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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성 기자는 홍익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 사업으로 철거위기에 놓인 동대문 운동장
동대문 4거리에서 흥인지문 방면 오른쪽 구역(을지로6가)에는 동대문야구장, 축구장이 자리잡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의 역사는 1926년 일제치하 시대로 올라간다.
 
광복 후 동대문운동장은 중보수(1966, 1968년)를 거쳐 현재까지 한국 스포츠 경기의 증거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26년 지어진 동대문야구장은 2006년도에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사항인 동대문운동장 철거 및 공원화로 인해 그 운명이 결정됐다. 

 

서울시는 동대문야구장을 2007년 11월에 철거하고 축구장은 2008년 3월에 철거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서울시는 동대문야구장 부지를 세계적 랜드마크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동대문야구장 철거를 위한 행정기관의 분주함과 속에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아마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야구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동대문구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축구장의 풍물시장 노점상인들 역시 '생존권'를 외치며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여론 수렴이 없는 서울시의 정책을 비판하며 반대운동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 목소리를 담았다.

 

2007년 8월 3일, 그리고 마지막 봉황대기

 

2007년 8월 3일, 동대문야구장에서는 제3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개막되었다. 37년 동안 이어진 전통과 명문이 있는 대회였지만 아마츄어 야구팬들은 특별히 이번 대회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야구팬들은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번 대회는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리는 마지막 봉황대기이지 않습니까?" (황일용·42·서울)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경동고 투수 이형주(17) 선수는 "예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듣던 구장이었는데 없어진다니 아쉽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대회이니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고 말했다.

 

다음날 4일 아침, 부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을 찾아온 한 사람이 있었다. 부천에 사는 김대영(63·중동 신도시)씨다.

 

 마지막 봉황대기를 지켜보는 한 중년 야구팬.
그는 일찌감치 동대문야구장에 도착해 고교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김대영씨는 자신과 동대문 운동장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달콤한 꿈을 꾸듯 김대영씨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동대문 운동장 옆 성도고등학교를 나왔어. 그때는 야구장에 경기가 열리는 날이 곧 축제였어. 정말 대단했었지. 시합 날이면 야구장이 꽉 차서 암표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표가 없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보려고 악을 쓰다가 결국엔 인근 학교 옥상에 올라서 경기를 보곤 했어.

 

얼마나 사람이 많던지 경기장 안에 허가받지 않는 노점상인들이 수십 명씩 돌아다녀도 허가받은 매점에서 내버려둘 정도였어. 그 많은 관중을 매점 하나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야."

 

고교 야구 인기가 상승하던 1960년대 초반부터 1981년까지, 그리고 동대문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렸던 개막원년인 82년도부터 84년 초반까지 야구장은 활기가 넘쳤다. 고교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주변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고교 야구 경기 자체가 축제였다고 김대영씨는 말한다.

 

"고등학교 방학이 되면 학교는 온통 야구이야기로 꽃을 폈어. 같이 경기를 보러 다니던 사람들 중에 1년 후배 MC 이상벽 씨가 있었고, 1년 선배인 야구선수 백인천씨도 있었지. "

 

1960년대 동대문야구장의 인기와 함께 동대문 지역은 성장해 갔다. 1960년 이전 동대문 운동장 주변지역은 평화시장과 빈민촌만이 있던 불모의 땅이었다. 동대문야구장이 길 건너에는 윤락가가, 반대쪽에는 쪽방, 빈민촌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고교 야구의 인기와 더불어 유동인구가 늘면서 동대문 운동장 주변에는 새로운 역사가 써졌다. 고교야구의 인기와 함께 그 메카인 동대문야구장 주변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유동인구가 늘자 동대문운동장역이 생겨났고, 곧 상권이 커졌다. 주위에 즐비하던 빈민가는 개발의 논리로 떠밀리듯 밖으로 밀려났다. 대신 그 자리에는 빌딩들이 세워졌다. 물론 개발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땐 정말 대단했어.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에 500여명 넘는 이주민들과 경찰들이 대치했는데 이주민들이 대변을 뭉쳐가지고 경찰들을 향해 던지곤 했어. 경찰들은 이리저리 도망가고 말도 아니었었지. 그렇게 주변을 개발시키며 동대문야구장은 성장했어. 그런 동대문이 이제 개발문제로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이다니 이상한 일이지."

 

벌써 40년 가까이 다 된 이야기지만 김대영씨는 마치 엊그제 일어난 이야기를 하듯 생생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영씨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텅 빈 관중석이었다.

 

200~300명만의 학부모, 관계자들만이 응원소리만이 간간히 들리고 있었다. 그 적은 관중들의 손에는 저마다 작은 일정표가 쥐어져 있었다. 그 일정표에는 동대문 철거 반대운동을 진행하는 체육시민연대,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의 요청글이 실려 있었다. 그 글을 보자 김대영씨는 한숨을 내쉰다.
 
