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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건강을 우려해 세손에게 양위를 시도하는 영조. 28일 방영될 <이산> 제39회 예고편에서.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 세손에게 양위를 시도하는 영조. 28일 방영될 <이산> 제39회 예고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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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기억력도 혼미하기만 하다. 이따금 헛소리도 잘한다. 드라마 상에서 그의 병명은 치매(매병)다.

<이산>의 최근 방영분에서는, 정순왕후가 정신이 혼미한 영조를 이용해 오빠 김귀주의 사면 교지를 쓰도록 유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묘사된 적이 있다. 아무도 몰래 도성에 돌아온 김귀주가 정후겸과 홍국영을 혼내주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그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국왕의 교지에 의해 ‘합법적’으로 사면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노인성 치매 때문이란다. 적어도 드라마 상으로는 그러하다.

그럼, 실제의 영조(1694년 출생, 재위 1724~1776년)는 정말로 치매에 걸렸을까? 국사를 그르칠 정도로 영조의 정신이 정말로 혼미했던 걸까?

영조의 병명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공식 사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기록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승정원일기>나 <영조실록> 등에 묘사된 영조의 모습을 통해 그의 병명을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다음에 소개되는 몇 가지 증상들을 보면서, 독자들께서 영조의 병명을 직접 판정해보기 바란다.

▶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영조실록>의 ‘영조대왕 행장’에 따르면, 영조 51년(1775) 12월 당시 태의(太醫)가 밤낮으로 영조 옆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약원제조(藥院提調) 역시 새벽부터 저녁까지 옆에서 시중들면서 탕제를 3번씩 올렸다고 한다. 또 이 시기에 영조는 담이 자주 결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써 “여러 해” 전부터 계속되었다 하니, 말년의 영조가 거의 방에 누워서 지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약원제조가 시중을 들 정도였으니,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 시력이 매우 안 좋았다.

영조 48년(1772)이면 영조가 우리 나이로 79세인 때였다. 이 해 9월 21일(음력)에 홍국영을 포함한 과거 합격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영조가 승지에게 “홍국영이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다른 합격자들 중 몇 명에 대해서도 그런 질문을 했다.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도 외모를 분간하지 못한 것이다.

세손의 대리청정 문제로 홍인한(대리청정 반대파) 등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영조 51년 12월 이후에 그는 “내가 영상도 못 알아보고 좌상도 못 알아볼 지경인데, 어떻게 국사를 챙길 수 있겠느냐?”며 대신들을 나무란 적이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외모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할 정도였다면, 영조의 시력이 매우 나쁜 상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신이 혼미했다.

<이산>의 최근 방영분에서는 대전 출입이 금지된 정순왕후가 어명을 무릅쓰고 알현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그는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대전으로 달려간다. 대전 내관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영조를 직접 만나 돌파구를 뚫으려 한다.

영조와 눈길이 부딪혔다. ‘분명히 나를 질책할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조는 자신이 중전에게 내린 금족령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인을 반갑게 맞아들인다. 이게 웬일이지? 정순왕후는 속으로 놀란다.

남편이 일시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음을 간파한 51세 연하의 부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라버니 김귀주를 한성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김귀주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귀양 갔는지를 ‘깜빡’한 영조는 한밤중에 도승지를 불러 교지를 쓰게 한다. “김귀주를 불러들이라!”

그럼, 실제의 영조는 과연 이 정도로 상태가 나빴을까? 영조 51년 12월 이후에 관한 <영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좌의정 홍인한이 “왕의 환후를 틈타 여러 차례에 걸쳐 홍지해를 우의정으로 천거했다”고 한다. 왕의 정신이 혼미한 틈에 자파 홍지해를 우의정으로 천거한 것이다.

홍인한이 결국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런 에피소드는 말년의 영조가 실제로 정신이 혼미해서 업무상의 실수를 저지르곤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틈을 놓치지 않고 세손의 최대 라이벌인 홍인한이 국왕의 서명을 받아내려 한 것이다. 왕의 정신이 혼미한 바로 그때에 홍인한 등이 대전을 찾은 것을 보면, 대전 내에 영조의 몸 상태를 홍인한 등에게 수시로 알려준 첩자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잠꼬대 같은 말”을 잘했다.

영조 51년 12월에 영조는 세손에게 “앞으로는 나의 잠꼬대 같은 말이 선포되지 않도록 네가 잘 막아달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정신이 혼미한 영조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그대로 조정에 전달되는 일이 흔했던 것이다. 홍인한이 영조의 정신이 혼미한 틈에 자기편 사람을 우의정으로 만들려 했던 일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손에게 신신당부해 놓고도 영조는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다. 한겨울에 그것도 한밤중에 백관회의 소집명령을 내린 것이다. 대신 몇 명을 부르라고 한 게 아니라 백관(百官)을 다 부르라고 한 것이다. 한밤중에 모이라고 한 건 아니고, 그런 소집통지를 한밤중에 내린 것이다. 물론 그 말 역시 ‘잠꼬대 같은 말’이었다.

이 명령을 집행할 것인가를 놓고 세손과 홍인한 사이에 한밤중에 한바탕의 소동이 벌어졌다. 세손은 “내일 날이 밝은 뒤에 전하의 용태를 보아가며 소집통지를 보내자”고 했고, 홍인한은 “지금 당장 소집통지를 보내야 한다”며 맞섰다. 결국 홍인한의 고집대로 한밤중에 백관에게 소집통지가 전달되었고,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영조가 홍인한을 심히 질책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상이 영조 말년에 영조가 보인 건강상태에 대한 공식 역사서의 기록들을 간추린 것이다. 위의 기록들에 따르면, 영조 말년의 건강상태는 ▲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 앞에 있는 사람마저 잘 식별하지 못했다 ▲ 정신이 혼미했다 ▲ 별 생각 없이 잠꼬대 같은 말을 내뱉었다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영조의 병명을 무어라고 판정해야 할까? 보다 더 정확한 진단은 의사나 의학자들이 할 일이겠지만, 위와 같은 상태를 ‘심각한 노인성 질환’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드라마 <이산>에서 영조의 병명을 ‘노인성 치매’라고 판정한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이산, #영조,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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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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