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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오른쪽에 독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독립공원은 다른 공원들에 비하여 훨씬 쾌청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맑은 공기와 상쾌한 자연을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독립공원을 따라 독립문까지 이르는 길에는 독립선언 기념탑, 송재 서재필 선생의 동상 등이 있다.

 

독립문에 도착하면 교차로가 나오는데 여기서 표지판을 보면 사직로를 가리키는 것이 있다. 그 방향으로 건너가 왼쪽에 작은 터널을 나란히 하고 걸어가 보면 은행나무가 늘어선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저 앞에 시커멓게 뚫린 두 개의 터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끝까지 걸어가보면 두 개의 터널 오른쪽 뒤편으로 또 하나의 입구가 있는데 그 위에 금색 글씨로 '사직터널'이라고 쓰여진 것을 볼 수 있다.

 

 

사직터널 입구까지 걸어오면 약간 가파른 언덕이 나오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어 걸어 올라가보면 좌우로 막다른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은행나무길'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이 행촌동(杏村洞)임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왼쪽을 바라보면 그리 길지 않은 골목길이 펼쳐져 있다. 그 끝자락 너머를 바라보면 딜쿠샤의 지붕과 은행나무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담쟁이덩굴이 덮인 벽을 따라 골목길로 쑥쑥 걸어가면……!! 오른쪽에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왼쪽에는 빛바랜 빨간 벽돌의 이층 주택이 조용히 우리를 맞이해 준다. 은행나무 앞에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권율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희망의 궁전, 딜쿠샤


이 거대한 은행나무를 파수꾼 삼아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집이 있으니 바로 딜쿠샤 (Dilkusha, 희망의 궁전, '이상향'을 뜻하는 힌두어)다.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1923년 UPI 특파원이었던 알버트 테일러씨가 지은 것이다. 그는 1896년 조선말에 금광기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온 미국인인데, 금광개발을 하며 지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행촌동에 집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서 추방될때 까지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딜쿠샤는 서양 근대 주택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인데, 특히 3개의 박공면을 건물 앞면에 배치하는 등의 인상적인 건축양식과 독특한 벽돌쌓기 방법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사례로 조사됐다.


'딜쿠샤'라는 명칭은 알버트 테일러씨와 부인인 메리 테일러씨가 1917년 인도에서 결혼을 할 즈음에 인도 북부에서 본 어느 고성의 실제 명칭이었다. 이름의 뜻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메리 테일러씨가 자신이 결혼 후에 살게 될 집의 명칭을 이것으로 하리라 다짐을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미일관계가 악화되자 서울에 있던 외국인들이 감금되고, 테일러씨도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운 이유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조선에서 추방된 뒤,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48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행촌동 은행나무. 지금, 과거는 잊혀져가고 행촌동 좁은 골목에는 어느 장군의 집터였다는 흔적과 낡은 주택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권율장군의 모습도, 테일러 가족의 모습도.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딜쿠샤를, 행복이라는 이름의 집을 지켜주고 있지 않은가.


태그:#행촌동, #은행나무, #딜쿠샤, #권율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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