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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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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2003년 10월에 첫 호를 내고 어느덧 48호까지 나왔습니다. 상업만화와 학습만화만이 판치는 우리 나라에서, 아이들과 부모들과 교사들이 자기 마음밭을 다스리는 줄거리를 담은 만화잡지이면서도 정기독자를 4천 사람 남짓 모아서 꾸려가고 있으니 놀라우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꾸준하게 실려온 만화로 <태일이(최호철 그림)>가 있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해 오다가 1970년 11월 13일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서 숨을 거둔 전태일 님 이야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태일이>는 얼마 앞서 낱권책으로 묶여 1권과 2권이 선보였습니다(돌베개 펴냄, 한 권에 1만원씩).

<전태일 평전>이 있고,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어, 요즘 아이들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쉬 생각해 보기 어려운 1960∼70년대 모습을 그림으로 함께 느끼고 돌아볼 수 있는 만화책이 나왔으니 참으로 뜻깊으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화를 이어싣는 잡지 <고래가 그랬어> 살림은 그다지 좋지 못해서, 주주 모으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http://gyuhang.net)

11월 13일

오늘은 11월 13일, 바로 전태일 님이 다락방 옷공장이 빼곡히 늘어선 청계천 골목길에서 몸뚱이에 불을 붙이고 숨을 거두면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세 가지 큰 권리'를 외치며 한 줌 재가 된 날입니다.

이 때는 전태일 님 나이 스물둘. 그야말로 꽃나이입니다. 꽃나이이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물었습니다. 아니, 꽃송이가 뚝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미 의사의 진단은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입원실에서도 별다른 치료를 해 보지 못하고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다. 저녁이 되면서 태일이는 기력이 탈진해 가는지 잠잠하게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뜨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배가 고프다……." 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소리인가! 죽어가는 자식의 마지막 한 마디가 '배가 고프다'는 말이라니. 에미로서 생전에 잘 먹이고 잘 입히지는 못했을망정 죽는 순간까지도 배고픔을 달래 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이소선-어머니의 길> 35쪽)"

뚝 끊어져 버리는 꽃송이는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제 꽃잎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꽃송이가 통째로 끊어져 버렸지만, 고픈 제 꽃잎에 양반을 빨아들이기보다 다른 꽃잎들한테 양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땅에 뚝 떨어지면서도 책갈피 사이에 남는 꽃잎이 아닌, 그 몸뚱이 그대로 썩어가며 땅으로 돌아가 다른 꽃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거름으로 바뀌었습니다.

15 : 8

이소선 어머님이 아이 전태일을 보낸 뒤, 꼿꼿하게 걸어온 길을 입으로 들려주는 책입니다.
 이소선 어머님이 아이 전태일을 보낸 뒤, 꼿꼿하게 걸어온 길을 입으로 들려주는 책입니다.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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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아홉 해. 쉰아홉 살. 1948년에 태어난 전태일님이 살아 있다면 쉰아홉입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여느 노동자로 일했다면 머잖아 정년퇴임으로 일터를 물러나야 하는 나이입니다.

전태일님이 숨을 거둔 뒤, 살아남은 이소선 어머님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물리쳤습니다. 돈으로 아들 주검을 사려는 공권력 앞에서 떳떳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님과 남은 님한테 떨어지는 것은 '돈'이 아닌 '싸움'.

이소선 어머님을 살살 달래며 돈으로 꾀려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노동자한테 고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삶터보다는, 한두 사람만 떵떵거리며 배불리 먹고살 수 있는 평등하지 못한 삶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돈을 다 합치면 종로에 있는 노동청 산재 사무소 옆에 있는 빌딩 큰 것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빌딩을 사서 세를 주고, 한 칸만 가지고 식당을 해서 곰탕이며 도가니탕을 팔면서 사람을 고용하면,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자식 대에까지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식당에 노동청 직원들이 매일같이 단골로 다니면 장사도 잘 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어머니의 길>, 50쪽)"

지금은 어떠할까요. 어두운 세상에 한 떨기 꽃잎일망정 거름으로 제 몸을 바친 한 사람 뜻이 이 땅에 스며든 지 서른하고도 일곱 해째 되는 지금 이 세상은.

지금 이 세상은 얼마나 '모든 일꾼이 고르게 권리를 누리며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돈이 적다고 권리를 앗기지 않으며, 힘이 없다고 권리가 밟히지 않으며, 이름이 없다고 권리가 내동댕이쳐지지 않는,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놀고 먹고 자고 껴안고 말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논밭이나 텃밭을 가꾸는 한편, 맑은 바람과 따순 햇볕을 쬐면서 지낼 수 있는 세상인가요.

