm의 강지숙이 영입되면서 금호생명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강지숙과 올시즌 금호생명에 터를 잡은 이상윤 감독의 끈기 있는 지도력이 버무려지면서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올시즌을 3위로 마무리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 와중에 강지숙은 5라운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금호생명은 3위 자격으로 2위 삼성생명과 치른 플레이오프에서 1승3패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2패 뒤 1승을 한 지난 12일 경기 종료 뒤 양 무릎에 얼음찜질을 하고 인터뷰 룸에 들어온 강지숙은 "3차전처럼만 한다면 5차전까지 가서 승리한 뒤 챔프전에 가서 신한은행과도 대등하게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친정팀에 대한 애증을 보였다.

 

아쉽게도 강지숙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삼성생명은 패기와 체력을 앞세운 금호생명에게 노련함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노련함의 중심에는 변연하, 박정은, 이종애 등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이들이 있었고 외곽에는 그들을 조율하는 포인트가드 '미소 천사' 이미선(28)이 있었다.

 

소원은 '미소 천사' 이미선이?

 

제대로 한 시즌 보낸 이미선 '미소천사' 이미선은 올 시즌 날아다녔다. 지난해 라이벌 안산 신한은행의 우승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 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 제대로 한 시즌 보낸 이미선 '미소천사' 이미선은 올 시즌 날아다녔다. 지난해 라이벌 안산 신한은행의 우승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 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 WKBL(여자프로농구연맹 제공)

이미선 역시 강지숙과 비슷한 처지다. 이미선은 지난 2005년 7월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1년간의 외로운 투쟁 끝에 재활에 성공, 2006 여름리그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개막 이틀 전 왼쪽 무릎십자인대가 끊어져 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경기를 조율하는 가드의 양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는 것은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이한 것과 다름없다. 그의 부재로 삼성생명은 박정은이 가드와 포워드 역할을 동시에 해내며 2006 겨울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듬해 겨울리그는 달랐다.

 

그는 지난해 2월 양쪽 무릎에 붕대를 감고 춘천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출전하며 복귀를 신고했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와 15분 40초밖에 소화하지 못한 것. 그는 결국 챔피언결정전에서 소속팀이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현대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신한은행에 2승3패로 무릎 꿇은 장면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신한은행에는 노련한 '미녀가드' 전주원(36)이 버티고 있었고 최윤아(23)라는 젊은 가드가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 경기장에 쏟아내고 있었다. 삼성생명에도 김세롱이라는 젊은 가드가 있었지만 이미선의 부재는 감출 수 없는 아픔과 같았다. 당연히 올 시즌 목표는 팀의 우승이다.

 

올 시즌 시작과 함께 이미선은 펄펄 날았다. 우리은행과의 개막전부터 4점 12도움으로 정덕화 감독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더불어 든든한 가드의 존재는 선수단 전력의 안정을 가져오는 효과를 발휘했다. 가로채기 1위(평균 2.50개), 도움 2위(평균 5.32개)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금호생명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가로채기에 성공해 추격을 끊었다.   

 

신한은행과 묘한 인연을 가진 강지숙의 소원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다행스럽게 신한은행과 또 다른 인연이 있는 이미선이 강지숙의 소원을 대신 들어줄 기회를 잡았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의 소원은 '레알 신한'이라 불리며 탄탄한 전력을 갖춘  신한은행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이미선이 신한은행의 2년 연속 우승을 저지하면 새로운 시즌, 강지숙의 소원이 실현될 가능성도 커진다. 과연 소원은 이뤄질까?  

2008.03.17 10:38 ⓒ 2008 OhmyNews
강지숙 이미선 여자프로농구 안산 신한은행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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