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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투표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 87년 대선 당시 80%에 육박하던 20대 연령의 투표율은 14~16대 대선을 거치며 71%, 68%, 56%로 급락했다. 급기야 이번 선거에서는 19세부터 투표가 가능함에도, 50%를 밑도는 투표율이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념이 아닌 경제가 중요한 시대. '민주화'란 단어가 지난 시절만큼 절박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그 원인을 오롯이 젊은이들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만이 '절대 선'이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 대해 그들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까. 10일 저녁 광화문에는 2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6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대선주자인 정동영·이명박·권영길·이인제·문국현·이회창(기호순) 등을 지지하는 이들이다. 이번 선거는 물론 평소에 갖고 있던 정치철학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취중토크 현장. 그들의 젊음이 생기발랄하게 뿜어져 나왔다.

 

후보도 각각, 지지 이유도 제각각

 

사회 "자기소개와 각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말해달라."

 

박승종(27·이명박 지지) "숭실대 경영학과 4학년이다. 많은 친구들이 '너는 왜 이명박 같은 사람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중 40~50대를 생각하라고 한다. 지금 5년을 잘 보내야 한다. 그 답이 바로 이명박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고 현대에서 몸바쳤다. 또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이 찾지 않나. 많은 경제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분이다. 때문에 '왜 이명박 같은 사람을 선택 안 하냐'고 묻는다."

 

김진성(27·이인제 지지) "현재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예전에 음료회사에서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는데 회사도 잘리고 막막했다. 그 때 실업자 급여수당을 60만원씩 6개월을 타게 됐다. 굉장히 고마웠는데 알고 보니 이인제 후보가 노동부 장관시절 하신 일이었다. 바로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와 닿는 일을 하신 거다.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이동학(26·정동영 지지) "경기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도자의 선택 기준은 세 가지 정도라고 본다. 정책과 공약, 그것을 실행할 만한 능력과 자질, 그리고 각 면면에 새겨진 철학이라고 본다. 그 기준에 맞춰 몇 번을 뜯어보고 뒤집어 봐도 정동영 후보가 그나마 '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김보민(21·문국현 지지) "서강대 정외과 2학년이다. 친구들이 '놀러다닐 땐데 왜 후보지지 같은 걸 하냐'고 묻는다. '내가 살만한 나라를 만들 분을 뽑고 싶다'고 한다.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더럽다'라는 전제한다. 처음 정치외교학과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집에 돈 좀 있냐, 너희 아빠 뭐 하시니'라고 묻곤 했다. 또 친구들은 '어차피 대통령 누가 뽑혀도 정치는 더러운 거 아니냐'고 한다. 그런 의식을 바꿔줄 사람은 문국현 후보라고 생각한다."

 

최규화(26·권영길 지지) "고려대 국문과 4학년이다. 2002년 첫 투표권이 생겼을 때도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대학생이 되고 머리가 굵어지며 '사회가 이상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사회 모습이 드러나며 세상은 뒤틀어져 있단 걸 느꼈다. 누군가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민주노동당을 알게 됐다. 보수와 수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크기지만 부끄럽지 않은 당과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홍승표(27·이회창 지지) "연세대 법학과 3학년이다. 지도자나 CEO는 단면이 아닌 전체적인 면을 봐야 한다. 개미는 코끼리의 다리를 볼 뿐 전체적인 인식을 못 한다. 그런 면에서 국정운영을 두루 거쳤고, 정치·경제·안보 등 여러 방면에 있어 이 나라를 이끌어 주실 분은 이회창 후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는 정치인들, 투표하기 싫어진다

 

사회 "20대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갈수록 저조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박승종(이명박) "삶이 너무 힘들어서다. 주위를 봐도 수업·도서관·자격증·아르바이트·인턴 등등.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기 삶도 가늠하기 힘든 이들이 어떤 후보의 정책을 보고 고민한다는 것이 힘들다. 기존 정치인들이 일자리 창출도 못 하고, 빈부격차만 늘여 놨다.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바로 보고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

 

김진성(이인제) "나는 대학을 안 가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예전엔 누가 돼도 똑같고, 심지어 내가 해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도 했다. 사실 투표라는 게 피부로 와 닿아야 할 마음이 생기는 거다. 내가 느끼지 못 하는데 하고 싶겠는가? 이인제 후보가 했던 많은 일들을 느꼈기에 이번에 투표를 할 마음이 생긴 거다."