"…끝날이 인생에 종점이겠지.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아이롱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걸(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사나이 큰 포부를 가지고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지만 정히 못 견디겠다…. 1967년 3월 18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09쪽)"

하루 열다섯 시간을 괴롭게 일하는 노동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요. 참말 사라졌을까요. 관공서와 학교와 큰 공장부터 해서 '주 5일노동'을 펼칩니다만, 작은 공장과 작은 일터 노동자들은 얼마나 '주 5일노동' 혜택을 받고 있을까요. 한 주에 닷새 일하면서도 누구나 고르며 알뜰한 권리를 누리며 일한 대가와 대접을 받고 있는지요.

살아가는 이 몫

전태일 열사 1주기 추도식.
 전태일 열사 1주기 추도식.
ⓒ 전태일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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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퍽 따뜻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따뜻했습니다. 한낮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긴 소매 입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 등에 땀이 송송 맺힙니다. 11월을 넘겼는데. 12월이 코앞인데. 올겨울에는 눈송이 구경 한 번 못하고 지나갈지 모르겠습니다.

미친 날씨(기상이변)라고 할 수 있지만, 날씨가 미쳤다면 왜 미쳤을까요. 우리들은 가만히 있는데 날씨만 미칠까요.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 나날이 넓어지는 찻길,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물건들, 새로 쏟아지는 물건 못지않게 넘쳐나는 쓰레기. '쓰레기를 줄이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이지만, '무엇이 쓰레기이고, 쓰레기 줄이는 삶이란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며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번화거리를 빼고는 걷는 사람 구경하기 힘듭니다.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기름 먹는 탈 거리로 움직이는 우리들입니다.

여름에는 추운 일터, 겨울에는 더운 일터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터,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더운 일터에서 일하는 분들도 '노동자'입니다. 이름은 똑같이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정규직'이고 어떤 이는 '비정규직'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권리,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이 자기가 일한 만큼은 알맞게 대접을 받아서 배곯지 않을 뿐 아니라 골고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낡고 허름한 옷을 입어도 똑같은 사람으로 지낼 권리, 가방끈이 짧아도 새 직원 뽑는 자리에서 푸대접을 안 받을 권리, 부자 동네 아닌 서민 동네에 살아도 막개발과 재개발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삶터를 고이 지키며 살아갈 권리, 남자이건 여자이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권리, 어른이라고 젊은이라고 늙은이라고 어린이라고 어느 한편이 따돌림받거나 업신받지 않을 권리, 무기를 적게 가지거나 안 가지고 있어도 무기 많이 가진 나라한테 시달리지 않을 권리….

이 권리들을 우리들은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마땅히 못 누리고 있는 권리를 되찾으며 함께 누리고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있나요. 마음 기울이기를 넘어서 얼마나 땀을 흘리며 두 손 맞잡으며 움직이고 있을까요.

날씨만 미쳤나요? 우리는요?

"…동지는 모두 5권의 노트에 일기를 남겼다. 그런데 분신 직후, 조선일보사에서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며 가져갔는데, 일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예리한 면도칼에 의해 잘려나가 없어져버린 채 되돌아왔다. 이후 동지의 가족은 1년 여에 걸쳐 없어진 일기를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게다가 1978년 어느 날에는 동지의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일기장 3권을 집을 뒤져 도둑질해 간 일도 일어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머리말)"

2007년 우리 세상을 헤아리면서 1970년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다시 펼쳐 봅니다. 옆에 나란히 꽂아 놓고 있던 <어머니의 길>도 다시 펼쳐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ㅇ씨가 낸 <사회부 기자>(1977)라는 책에 실린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나는 우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일기장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을까? 그것만 찾아낸다면 통쾌한 스쿠프가 될 텐데….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나는 추리, 상상 속에서 혼자 특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상상이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취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주위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나는 부의금 방명록을 먼저 체크해 보기로 했다. 누가누가 와서 얼마씩이나 내고 갔는가부터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시체실 한쪽 테이블에 청년이 두 명 앉아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명단을 쭉 훑어봤으나 이렇다 할 지명인사는 없었다. 명단을 모두 막 훑어보고 난 순간, 그 방명록이 낡은 대학노우트였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나는 섬뜩해졌다.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다를까. 대학노우트를 한 장 펼쳐보니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요?" 나는 부의금 접수를 맡은 20대 청년에게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주위에는 동료 기자들이 쉴사이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일이 일기예요." "어?" 나는 무조건 그 노우트를 움켜쥐었다. "잠깐 좀, 봅시다." "누구신데요?" "나가 보면 압니다." 부의금이 적힌 대학노우트를 코우트 호주머니에 움켜넣고 내가 먼저 앞장을 서 시체실을 나왔다. 그 청년은 죽은 태일 군의 사촌형이라고 했다. "태일 군의 집으로 갑시다!" 짚차는 급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청년은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으나 자신이 탄 차가 신문사 짚차란 사실을 미처 몰랐던 모양이었다 ..  <사회부기자> 41∼43쪽"

