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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 한 통 쓰고 쉬퍼라~"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린다. 그 시절 음악다방에는 특유의 중저음 보이스로 느끼멘트를 날리는 'DJ 오빠'가 있었다. 팝송과 풍부한 향의 커피 그리고 DJ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있노라면 '낭만'이 무언지 알 것만 같던 시절. '7080세대'라면 누구나 DJ가 있는 음악다방의 흥취에 젖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커피안' 내부전경
 '커피안' 내부전경
ⓒ 황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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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 강원대학교 근처에 심상치 않은 카페가 있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커브길 지하에 위치한 이 곳은 바로 아련한 추억 속 DJ 박스와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룬 고품격 음악 공간 '커피안'이다. 세월의 벽을 훌쩍 넘어, 이제는 젊은이들에게까지 사랑받고 있는 이곳에서는 사장님이 손수 뽑아내는 '진짜 커피'를 맛볼 수 있음은 물론, 생방송 DJ 멘트까지 들을 수 있어 200%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커피와 DJ박스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커피안' 주인장 강동원(43)씨를 만나봤다.

고등학교때부터 모은 LP판만 8000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지하라서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천장이 높아 탁 트인 느낌이다. 홍대 앞 벼룩시장에서 직접 사왔다는 아기자기한 소품, 깔끔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멋스럽게 놓여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카페 한 켠에 가파른 계단 위에 있는 DJ박스다.

 LP레코터에서부터 최신식 CD플레이어까지...이 곳이 바로 강동원사장이 제일 아끼는 DJ박스다.
 LP레코터에서부터 최신식 CD플레이어까지...이 곳이 바로 강동원사장이 제일 아끼는 DJ박스다.
ⓒ 황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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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가 시중에서 70~80만 원대를 호가하는 귀한 앨범이며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김두수'의 판을 꺼내 보인다. 음악을 좋아해 고등학교 때부터 모은 LP판이 무려 8000장이 넘는다고 한다. "대학생 때, 서울과 평택 일대를 순회하며 용돈벌이로 DJ를 했었다"는 그는, 그 때 그 '맛'을 못 잊어 지금 DJ 박스가 있는 카페를 열게 됐다고 털어 놓는다.

그는 매일 1시간 반 정도, 40년 전으로 돌아가 손님을 사로잡는 DJ가 된다. 즉흥 멘트를 시작으로 사연을 읽고, 음악을 틀어준다. 가수 프로필을 읊는 것도 기본이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 같아요. 젊은 학생들이 흘러간 노래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반면 저도 손님들로부터 최신 음악을 소개 받으며 폭 넓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아요. DJ 박스가 생소하긴 해도 자기 사연이 스피커를 통해 카페 안에 울려 퍼지는 쏠쏠한 매력 탓에 자주 찾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손님들의 사연이 적힌 쪽지들. '커피안' 손님들이 강동원 사장의 DJ타임을 기다리며 남긴 사연들이다.
 손님들의 사연이 적힌 쪽지들. '커피안' 손님들이 강동원 사장의 DJ타임을 기다리며 남긴 사연들이다.
ⓒ 황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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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할아버지 바리스타들이 내 모델"

"정성을 담아 맛있게 뽑아낸 커피 한 잔을 손님에게 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강 사장이 신이 난 듯 커피예찬론을 펼친다. "커피는 기호 식품이에요. 설탕을 넣어 먹는 건 마시는 사람의 자유죠. 단, 프림은 넣지 마세요,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커피안' 대표 메뉴인 '커피안 마일드 블렌드'라는 달콤쌉싸름한 커피향을 음미하며 강씨가 말을 이었다. 그는 "커피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로 나뉜다"며 커피 강의를 시작했다.

원래 커피는 수확한 지 15일 이내에 마셔야만 하며, 92˚에서 추출해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강씨의 설명이다. "배전(로스팅)이 커피의 꽃"이라고 말하는 그는 다른 건 몰라도 커피 볶는 건 본인이 직접 한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뽑아내려면 적어도 10분은 걸린다"며 "바쁠 땐 어쩔 수 없이 조금 늦어지기도 하는데,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젊은 손님들이 컴플레인을 할 땐 '오늘 안에는 나갑니다'라며 너스레 섞인 방송을 내보낸다"고 말했다.

'커피안'의 신선한 커피는 각지에서 직수입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도매로 가져오기도 한다. 이곳 커피맛이 일품인 이유는 강 사장만의 남다른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뒤 커피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을 자주 찾는다는 강씨. "원두커피의 메리트를 알고 커피 장인을 우대하는 일본에서는 60~70세의 노인들이 작은 커피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많다"며 일본의 할아버지 바리스타들이 자신의 역할 모델이라고 한다. 커피뿐만 아니라 초콜릿, 쿠키 등의 사이드 메뉴 또한 직접 만드는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전에 이미 소믈리에(와인 감별사), 빠티쉐(제과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커피안' 주인장 강동원씨가 자신의 DJ부스안에서 'DJ 바리스타'가 되기까지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커피안' 주인장 강동원씨가 자신의 DJ부스안에서 'DJ 바리스타'가 되기까지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 황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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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님 말고"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 꾸미지 않은 옷차림, 외모로 봐선 영락없는 '예술가'다. 10년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7년간 입시학원 선생님으로 살았다는 과거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반기를 들었다. "단순한 것을 못 참는다"는 강씨는 어느 날 문득 "이대로 살다간 평생 직업을 못 바꾸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입시학원을 충동적으로 그만두고 나오는 길에 귀부터 뚫었다는 그는 "귀걸이를 사고, 파마를 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된 것 같았다"고 말한다. "현실에 타협하기 싫어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을 찾아 나섰던 것뿐"이라는 그의 말에 사뭇 진지함이 배어 나왔다.

DJ 겸 카페 사장이 되기까지는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둔 그를 '제 정신'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레스토랑은 성공이었다. 장사도 잘 됐고 수입도 짭짤했다. 그러나 항상 음악에 목말라 있었던 그는 부인에게 레스토랑을 맡기고 고향인 춘천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단정한 머리에 반듯해 보이는 안경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던 영어선생님은 이제 자유를 갈망하는 중년의 DJ로 바뀌었다. "선생님으로 살며 존경도 받아 봤죠. 지금, 후회는커녕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힘주어 말하는 강씨의 눈이 빛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자신의 좌우명이라는 그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 '아님 말고~'.

늙어 죽을 때까지, 커피 그리고 음악과 함께

'커피안' 주요 고객층이 인근 대학교 학생들인 만큼 시험 기간에는 학생들이 책을 펴고 공부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흐르는 재즈 음악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는 손님까지 있다고 한다. 한 번 들어오면 내 집과 같이 편한 것이 '커피안'의 자랑이다. 요즘은 테이블이 없어 서둘러 자리를 피해주는 단골손님이 생길 정도로 바빠졌지만 3월 오픈 뒤 거의 4달 동안은 소위 '맨땅에 헤딩 할 정도'로 적자가 심했다고 말한다.

그는 '천천히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입소문이 나길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한 결과 지금의 '커피안'이 됐다고. 그는 고객들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한림대학교 근처에 2호점을 낼 계획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볶는 할아버지로 늙는 것이란다.

대형 외국계 브랜드 커피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봇물처럼 유행하고 있는 요즘,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커피안'에는 음악과 낭만을 찾는 사람들로 오늘도 북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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