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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구룡마을이다. 도로 하나를 두고 너무나 다른 세계가 있다.
 '여기'가 구룡마을이다. 도로 하나를 두고 너무나 다른 세계가 있다.
ⓒ 구룡마을주민자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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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역 3번 출구를 나와 개포중학교 방향으로 도보 30분. 6차선 남짓의 양재대로 너머에는 구룡마을이 있다. 도로 하나를 두고 마을의 풍경이 너무도 다르다.

한 쪽은 서울의 부촌(富村)으로 유명한 개포동이고, 다른 쪽은 서울의 빈촌(貧村)으로 알려진 구룡마을이다. 시간의 흐름이 마치 도로 하나를 두고 멈춘 듯 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구룡마을에는 현재 17만여 평 9개 지구에 약 2000여 세대, 4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중후반 서울 올림픽이 열릴 즈음에 몰려온 저소득층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살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도시 미관을 위해 내몰린 빈민들이 모여 만든 삶의 터전이 바로 이 곳, 구룡마을인 셈이다. 

도로 하나 건너 만난 또다른 세상

슬레이트 지붕에 두꺼운 천을 덮었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을 얼마나 막아줄지 모른다.
 슬레이트 지붕에 두꺼운 천을 덮었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을 얼마나 막아줄지 모른다.
ⓒ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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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올려진 연탄재. 연탄값도 올랐다는데 걱정이다.
 쌓아올려진 연탄재. 연탄값도 올랐다는데 걱정이다.
ⓒ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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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연탄재는 마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골목 사이사이는 메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가득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대부분 폐(廢) 건자재를 쌓고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껏해야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4~5평의 집들. 하지만 길 건너 저 편, 차로 불과 10분 남짓 거리에는 부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펠리스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김문순(73)씨 집 역시 부엌 하나에 방 하나다. 석유는 비싸고 전기장판 역시 생활에 부담이 된다는 그는 연탄을 뗀다.

"우리 집이 연탄을 떼서 방바닥은 몰러도 집안은 이래 훈훈해"라며 내게 커피를 권한다. "커피 찐허게 안 먹지? 얇게 타줄러니 앉자 있어"라고 말하는 김 할머니 집의 창문은 작고 굳게 닫혀 있다. 겨울바람 때문이다.

"난 원래 서울 대방동에 살았어. 생활이 좀 어려워지서 여기 집이 싸다고 혀서 왔지. 난 88년도에 여기 왔어. 처음에넌 물도 안 나와서 저 산에 가서 물 길어서 먹고 그랐지. 그래도 점점 좋아졌어. 흙길도 포장되고 말여. 여기 집도, 난 내 집여. 월세로 사는 사람들도 많어. 보증금 60만원에 월세 5만원인데, 대부분 그걸 온전히 받아 못 나가. 생활이 어려워서 다달이 까먹고 나가지. 그럼 뭐혀, 언제 허물어질런지 모르고 사는 것도 만날 걱정이지…."

기초수급대상자 노웅일(64)씨는 서울 정릉에서 이사와 이 곳에 산지 20여 년이다. 노 할아버지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39만 원 중 50%정도를 난방비로 쓰고 있다.

중풍 중기에 심장이 좋지 않다는 그는 몸이 불편해 비교적 싼 값인 석탄을 뗄 엄두도 내지 못 하고 매달 석유 14만원, 전기료 2만원씩 16만원을 지출한다.

"나머지 20여만 원으로 병원 다니고 생활하기도 힘들어. 그러니까 김치 쪼가리에 겨우 밥 먹는 거지"라 말하는 노 할아버지는 구룡마을이 "마음놓고 살기는 좋은데 불편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위장전입', 높으신 분들 이야기가 아니었네

메캐한 가스를 내뿜는 호스와 집 한 켠에 위치한 가스통. 소화기가 곳곳에 눈에 띄지만, 화재가 난다면 저 소화기로는 역부족일 듯. 화재가 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다.
 메캐한 가스를 내뿜는 호스와 집 한 켠에 위치한 가스통. 소화기가 곳곳에 눈에 띄지만, 화재가 난다면 저 소화기로는 역부족일 듯. 화재가 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다.
ⓒ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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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와 노 할아버지의 걱정과 불편거리 모두 그들이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는 '유령주민'이기 때문이다.

