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등의 저서들을 통해 일약 세계적 경제학자의 반열에 오른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와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지승호가 뭉쳤다. 바로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2007, 시대의창)이다.

이번 인터뷰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적 대타협, 한미 FTA, 삼성문제 등의 뜨거운 화두들을 정련된 학문적 어투가 아닌 비경제전공 인터뷰어를 통해 여과된 쉬운 대화체로 풀어나가고 있다. 학자들 간의 대화였던 <쾌도난마, 한국경제>(2005, 부키)보다 훨씬 쉽게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은 한낱 백일몽일까?

최근 대선보다 더 큰 화두인 삼성문제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이 사회곳곳에 뻗친 부패의 촉수와 이재용씨 경영권 승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의 반(反)재벌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재벌은 나쁘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퍼지는 것이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는 이러한 '나쁜' 재벌과의 대타협을 제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친(親)재벌주의자인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재벌들이 다른 나라 자본들보다 특별히 더 나쁜 것도 아니에요. … 지금 영국에서 유명한 HSBC(홍콩 상하이 뱅크) 같은 데는 옛날에 아편전쟁 일어났을 때 거기 돈 대서 거금을 벌었다고요. 그런 식으로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깨끗한 자본이란 것은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래도 누구하고 어떻게 판을 짜야 더 많은 국민에게 도움이 될 건가 하는 생각에서, 저는 그래도 생판 모르는 외국 금융자본보다는 우리나라 재벌들하고 타협하는 게 더 쉽고 의미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는 거지, 제가 그걸(재벌이 나쁜 짓 많이 했다는 걸)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거든요."(30쪽)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2007, 시대의창).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를 통해 장하준 교수가 제언한 사회적 대타협과 한미FTA 등 뜨거운 화두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2007, 시대의창).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를 통해 장하준 교수가 제언한 사회적 대타협과 한미FTA 등 뜨거운 화두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 시대의창

관련사진보기

최소한 그가 재벌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최근에 초미의 관심사인 이재용씨 경영권 불법승계 문제와, 장하준이 사회적 대타협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재벌의 경영권 보장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경영권의 안정이 중요한 것이지 특정 인물의 경영권 승계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거죠. 현재 우리나라 정치제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사기업의 그것을 국유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다른 방법을 써서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 저 놈들 미우니까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로 외국금융자본들이 들어와서 그것을 해체하고 잡아먹고 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최태원 잡혀가고, 이재용 쩔쩔매고 할 때는 당장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주식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자기 생활이 고달퍼지고 있는데요. … 기업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경영권의 압박을 받기 때문에 자꾸 하청기업도 더 쥐어짜는 거고, 자꾸 비정규직도 만드는 거고 그런 거예요."(165쪽)

신자유주의 파고 앞에서 일반 노동자들만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재벌 또한 장기적 수익을 보장하는 연구개발투자를 지양하고 주주들 배당금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불안한 상태에 놓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불안함이 노동자들에게 보다 높은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만큼, 사회적 대타협의 동반 주체로 누구를 세워야 하는가. 스웨덴 등의 유럽에서는 노조가 그 주체를 자임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굴지의 기업인 삼성에서조차도 노조를 용인하지 않는 상태인데 말이다. 장하준의 답변은 간단명료하다.

"'삼성에 대한 부탁'이라는 식으로 얘기할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제 생각에 삼성이 한 가지 꼭 해야 할 일은 '무노조주의' 그거 없애는 것입니다."(181쪽)

하지만 현재 국내 노조는 노동자 가입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비정규직 사안 등에서 드러나듯이 대표성을 띠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민주노총이 전국적인 의제를 제안하고자 하면 자본과 보수언론이 정치파업으로 몰아붙이는 측면도 감안해야겠지만 노조가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대타협의 동반주체 설정에 대해서 장하준은 국내만의 독특한 환경을 고려한 제안을 한다.

그는 영국과 비교하면서 아직 한국은 계급분화가 심하지 않다면서 공동체의 단초로서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새마을운동, 금모으기 운동 등을 언급하면서 '국민'을 내세운다.

"물론 계급도 있고, 성별 지역 다 있으니까 '통합된 국민'이라는 게 있는 나라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국민의 실체가 비교적 뚜렷합니다. 게다가 다른 세력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노조니 이런 게 약하기 때문에 국민과의 타협이라고 얘기해야 하는 거고요. 결국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국민 참여가 풀뿌리 수준에서도 있어야겠지만, 결국 정부가 되는 거죠."(169쪽)

'약자의 사다리' 걷어차는 재앙, 한미FTA

재벌 경영권의 안정적 보장과 함께 고용 안정권도 전제되어야 한다. 설사 고용의 안정을 유연화 시키고자 한다면, 복지제도 강화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실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장하준은 결국 재벌이 기업의 수익을 올리는 데 있어서 이러한 고용의 안정을 추구하고 국가는 복지제도의 현격한 강화가 경제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북구 나라들은 복지국가가 크지만, 돈 많은 사람들한테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개념이 아니라 생산적인 것, 즉 재교육해주고 재취업시켜주는 그런 것까지 다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도리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기가 더 쉽다고요. 왜냐면 노동자들이 자기 직장에서 잘려도 금세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덜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잘리면 끝이거든요. 그러니까 더 거세게 저항하는 것이고, 구조조정하기도 더 어려운 거죠. 역설적으로 유럽 식의 복지가 더 좌파 같지만 사실은 기업을 돕는 정책이고, 오히려 미국식의 복지가 좌파적이고 기업에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거죠."(28쪽)

