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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30일 오후 '집회금지통고 및 사전차단조치'를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인권활동가 등 집시법 개정을 요구하는 쪽과 "공공질서유지를 위해 사전차단은 불가피하다"는 경찰쪽 주장이 맞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0일 오후 '집회금지통고 및 사전차단조치'를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인권활동가 등 집시법 개정을 요구하는 쪽과 "공공질서유지를 위해 사전차단은 불가피하다"는 경찰쪽 주장이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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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측에 '한미FTA저지범국본' 집회의 원천 봉쇄와 상경 차단 등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23일 경찰은 범국본의 집회를 또다시 금지했다.…집회 횟수를 줄이거나 거리 행진 조건에 맞춰서 신고해도 경찰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일부 집회에 대한 사전 차단 조치는 불가피하다. 각 지역에서 집회 참가자가 수십명씩 출발하면 집결지인 집회 장소에서는 수천, 수만명이 된다. 집회 장소의 경찰력만으로는 이를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과격·폭력 시위로 변질된 우려가 있다면 사전에 방지해서 공공질서를 유지하고자 사전에 조치해야 한다." (이기창 경찰청 정보4과장)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공공의 질서가 우선일까. 집회 현장에서 맞붙는 집회 주최측과 경찰간 충돌이 실내 토론 테이블로 옮겨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이하 인권위)가 30일 오후 주최한 '집회금지통고 및 사전차단조치 관련 청문회' 자리에서다.

인권위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진정 사건 10건을 토대로, 이들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의 문제점, 경찰의 변화 필요성 등 정책적 검토를 위해 청문회 자리를 마련했다. 

손심길 인권위 침해구제본부장은 "개별 진정사건의 진정인들은 '현행 집회금지통고 제도가 경찰서장의 자의적 판단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집회가 사실상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공통적인 주장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집회는 줄었지만, 집회 금지는 줄지 않았다"

이날 청문회에는 박진 인권활동가, 권두섭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 등이 집회 주최쪽 입장을 대변했고, 반대로 이기창 과장과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이 "질서 유지를 위한 집회 제한은 불가피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견해가 충돌한 부분은 집시법 조항 중 8조. 이 가운데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경우(제5조 1항) ▲복수의 집회·시위가 동일한 장소에서 겹쳤을 경우(제8조 2항) ▲교통 소통을 위해 주요 도로상의 집회(제12조) 등 집회 금지의 근거가 되는 조항들이다.

손 본부장은 기조발제에서 "제5조 1항의 경우, 신고된 집회의 위협성 여부를 관할 경찰관서장이 전적으로 판단해서 금지통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 침해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며 양측의 견해를 물었다.

그는 "집회 장소 중복을 이유로 금지통고한 251건 중 211건은 대부분 '사전에 신고된 집회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며 "경찰이 두 가지 이상의 집회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 검토를 아예 하지 않고 있어서, 일부 기업들이 제도적 약점을 이용해서 항의집회를 원천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손 본부장은 또한 "일반 사건의 집회 신고 및 금지통고 횟수는 2005년을 제외하고 변화 추이가 완만했다"며 "2005년에는 부산 APEC 회담 개최에 대한 집회에 대한 금지 통고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법 및 폭력 집회·시위 횟수는 2001년 1.64%에서 2006년 0.6%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집회 금지통고 횟수는 이에 상응하는 감소 추세를 보이지 않았다"면서 "신고가 반려된 주최측이 낸 이의 신청도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집회신고인지, 집회허가인지…"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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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 박진씨는 "집회 신고는 허가를 위한 심사 청구가 아니라 사전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임에도 신고부터 어렵다"며 "경찰서 민원창구가 아닌 정보과에 가서 굉장히 많은 조항을 적어야 한다, 집시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는 단 한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집회신고를 할 수가 없다"며 위장집회 신고 사례를 열거했다.

"1년 365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500여m 떨어진 임광토건이 질서유지 캠페인을 한다고 집회신고를 내기 때문에 서울청 앞에서 집회를 열 수가 없다. 종로 삼성타워 앞은 전국탁구연합회가 매일 캠페인을 벌이고, 영풍문고 앞에는 거리질서 캠페인이 열린다. 서울광장은 한국자유총연맹 서울지회가 대통교통 이용 캠페인을 연다."

박씨는 "삼성본관(중구 태평로) 앞은 집회의 무풍지대"라며 "새벽 0시에 관할서인 남대문경찰서에 먼저 들어온 사람, 신고접수 시간인 오전 9시까지 그 곳을 뜨지 않는 사람만이 신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씨는 "집회 신고를 관할 경찰서장이 아닌 지자체장에게 제출하는 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원칙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등 집시법 관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회기 내에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두섭 변호사는 "집회 금지의 이유로 교통 불편을 들고 있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비용으로써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는 순간 한국 사회가 감내하기로 결단한 것"이라며 "하지만 경찰이 서울시의 교통혼잡비용 등을 분석하는 등 천박한 논리로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권 변호사는 "서울의 경우 서울광장, 여의도 문화마당 등을 제외하고는 도로가 아닌 곳에서 집회를 열 수가 없다"며 "집회와 시위는 필연적으로 교통 소통에 어느 정도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또한 "집회·시위 참가자들은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동의를 얻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경찰 버스로 차벽을 설치하는 등 일반 국민과 집회를 완전 격리시키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창 경찰청 정보4과장
 이기창 경찰청 정보4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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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사전차단은 불가피"

반면 이같은 주장에 대한 경찰쪽 입장은 달랐다.

이기창 경찰청 정보4과 과장은 "현재의 기조를 유지하고, 집회 사전차단조치는 집회의 성격, 폭력시위 가능성 등을 검토해서 보다 엄격히 적용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과장은 "집회의 폭력성 여부는 단순히 주최나 참가단체의 과거 폭력시위 전력을 이유로 모두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며 "신고서 이외에 폭력시위 전력 단체의 가세 여부, 폭력 시위용품 준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금지통고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한 장소에서 상반된 두 단체가 집회를 열 경우 우발적 폭력 등이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먼저 신고한 사람이나 단체의 집회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장기간 집회신고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일부 집회에 대한 사전 차단 조치를 불가피하다"며 "집회 참가자가 각 지역에서 수십명씩 출발하면, 집결지인 집회 장소에서는 수천, 수만명이 되기 때문에 과격·폭력 시위로 변질된 우려가 있다면 사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준태 교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언론 및 제도적 장치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의사를 활발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집회·시위에 대한 금지통고 존치론에 무게를 뒀다.

임 교수는 "과거에는 민주화 과정에서 집회·시위 등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이제는 광장으로 나오지 않아도 청와대 홈페이지 등 얼마든지 언로가 개방돼 있다"며 집회와 관련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집회·시위 등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집회, #시위,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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