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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
ⓒ 윤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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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대21'
'민주평화국민회의'
'여성유권자모임'

자, 이들 이름만으로 보수인지 진보인지, 혹은 이명박 지지인지 정동영 지지인지 알 수 있을까?

지난 16일 대선의 마지막 변수를 쥔 'BBK 김경준'의 인천공항 입국장은 그 혼란상을 대변했다. 민주연대21은 "공작정치를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 지지그룹이다. 자신들을 여성유권자모임 소속이라고 밝힌 일군의 여성들은 "후보를 교체하라"고 외쳤다. 박근혜 지지자들이다. "주가조작은 개미투자자 울리는 국민범죄다. 검찰은 김경준-BBK-이명박 전모를 밝혀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 민주평화국민연대는 범여권 지지단체다.

그날 저녁 서울 대학로에서는 진보진영 시민단체 주요 인사들이 모이는 술자리가 있었다. 기자의 동석이 불편한 자리였지만 어울렸다. 이번 대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귀동냥하고 싶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탄생'이 가진 의미에 대한 재평가부터 2007년 대선 이후 전망까지 다양한 얘기가 쏟아졌다. 2004년 시민사회의 '국가보안법 올인' 투쟁 전략이 맞았는지에 대한 이견도 오갔다.

'잔인한' 질문도 나왔다. 한 남성 활동가는 모여성단체 활동가에게 "0선배, 정치흐름을 깰 거죠"라고 물었다. 진보진영의 여성단체 인사들은 그동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계 입문해 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그 흐름을 끊어달라는 요구였다.

"한 세대의 흐름을 끊을 시기가 왔어요. 80년대와의 고리를 끊어야…."
"그래도 (대선 이후) 깃발 꽂을 최소한 명분과 사람은 남겨야 하지 않겠어?"
"앞으로 5∼10년 준비해야지. 밑천 다 드러내고 다시 거리에서 운동가요 부르면서 말야."

시민사회의 세대교체론부터 보수정권 대비론까지, 이들의 마음은 대선 정국보다 '대선 이후'에 가 있었다. 정치권의 온갖 제안을 뿌리치고, 1, 2년 휴식기를 갖겠다는 한 인사는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별 말 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내일 삼성집회에 나오시라"는 말만 간간히 던졌다. '2007 대선시민연대'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 처장은 삼성 사건이 터지면서 무게중심이 '삼성불법비자금 진상규명 연석회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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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개혁세혁 공중분해... 시민사회도 힘들어져"

이튿날, 오후 3시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삼성 불법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이었다. 참석자들은 50명 남짓. 날이 쌀쌀했다. 바람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낙엽을 날려댔다. 급기야 비까지 왔다. 참여연대측은 우비를 날랐다. 김민영 처장에게 다가갔다.

- 국민서명운동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예상했다. 정치인, 관료, 청와대, 언론까지 폭넓게 관여된 문제다. 쉽지 않다. 외롭고 긴 싸움이 될 것이다."

- 대선시민연대 활동은 접었나.
"그렇지 않다. 다만 이회창의 등장으로 정책선거가 무색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음 아고라'에선 대선시민연대가 제안한 '1천개 생활공약 모으기' 캠페인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고위공무원에게 경차 제공을' '시간제 보육시설 도입' '은행 현금인출기 수수료 인하' 등등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즐비했다. 또 선거법 피해자 모임도 구성되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단다. 다만 대선시민연대가 주력했던 '나쁜 공약 폐기운동'은 정책선거가 실종된 대선판의 변화로 흐지부지되었다.)

- 여권에선 BBK와 삼성을 엮어 '반부패 전선'을 쳤다.
"정치공학적 시도라고 본다. BBK는 일종의 스캔들이고, 삼성은 구조적인 문제다."