한미 FTA에 대해 장하준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오마이뉴스>는 장하준 교수와 정태인 교수의 대담을 기사화한 바 있다. 기사에서는 한미FTA의 추진 일정부터 각 분야에서 파급되는 효과에 대한 분석까지 긴밀히 논하고 있다. 이 인터뷰 기사는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에도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세론으로까지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세계적이다'는 수식어가 붙은 경제학자가 한미FTA를 어떠한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귀를 열어둘 필요가 있어서 가감 없이 소개하고자 한다.

지승호는 현재 대세론에 밀려 FTA 반대진영의 국민투표 주장 또한 힘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앞으로의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한냐고 묻는다. 장하준은 강한 어투로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그렇다고 반대파가 주눅들면 안 되고, 찬성하는 측에다가 '그동안 당신들이 여론조작 한 것은 다 물어낼 자신이 있느냐,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광개토왕이니 이런 얘기한 것 다 나와서 잘못했다고 하고 처음부터 깨끗이 해서 캠페인 기간 동안 찬성, 반대 똑같이 방송에서 에어타임 주고, 신문지면 주면서 할 수 있느냐'는 것을 요구해야죠, 뒤늦게 국민투표하자고 자기들이 유리할 때 그렇게 나온다면. 그리고 연구 결과라고 나온 것들을 학술적으로 따져보면 거의 조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83쪽)

일반인들이 흔히 듣는 대세론에 밀려 농업은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장하준은 관광으로 알려진 스위스가 세계 최고의 공업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은 공업국이지만, 우리의 뿌리는 농촌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말한다며 한국에서는 이러한 발언이 나오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다.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무지렁이인 나조차도 소위 세계적 경제학자가 이 정도로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것을 보면 한미FTA가 확실히 어디론가 엇나가고 있음은 추측할 수 있겠다.

대선이슈, 한미FTA가 중심이 되어야

대선은 코앞인데 온갖 네거티브 정치가 판을 치고, 정책정치는 구석으로 쏙 들어가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덕분에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장하준, 정태인 대담기사도 다시 읽게 되면서 대선과 맞물려 언론의 보도프레임에 대해서도 고민케 한다.

당시 사회자로 대담에 참석한 <오마이뉴스> 김종철 경제팀장은 "지금(대담 당일 8월 23일)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들어가 있는데, 각 후보들 사이에 한미FTA는 아직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 않은 거 같아요. (언론이 부각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각 후보들이나 정당 쪽에서도 대세론에 휘말려서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찬반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인식이 강한 것 같은데요"라는 물음에 정태인은 "한미FTA는 한나라당은 물론 범여권도 다 찬성이에요. 민주노동당은 다 반대고요. 당내 경선에서는 찬성이든 반대든 다 똑같으니까 이슈가 안돼요. 정치권 전체로 보면 반대하는 민주노동당과 찬성하는 나머지 모두로 찬반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데, 민주노동당의 얘기가 얼마나 언론에 반영되어서 주요한 이슈가 되느냐의 문제죠. 한미FTA 반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40퍼센트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건 요구해야죠"(258쪽)라고 답변했다.

굳이 이렇게 정태인의 발언을 길게 인용하는 것은 현재 대선정국에서 한미FTA는 유권자의 후보선택에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가를 묻고자 하기 때문이다. 온갖 네거티브 정치의 틈 속에서 정책정치가 펼쳐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종철 경제팀장이 대담을 마치면서 "<오마이뉴스>는 한미FTA가 이번 대선국면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올바른 선택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303쪽)다고 말한 것도 한미FTA가 대선에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현재의 보도프레임을 돌아볼 때 <오마이뉴스>를 비롯해서 언론의 책무로서 대선을 앞두고 한미FTA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의제설정 하고자 했는지를 진지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길' 알려주는 토론장 형성되어야

장하준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서 자신에게 '여러 가지의 길'이 있음을 알리고,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구축해보자는 의도였음을 밝혔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등의 출간이 대중과의 접촉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나 올해 <한겨레21>을 통한 경상대 김창근 교수와의 논쟁, <마르크스주의 연구>(2007년 4권 2호) 등의 학술지를 통한 논쟁 등에 성실히 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반론성이 강한 <한국경제 새판짜기>의 출간이 반가운 것은 이러한 대중소통의 장에 대하여 장하준 교수의 고민을 학자들도 점차 고민하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의 길을 일반독자들에게 밝히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지만 걸출한 인터뷰어 지승호를 통해서 한국사회 토론장의 문화적 맥락이나 구미학계 일변의 문제점 등 지금까지 몰랐었던 장하준 내면의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는 점도 인상 깊다.

책의 재미를 반감시킬 듯해서 새로운 이야기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서도 내 부족한 경제학 지식으로 인해 핵심을 끄집어 내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 책을 직접 일독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웠으면 한다. 일독을 적극 권하는 바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장하준 지음, 지승호 인터뷰, 시대의창(2007)


태그:#장하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