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제작사 제공

▲ 포스터 제작사 제공 ⓒ MK 픽쳐스

며칠 전 잠이 오지 않아 심야에 나가 골라 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라서 기본적으로 감동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었고, 보고 나서도 잠못 이루는 밤에 만난 영화로서는 대만족이었다.

능청스런 연기파 배우들의 꽤 사실적인 일상연기와 매우 그럴듯하게 표현된 운동선수로서의 '불가피한 굴욕과 복종'의 모습들을 접하면서, 그럴 것이다 하면서 상상해 왔던 운동선수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단, 김혜경(김정은)은 이야기 전개상에서 중요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파워가 떨어지고 어정쩡한 위치에서 연기를 펼쳤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지도자로 변신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있는 운동선수의 실제 모습과 더욱 닮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지나치게 카리스마넘치는 연기가 아닌 것이 더욱 사실적일 것이라는 역설적인 생각도 든다. 우리 체육계 현실을 얼추 짐작해 보면 답이 나올 만한 어정쩡한 캐릭터였다는 것.

이야기 전개상의 또 한 가지 흥미거리는 장보람(민지)같은 신세대 선수와 애낳고 퇴물취급받는 아줌마 선수들 사이의 선후배간 불협화음, 또 그것이 어떻게 해소되는지에 관한 미학적(!) 분석에 있다. 즉, 운동선수들이 서로 질시하고 경쟁하면서도 결국 한데 부대끼면서 '팀'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과장도 어설픔도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역도부와 충돌하는 정란의 식당 신, 장보람이 오래 간직했던 공에 김혜경의 사인을 부탁하는 장면과 같은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도 있지만, 이 또한 실제 있을 법한 일들로써, 전체적으로 팀 스피리트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 이상으로 행간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미학을 개입시키고 있었다고 본다. 거기에는 여성특유의 동류의식도 작용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으로 흐르지 않는 균형을 보여줬다. 감독은 이렇게 '관계'를 펼치고 완성해가는 몇 가지 지점에서 기꺼이 박수를 쳐줄 만한 냉철한 감각을 발휘해 냈다.

다만, 신임감독 안승필(엄태웅)의 캐릭터는 초반에 너무 안티아줌마적이고 연기도 과장된 면이 있어서 김혜경과의 관계 및 종반의 태도급반전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해가지 못한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고, 조연으로 활약한 코치진들의 시종일관 방관적인 태도들도 팀에 녹아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까칠한 운동선수들과 스포츠행정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클라이맥스는 경기 장면인데, 실제상황을 잘 연출한 경기장면과 모두 자신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팀안에서의 쓰임을 잘 파악하고 뛰었던 실제 선수들의 모습을 적확하게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반까지 펼쳐졌던 아줌마 선수들 개개인의 갈등과 가슴 속에 맺힌 것들이 경기장 안에서 온전히 폭발하듯 해소되지 못한 것만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잘 짜여진 각본은 물론 실제상황에 가깝도록 연출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줌마들 개개인이 경기에서 저마다 한몫씩 하는 것으로 해소되는 부분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극적인 무엇은 없었을까? 저마다의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아쉬움은 짜릿하고 신비로운 감동에 길들여진 관객으로서의 욕심일 뿐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한국핸드볼, 아니 한국스포츠계의 현실을 슬프게 폭로한다. 프로야구 현대팀의 갈 곳 없는 흥부신세가 기가 막히고, 격투기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씨름선수들의 막막한 미래가 오버랩된다. 한국스포츠계의 고질적인 군사문화, 독단성, 폭력성, 무책임성 등이 혀끝에서 스물거린다. 참자. 참고 나중에 씹어주자. 다만, 영화 속 그들의 최고의 순간들은 단절된 추억으로 남겨질 것만 같아 슬프고 안타깝다. 그게 남겨진 현실의 문제니까.

실제와 너무 닮아서 아쉬움이 많은 영화. 실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지만 여전히 다 드러내지 못해서 안타까운 영화. 그러나, 충분히 감동할 만하고, 충분히 함께 눈시울 적시며 환호할 만한 영화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나 떠올려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무브온21, 엠파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1.22 11:4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무브온21, 엠파스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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