"동대문야구장은 내 생각 같아서는 헐면 안 되는 곳이야. 이곳은 문화유산이야. 내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동대문야구장은 80년도 더 되었어. 한평생을 함께 한 것이지, 이곳 말이야, 이곳은 야구를 사랑하는 국민들과 이곳에서 경기를 한 야구선수들에게는 뭔가 향수에 젖는 무엇이 있는 곳이야. 한국 야구 경기장 중 가장 오래된 곳이고 또 프로야구 개막전도 여기서 열렸잖아. 이 운동장은 반드시 있어야 해"

 

 마지막 봉황대기, 그리고 동대문 야구장

 

김대영씨는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를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 그런 그에겐 작은 소망이 있다.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국민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지켜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시 메르데카경기장 같은 기적이 동대문야구장에도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공원화 대신 운동장 리모델링을 해서 동대문야구장이 미국 양키 스타디움과 영국 웸블리구장, 일본 고시엔 구장같은 역사를 지켜가는 운동장이 되는 것을 그는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김대영씨는 잊지 못한다. 프로야구가 개막원년인 1982년에 동대문야구장에서 울려 퍼지던 그 뜨거운 함성을, 그리고 프로야구 원년 4할 타자 백인천의 지휘 아래 펼쳐졌던 엠비씨 청룡과 삼성 라이언즈의 가슴 뛰던 개막전을.

 

동대문운동장, 일제잔재 VS 한국야구 증거물

 

서울시는 2007년 11월 동대문 야구장, 2008년 3월 동대문 축구장을 철거하고 공원화하는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동대문 야구장 철거는 대체구장 건립등의 문제로 2008년 3월 이후로 연기되었다.

 

서울시 균형발전추진본부 서병용(56·공원화 담당직원)씨는 "앞으로 현상 공모한 CG설계를 바탕으로 동대문 공원화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동대문 운동장 철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동대문구장은 일제와도 관련이 있다. 당시 일제가 동대문 성곽을 없애고 그 자리에 운동장을 세운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건설은 당시 일제가 산에 말뚝을 세운 것과 같은 의미였다. 동대문운동장 공원화는 운동장 부지에 성곽을 복원하는 것도 함께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재청 역시 같은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동대문 야구장과 주변 노점상

 

하지만 체육시민연대, 프로야구 선수협회, 전국 노점상 총연합 등을 중심으로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민연대 한 관계자는 "체육시민연대와 전국노점상 총연합등 6개 단체가 뭉쳐서 동대문 운동장 반대를 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은 최초의 야구장, 프로야구 개막 경기장, 그리고 풍물시장 상인들의 터전 등이 걸려있는 곳이다. 보존과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고 철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체육시민연대는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관해서, 서울시가 국민 여론을 수렴한 절차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2002년도 시정개발연구원이 생기기 전에 기능대책계획에서 의견수렴을 한 후 이 사업을 인수했다"고 반박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 및 공원화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보존과 철거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의견이 맞서고 있었다. 동대문운동장이 갖는 역사성 고유성, 그리고 수많은 노점상들의 생존을 위해 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동대문 지역의 쾌적함을 위해 철거 및 공원화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부일(58·강남, 평생교육과)씨는 "틈틈이 동대문에 위치한 풍물시장을 찾고 있다. 이곳은 아주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백화점에서 수십 만원 하는 유명브랜드도 이곳에선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이런 곳을 허물면 안 된다. 보존해야 한다"며 철거에 반대했다. 

 

동대문의 쾌적함을 위해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찬성하는 시민들도 있다. 대학생 유기범(22), 이상용(23)씨는 "동대문야구장 철거에 찬성한다. 지금 동대문은 유동인구도 많고, 건물도 높고 다닥다닥 붙어서인지 막힌 느낌이 든다. 도심 속 공원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동대문을 찾는 외국인들의 생각 역시 동대문 철거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한국을 여행 중인 호주인 나틴(27)씨는 "낡은 운동장 보다는 이곳에 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동대문은 너무 복잡해 보인다" 며 동대문 운동장 철거에 찬성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헤제(hege.29), 메그너스(maguns,27), 한느(hanne,27)는 "동대문 패션몰 근방에 주차공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주차공간을 만들기 위한 공원화라면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해도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메기(30), 릴라 (22)씨는 "동대문구장이 철거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거기서 주말마다 친구들하고 옷 사고 그랬는데, 없어지면 이제 어디서 옷을 사야할지를 모르겠다"며 철거 반대 입장을 보였다.

 

현실적인 대안을 요구하는 시민도 있었다. 임민주(29·직장인)씨는 "운동장 풍물장은 그 시대의 물건과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접할 수 있어서 매우 좋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수요가 많지 않아서 존립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공급자체를 상업으로 하지 않고 전시장으로 사용하여 공공기관의 홍보와 문화의 장으로 만드는 것도 매우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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