모든 주택들이 사유지에 불법으로 지어진 건물인 까닭에 강남구청에서는 구룡마을 사람들을 주민으로 인정치 않고 있다. 세대별 주소가 없다보니 동사무소나 파출소 같은 기본 시설조차 이 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주민등록 등재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소지를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이라고 올리지 못하고 인근의 지인이나 친척 주소, 자신들이 일하는 곳 등으로 대신 올려놓은 상태다. 생존을 위한 '위장전입'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우편배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위장전입'한 주소지로 우편물들이 배달되기 때문이다. 구룡마을에서 우편물을 받으려면, 주민자치회에서 발행하는 거주자 확인서를 받아 해당 기업에 제출해야 한다. 그나마도 공동으로 배달되는 우편 꾸러미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노웅일(64)씨는 "불편하지만 어쩌겠어, 구청에서는 주민으로 등재를 해주지도 않는데"라며 "만약에 돌려놓은 주소지에서 나를 퇴소시키면 난 문서상으로 말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 뿐 아니다. 아이들 학교 문제 역시 큰 어려움이다. 자신이 등록되어 있는 주소로 학교가 배정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종종 먼 곳까지 가야만 한다.

한 할머니는 "구룡마을 인근으로 학교 간다 혀도 여기 애들이 쩌기 애들(개포동 아이들)에게 느끼는 박탈감이 모르긴 몰라도 클 꺼여"라 전했다. 같은 고급 아파트 내에서도 평(坪)수를 따져 또래모임을 갖는다는 요즘 현실이라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을 착잡하게 한다.

1~3급의 장애인의 경우, 전기 요금은 약 20~30%가 할인되고 이동전화는 가입비가 없으며, 시내전화 요금은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무허가 촌'에 살고 있는 '유령주민 장애인'의 경우에는 주민등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혜택을 받지 못 한다.

이 곳 사람들은 개발될 때 불거져 나올 보상 문제, 구민이 된 구룡마을 사람들을 위한 파출소· 동사무소 건립 등 예산 확보 문제 등이 '걸림돌'이라 지적한다.

20여 년 전, 도시 미관 정비에 나선 당국의 철거 조치에 떠밀린 빈민들은 아직도 그들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구룡마을과 문서상으로는 구룡마을에 살고 있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는 주민들. 그것이 '서울시 강남구 구룡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다.

구룡마을 너머 보이는 타워펠리스. 이 곳과 저 곳을 가르는 경계는 도로 하나 뿐이지만, 그 경계에는 남모를 슬픔과 애환이 서려있다.
 구룡마을 너머 보이는 타워펠리스. 이 곳과 저 곳을 가르는 경계는 도로 하나 뿐이지만, 그 경계에는 남모를 슬픔과 애환이 서려있다.
ⓒ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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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동네, 문서에 없는 사람들

구룡마을 한 자락에 위치한 은진교회는 한 달에 두 번 아가페 의료 봉사단이 찾아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검진을 진행한다. "한 번 할 때마다 6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검진을 받기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은진교회 목사는 말했다.

한 달에 100여 명을 훌쩍 넘는 환자들. 그는 "주로 병원에 가기 힘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약값이나 병원비 역시 이 곳 사람들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풍요로움은커녕 절박하다는 이야기다.

독거노인 김문순(73)씨 역시 "물질이 부족해 어렵다"며 절박함을 토로했다.

"그 사람들이 나와 저거(대통령) 한다고 혀도 없는 사람은 만날 쩔쩔매고 살고, 좀 도와주고 그러는 대통령이 하나도 없었잖아. 약한 사람덜 좀 끌어 세워주는 대통령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

돌아오는 길, 양재대로를 건넜다. 난쟁이와 구룡마을 사람들의 삶이 유사했기 때문이었을까. 발걸음을 건네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 생각났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가 살던 그 곳. 철거당한 도시빈민의 삶이 녹아 있는 그 곳.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는 지난 9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사회가 풍요롭고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난쏘공>을 처음 내던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난쟁이 가족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거죠."

끝나지 않은 난쟁이 가족의 불행처럼, 20여 년 전 떠밀려 들어온 구룡마을 사람들의 제자리 찾기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김 할머니의 말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이끌어 번듯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대통령 후보가 들어설 때' 일까?

밤에 본 타워펠리스. 구룡마을 너머에는 밝은 불빛을 밝히며 우뚝 선 타워펠리스가 있다. 크게 덮은 지붕때문인지 구룡마을 불빛은 보이질 않는다.
 밤에 본 타워펠리스. 구룡마을 너머에는 밝은 불빛을 밝히며 우뚝 선 타워펠리스가 있다. 크게 덮은 지붕때문인지 구룡마을 불빛은 보이질 않는다.
ⓒ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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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구룡마을, #타워펠리스, #빈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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