김 처장은 2004년 개혁세력에 의해 의회권력이 교체되면서 "정당정치가 정상화되면 시민운동의 역할이 줄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 개혁 정당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시민사회 진영의 괴로움은 커졌다. 개혁이 후퇴하면서 시민사회의 입지도 줄어들었다. 국회 입법을 통해 개혁과제들을 밀고나가야 하는데 정치권의 개혁세력이 공중분해 되었다. 맞물려 시민사회가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남은 대선 기간, 대선시민연대 활동을 마무리 짓는 것과 함께 삼성 비리 사건에 대한 대응도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 대선 이후도 고민하고 있다. 어느 하나 확실한 건 없지만 "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선에 마음 비웠다... 삼성에 집중하는게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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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여 지나 다시 그를 찾았다. 참여연대는 지난 8월 종로구 통인동 5층짜리 건물에 새둥지를 틀었다. 1994년 창립한지 14년만에 자신들의 건물을 갖게 되었다.

김민영(41) 처장은 박원순, 김기식에 이어 참여연대 세 번째 사무처장이다.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노동운동, 지역운동을 하다가 참여연대에 결합했다.

-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들어간 시민사회인사들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정치를 하려고 들어간 분들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정치에 대한 시민운동의 개입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이명박 후보의 비리 문제, 장애인 비하발언 등에 대해 직접 행동으로 물고 늘어져서 바꿔내는 시도를 제대로 못했다."

- 왜 그렇게 되었나.
"주저하는 분위기가 있다. 정치적 편향성을 제기하니까 자기 검열이 생긴 것이다. 또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대선뿐만 아니라 최근 2, 3년의 경향이 그랬다."

- 1998년 참여연대의 삼성전자 주주총회의 '13시간 소동'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며 이건희 회장의 아킬레스건인 소유지배 문제를 건드렸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 비리 문제가 전면화 되었는데 감회가 남다르겠다.
"소액주주운동은 단지 주주의 권리를 되찾는 운동이 아니었다. 재벌개혁의 방법론 중 하나였다. 그것을 통해 삼성의 지배구조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참여연대가 10년 동안 제기해온 문제가 눈으로 확인되는 과정이다. 참여연대가 삼성 문제가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 대선에 대해선 마음을 비운 것 같다.
"(단호하게) 비웠다. 삼성 사건이 터지면서다(웃음)."

-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여론의 핵심이 '정권심판론'이라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정권심판론뿐만 아니라 민주화세력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기류가 여론의 중심이라고 본다."

- 사회원로들은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후보단일화를 위해 다시 한번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주의와 개혁, 진보를 지향해온 국민들의 실망을 되돌릴 수 있는 구체적인 희생이나 혁신 없이 정권을 다시 달라고 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과거 열린우리당이든, 통합신당이든 거듭나겠다고 하다못해 광화문에 돗자리를 깔고 석고대죄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나 역시 여러 번 주장했다. 하지만 진지한 공감이 없더라. 경선하면 달라진다, 후보단일화 하면 달라진다, BBK 수사 결과 달라진다면서 '정치이벤트'에 목숨 걸고 있다. 그런 사고라면 국민들이 지지할리 없다."

- 지금이라도 광화문에서 석고대죄하면 되나.
"시기를 놓쳤다. 지금 와서 하면 정치쇼처럼 보인다."

- 그럼 정권은 내주고 심판 받자?
"대선이 얼마 안남았는데 그 사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답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이다."

-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대선 이후 한국사회가 큰 변화의 시기를 겪을 것 같다. 앞으로 참여연대는 어느 분야에 주력하게 되나.
"정권의 향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동안 참여연대가 권력부패에 대해 집중해 왔는데 앞으로 더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이회창 후보가 되면 이데올로기적 대치전선이 만들어질테니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참여연대가 내세우는 3가지 활동기조 '권력감시' '사회경제개혁' '평화군축' 중에서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할지 달라질 것이다."

현재 참여연대 회원은 9700 명. 최근 몇 년 동안 늘지도 줄지도 않고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둘러 서경식 선생의 강연을 듣기 위해 인사동으로 향했다.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경계인의 시선을 지닌 서경식은 강연 말미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을 수 있나'는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남겼다.

"한국은 희망적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해도 희망이 없다고 하면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그 수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선에 마음을 비웠다는 김민영 처장의 생각도 이러한 게 아닐지….


태그:#삼성, #김민영,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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