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7일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정무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7일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지난 4개월간 공석에 놓여있던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이 결국 7년만에 국내파 지도자로의 회귀로 결정되면서 축구팬들의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감독 선임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의 무능한 행정력, 그 대상이 7년 전 이미 실패한 실험으로 꼽힌 허정무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구설의 빌미를 제공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과정상의 아쉬움을 제외하면 결과적으로 국내파 감독 선임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확고한 명분없이 외국인 감독의 선임에만 목을 매달다가 허사로 돌아가며 ‘대타’로 국내파 감독을 선임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본의 아니게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국내파 감독으로의 복귀는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선택이었다.

 

2001년을 시작으로 한국축구는 5명 연속으로 외국인 감독을 거쳤다. 여기서 히딩크를 제외하고 성공이라 부를 만한 감독은 유감스럽게도 없다. 이중 3명은 임기를 마치지 않고 자의 혹은 타의로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에 집착하는 이유

 

그동안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큰 틀에서 선진축구에 대한 노하우 전수와 단기전에 걸맞는 한국축구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축구가 기대했던 외국인 감독 효과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치우쳐 있었다. 한마디로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목표로 한 단기간의 ‘족집게 강사’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국축구가 장기적인 비전이나 투자보다는 외국인 감독의 이름값에만 집착해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한국축구가 이제껏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결정적인 이유는 과거에서의 경험에 대한 학습효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협회 차원의 비전이나 계획보다는 감독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한 경향이 컸다. 감독의 재임기간 중에 남겨놓은 성과에 대하여 왜 그러한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실종된 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결과론에만 집착하기 일쑤였다.

 

또한 외국인 감독보다 국내 감독들에 대한 평가에서 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정남, 김호, 박종환, 차범근, 허정무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내파 대표팀 감독들은 종합적인 성과보다는 단기간의 결과 위주로만 깊이 각인되어 있다.

 

김호 감독은 94 월드컵 지역예선에서의 고전과 본선 16강 진출 실패, 박종환 감독은 아시안컵 이란전에서의 충격적인 2-6 패배,  차범근 감독은 98 월드컵 네덜란드전 0-5 패배와 사상 초유의 대회기간 중 경질이라는 치욕, 허정무 감독은 시드니올림픽 예선탈락과 2000 아시안컵의 졸전에 대한 나쁜 인상들이 강하다. 이들이 감독 수행 과정에서 보여준 나름의 성과와  경험 등은 한순간의 결과로 인하여 모두 부정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김호 감독은 94 월드컵 본선에서 히딩크 이전까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근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차범근 감독은 90년대 중반 위기상황에 놓여 있던 한국축구를 이어받아 당시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던 대표팀을 이끌고 오히려 ‘도쿄대첩’과 역대 지역예선 최고성적이라는 성과를 통해 월드컵 본선행을 일궈냈다.

 

허정무 감독은 시드니올림픽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본선 2승(이것은 4년뒤 8강에 진출했던 아테네올림픽 김호곤호의 1승2무보다 더 좋은 성적이다)이라는 좋은 성과를 일궈냈고,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천수 등 이후에 2002 월드컵 세대의 중심이 되는 유망주들을 발굴해내며 ‘세대교체’의 밑거름을 만들어냈다.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이들이 활약하던 90년대와 지금의 대표팀은 제반 환경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감독에 대한 처우는 말할 것도 없고, 협회 차원의 정보력이나 세계축구의 동향에 대한 이해도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이 위기상황에 처할 때마다 협회는 감독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패막이로 삼기 일쑤였다. 과연 당시 이들에게 2000년대의 외국인 감독들만큼의 인내와 지원이 뒷받침됐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국내파 감독의 귀환에 대하여 언론과 축구팬들도 우려의 시선이 적지않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감독의 개인적인 이름값과 자질을 섣불리 논하기보다 그에 걸맞는 지원과 체제가 구축되는지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역대 국내파 감독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도 이 기회에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허정무 감독은 경력이나 자질 면에서 역대 외국인 감독들에 견주어도 크게 뒤지는 편이 아니다. 선수와 코치, 트레이너로서 무려 세 차례의 월드컵 본선을 체험했고, A대표팀과 올림픽팀 등 각급 대표팀과 클럽팀을 모두 지휘해본 경력이 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나 핌 베어벡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 감독 후보군에 선정되었던 마이클 맥카시보다도 뒤질 것이 없는 커리어를 갖춘 스타 지도자다.

 

7년만에 돌아온 허정무 감독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는 , 성적이 말해줄 것이다. 오히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감독을 둘러싼 제반 환경의 수립에 있다. 국내파 감독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간직하고 있는 언론과 축구팬들. 감독을 방패막이 삼아 내부의 자발적인 변화를 꺼리고 있는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개혁이야말로 새로운 대표팀의 성공을 위한 필수 요소들이다.

2007.12.09 12:10 ⓒ 2007 OhmyNews
허정무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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