 

이동학(정동영) "크게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1차적이고, 두 번째는 이 사회의 구조다. 젊은이들이 주체적인 발상을 못 하고 무기력하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90년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후 IMF가 터지며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됐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돼 버렸다. 대화를 해야 하는데, 과거 신한국당은 '20대는 다 빨갱이'로 몰았다. 그 때부터 젊은이들의 문제의식, 비판의식이 떨어지며 정치적 무관심이 시작됐다고 본다. 정당을 자극해서 제도적으로 20대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김보민(문국현)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다. 후보들 공약대로만 했으면 우리나라는 '원더랜드'다. 어차피 안 바뀔 거 왜 하냐는 거다. 내 또래가 첫 투표라 원래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후보들 TV토론을 본 친구들이 "저걸 5분 보느니, 원더걸스를 보겠다"라고 한다(일제히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이 서로 까 내리기에만 급급하다. 투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최규화(권영길)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지를 모르는 거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모습으로는 실현할 수 없기에, 누구보다 큰 좌절을 하고 있는 세대라고 본다. 정치는 '정치가'만이 하는 것이라고 묶어 둔 것이 문제다. 학생·직장인·농민 모두가 삶에서 정치를 할 수 있을 때 그런 무관심은 해소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홍승표(이회창) "정치인들의 무능함 때문이란 생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많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교육은 하면서 왜 정작 중요한 정치 교육은 안 하는가. 구성애씨가 성교육을 시키듯이, 정치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 "이명박이 누구냐?"고 묻는 이도 있어

 

 

사회 "실제 주변 친구들의 정치적 관심은 어떤가. 또 가족 간에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 언쟁을 벌인 적은 없는지."

 

박승종(이명박) "다들 관심 없다. 심지어 지난 여름, 이명박 후보에 대해 물어보니 '그게 누군데'라고 되묻는 이도 있었다. 또 BBK 사건 때문에 김경준이 TV에 나오니 '저 사람 나중에 국회의원 나오는 거 아냐'라는 친구도 있었다. 답답하다. 사실상 마음 맞는 친구 한두 명 빼면 관심이 없다. 사실 부모님은 이회창 후보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TV를 보며 싸운 일도 있었다(웃음). 잘 설득시킬 생각이다."

 

김진성(이인제) "노량진에는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지지하는 이들도 제각각이다. 아직 지역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다. 영남·호남·충청권으로 갈려 지지한다. 지역감정은 문제라고 본다. 집에서는 아버지는 정동영, 어머니는 이회창 지지자라 세 사람 모두 다르다. 어머님이 완강하시다(웃음)."

 

이동학(정동영) "주변은 대개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 간혹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친구에게는 왜냐고 꼭 묻는다. '경제를 살려야지'라고 답하는데, '어떻게?'라고 물으면 말을 못 한다. 지지의 논리가 없다. 그래서 꼬박꼬박 짚어주면 철회를 한다. 어머님이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데 좀 더 이야기 나누어서 정동영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겠다."

 

김보민(문국현) "관심이 없진 않다.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본다. 포털사이트 첫머리가 정치기사 아닌가. 눌러는 보는데, 그냥 넘긴다. 나누는 이야기도 '허경영 후보가 결혼하면 돈 준다며?'정도의 흥미 위주다. 재미로만 보는 것 같아 아쉽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한나라당의 '짱' 팬이다. 노 대통령 당선 때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도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다니 성을 갈라고 하신다. 같을 순 없으니까, 토론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은 현상이라 본다."

 

최규화(권영길) "친구들이 '찍을 사람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먹고 살기 바쁜데 고민할 시간이 있냐고. 하지만 그걸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정치를 바꾸는 데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부모님 고향이 '한나라당이 허수아비를 세워도 당선된다'는 대구다. 사실 아버지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뻔 했는데, 어머님이 이혼서류를 내밀어서 간신히 무마가 됐다(웃음).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 대안이 달랐던 것뿐이다. 지금은 아버지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주신다."

 

홍승표(이회창)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 한 구청장의 선거운동원을 한 경험이 있다. 세 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연설 때는 심하게 서로를 헐뜯지만 사석에서는 서로 반갑게 웃으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지금 대선 레이스를 달리는 후보들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챙겨주는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끼리의 만남. 조금은 어색했던 첫 인사.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서로를 위해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며 밝은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태그:#대선,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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