전태일님이 남긴 일기와 수기와 편지들을 모은 작은 책입니다.
 전태일님이 남긴 일기와 수기와 편지들을 모은 작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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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회부기자 ㅇ씨는 전태일 님이 살던 집까지 찾아가서 남은 일기장까지 손에 얻습니다. 뒷날 일기장이 전태일님 남은 식구한테 돌아왔지만 잘려진 곳이 있는 채 돌아왔다고 합니다. 누가 어떤 일을 했을까요? 사라진 글쪽에는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었을까요?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저 착하디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요.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37쪽)"

일기장은 칼질이 되기도 하고 도둑맞기까지 했습니다. 아니, 일기장에 앞서 전태일님은 벌써 흙으로 돌아가고 없습니다.

전태일님도 사라지고 일기장도 도둑맞았지만

일기장이 칼질이 되고 도둑을 맞았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 넋과 뜻을 잊지 않습니다. 더욱 깊이 새깁니다. 땅에 뚝 떨어지고 만 꽃송이인 전태일님은 세상에 없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가 못 다한 일을 이어가고 모자라다고 해도 꿋꿋하게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헌법이 있고, 노동법이 있고, 평등권이나 자유권이니 기본권이니 생존권이니 있습니다. 종이에 또렷하게 새겨진 법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법이 있으니 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나라에서 세운 법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얼마나 '종이에 적힌 법'을 지키고 보듬고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법이 없더라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다고 해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하고, 헌법이 없어도 누구나 고른 권리를 두루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기본권이나 평등권이라는 말이 없어도 누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등처먹는 일이란 없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는 사람한테도 똑같은 일삯이 주어져야 합니다. 나어린 일꾼이라고 해서 나이든 사람과 견주어 반토막 일삯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난 작가라고 글삯을 더 챙겨 주고 이름없는 작가라고 글삯을 떼어먹는 일이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줌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 전태일 님이 외친 목소리는 틀림없는 '노동 3권'입니다. 그러면 이 노동 3권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 세 가지 권리일까요. 이 권리를 누려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대표들은 노정국장실로 갔다. 노정국장한테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이냐고 다그쳤다. "여러분의 요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주장에는 얼버무리기만 했다.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이렇게 집단적으로 와서 행동하는 것은 불법이니 빨리 철수하세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무턱대고 쫓아낼 궁리만 했다. 그 말에 욱하고 화가 뻗쳤다. "이봐요, 노정국장! 당신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근로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 아니요? 감독소홀로 근로자가 죽어나자빠져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근로자들이 여기저기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회사에서는 해고시키고 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람을 두들겨패고, 상급노조에서는 제명이니 유령노조니 하는 야비한 수법으로 탄압을 하고 있는데, 노동청에서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요? (<어머니의 길> 308쪽)"

살아남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인 이소선 어머님은 1970년 11월 13일 그날부터 2007년 11월 13일 오늘까지도 꼿꼿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한 줌 재가 된 전태일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냘픈 생명체가 계속 병들어가니까, 하루하루 병들어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안 보이는 벽살이 우리를 가두고 옥죄고 있어서 그 단단한 벽을 허물기 위해 나는 작은, 아주 작은 바늘구멍이라도 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어머니의 길, 32쪽)"를 지키면서.

아니, 이소선 어머님 스스로 이 땅에서 전태일 님처럼 세상을 부대끼며 살다 보니까, 당신부터도 '작은 구멍' 하나 낼 수밖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꺼번에 내는 큰 구멍이 아니라, 작은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겨우 내고 있는 구멍 하나를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낼 때 비로소 우리 삶터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깨달았기에.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제에서 이소선 여사가 아들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1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제에서 이소선 여사가 아들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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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1월 13일, 전태일 님이 목숨을 바쳐 세상에 작은 구멍 하나 내려는 뜻을 기리면서 글 한 조각 띄워 봅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태일, 돌베개(1988)


태그:#전태일, #이소선, #책읽기, #노동자,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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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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