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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조영>은 시청률 1위를 오르내리는 드라마지만, 확실하게 1위 입지를 굳히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국민 드라마라고 부르기에는 턱없는 시청률이다. 물론 국민 드라마라는 이름이 작품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품성이 아니라 좀더 높은 시청률을 위한 장치들을 사용하는 <대조영>인데도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조영>의 시청률에 더 이상 의미있는 변화가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조영>이 재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아무래도 벌써 끝났어야 할 드라마가 연장 방송 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니시리즈로 만들었으면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으리라는 지적도 있다. 더구나 고무줄 늘어나듯이 늘어난 이야기에 무엇인가 채워야 하는데 마땅한 게 없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시청률은 유지해야 하니 대조영이 선택한 것은 결국 한국 드라마의 영원한 시청률 소스, 바로 혈연과 출생의 비밀이다.

 

엄밀하게 보면 이해고와 대조영, 그리고 초린의 최대 고민은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검이가 누구의 자식인가다. 아니 누구의 자식인가라는 ‘궁금증’이 아니라 그 핏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이다. 이미 암묵중에 검이가 누구의 자식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제118회 내용 때문에 약간 논쟁이 있었는데, 이 또한 핏줄의식 때문에서 벌어진 것이다. 독약을 먹을 줄 알았던 이해고는 독약을 먹지 않고 결국 자살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조영에게 거짓 충성 맹세를 하면서 살아난다. 이 때문에 시청자에게서 비난을 듣기도 했다. 용맹한 또 하나의 영웅인 이해고가 그렇게 비굴하게 그려지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맞는 면이 있다. 다만, 그러한 설정이 가능했던 것은 발상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드라마 <대조영>이 혈연과 출생의 비밀에 연연해 한 탓이다.

 

검이와 초린 그리고 대조영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이해고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비굴하게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한다. 그들이 자기의 보물이라고 생각한 초린과 검이도 자기 것으로 남겨두지 않으려 하니, 차라리 자신을 굴욕스럽게 하는 대조영 일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는 비겁하게 살아서 범의 소굴인 영주로 다시 들어가 기회를 잡으려 한다.

 

요컨대, 갈등과 번민의 중요한 고리는 검이가 대조영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대조영이 이해고를 살려두고 초린이 대조영에서 결정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해고가 자신의 제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보물인 초린은 대조영의 아내였으며, 검이는 대조영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나라가 없다면 대조영에게 영원히 패하는 것이고 검이를 잃는 것이 된다. 여기에 검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슬픔의 주인공이다.

 

검이뿐만 아니라 검이를 둘러싼 혈연의 비극은 모두 역사-거란과 발해사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주요 인물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핏줄 의식 때문에 뒤집히고 과감하게 결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검이의 출생 비밀을 역사적 사실이냐고 따져 물을 일은 아니다. 워낙 당시의 역사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니 말이다. 문제는 고질적인 혈연 집착이 다시 좋은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드라마 <대조영>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싶다. 개체의 행동은 모두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이기적 조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드라마 <대조영>의 주요 인물들은 너무 이타적이다. 이해고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데도 더 돌보아 주려하고, 초린은 검이의 아버지인 대조영에게 가지 않고 이해고쪽에 남는다.

 

검이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보다 길러준 이해고를 아버지라 부른다. 대조영은 자신의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숙적인 이해고의 품에 놔주며 이해고를 살린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이타성도 도킨슨의 말대로 자기의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대조영>의  미묘한 핏줄 관계는 매우 심각한 비극으로 감동의 전율을 낳을 것 같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은 유럽, 미국 혹은 아시아 국가 사람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내용이다. 더구나 이러한 핏줄 구도가 서사의 중심이라면 <주몽>과 같은 젊은 세대의 몰입도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드라마의 구도가 한류에서 주요 콘텐츠가 될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한국의 민족주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나서고 있다. 핏줄을 강조하는 단순하고 단선하며 지리하고도 식상한 감성 자극의 구도보다는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발해 대조영의 리더십의 조명에 치중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작가의 상상력의 문제이기는 하다. 더구나 워낙 짜고 자극하는 핏줄 구도가 서사구조의 대부분을 감염시켰으니 쉽지는 않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보낸 글입니다.


태그:#대조영, #이해고, #출생,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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