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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인간의 역사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낙원에서 추방되자마자 옷을 걸치는 습속이 생겼고, 거기에서 인생의 역사가 시작됐다. 왜 그들이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자신의 몸을 가린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던 것은 확실하다.

가린다는 의미는 자신의 치부를 숨긴다는 의미와 함께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옷의 개념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 속성을 갖게 되었고 '옷이 날개'인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서양에서는 옷이 날개라고 했고 동양에서는 옷을 인격(人格)이라 했다. '벗은 동냥치는 못 얻어먹어도 입은 동냥치는 얻어먹는다'고 했다.

옷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도 "용모는 단정하고 옷차림은 정숙해야 한다(容貌端正 衣冠正塾)"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영국 격언일 것이다. 볼테르는 <왕자의 교육>이란 책에서 "옷차림이 얼굴과 풍속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한국 속담에도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고 했다. W.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우리의 옷이나 몸가짐이 우리의 과거 경력을 나타낸다"고 단정했다.

이처럼 옷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이 주(主)이고 옷은 그에 종속된 객(客)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거꾸로 옷이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규정하고 그것을 입은 사람을 도리어 지배하게 된다.

"육체에만 꼭 맞는 것을 입는 것보다 오히려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L.N.톨스토이의 말이다. K.지브랄은 <예언자>라는 시에서 "옷은 너희의 아름다움을 감추는 일은 많아도, 아름답지 못한 것을 가리지는 못한다"고 외치고 있다.

옷을 입되 잘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옷의 소재가 좋고, 값비싼 공임(工賃)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 옷이 반드시 훌륭하고 빼어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맞는 옷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일 것이다. 그래서 옷은 많지만 자신에게 어울리고, 꼭 맞는 옷은 작은 법이다.

"음식은 자신이 즐겁도록 먹어라. 그러나 옷은 남의 눈에 즐겁도록 입어라." B. 플랭클린이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에서 제시한 과제이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입었을 때 남의 눈이 즐겁고, 또 그들이 흡족해할 것인가이다. 거지가 왕자차림을 했을 때 과연 남들이 즐거워할 것인가? 도둑질과 부정부패를 일삼던 사람이 어느 날 고광대실(高曠大室)에서 비단옷을 걸치고 있다 하여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그를 떠받들 것인가?

옷은 결국 자신의 품위에 걸맞게 입어야 한다. 품위란 바르고 착실한 이지(理智)에서 나오는 위엄이자 세련됨이다.

젊을 때는 다소 거친 옷을 입어도 험하게 보이지 않는다. 용기와 기백이 옷의 수준을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옷에 의지하게 된다. 금방 초라하고 남루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옷은 나이대로 간다'는 우리네 속담이 생겨난 지도 모른다.

"꽃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향기가 신선하지 못하듯 사람도 그 마음이 맑지 못하면 자신의 품격을 보전하기 어렵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오히려 그 냄새가 고약하다." W.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자신의 품위와 품격 유지가 더 앞서야한다는 지적이지만 사실 비싼 옷이 좋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류 디자이너가 만든 고급 소재의 옷이 눈길을 끌게 마련이고, 옷이 날개인 만큼 누구에게나 그런 옷을 입히면 얼굴빛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핀란드 격언에서는 "미모는 하느님의 힘으로, 의복은 우리의 재력으로, 품성은 우리 의지의 힘으로 얻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한두 번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런 법칙이 꾸준히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결혼식에 입던 예복이나 파티 때 입던 옷을 매일 입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평상시에 입는 옷이 자신의 평소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옷을 어떻게 입고,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한국인의 경우 옷을 잘 입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우선은 4계절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어 많은 옷이 있어야 하고, 또 계절에 맞춰 입어야 하는 불편이 있다. 물론 이것은 의류산업이 발전하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한국인의 몸집이 서양인에 비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는 점이다. 특히 남자 직장인들의 경우 서구인의 덩치에 비해 몸집이 다소는 왜소한 만큼 웬만큼 옷을 입어도 옷태가 나지 않는다.

한국의 남성 공직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감색 양복이나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몸집의 왜소함을 캄푸라치하는데 가장 적합한 모델인 것이다.

일반기업이 아니라 IT벤처기업이나 서비스업종인 경우 자유복장이란 이름으로 모든 임직원들이 자유스럽게 옷을 입도록 하는 곳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이야기이다. 대외활동을 하거나 접대, 또는 외국 바이어와의 상담(商談)이나 제휴·협상 등을 체결하는 의전적인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정장(正裝)이 예의이며, 반드시 필요하다.

옷은 잘못 입으면 자신이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매일같이 프리 스타일로 다닌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장차림을 하면 그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업복 차림에 익숙한 엔지니어가 사무직 분위기에 어색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옷은 평소에 입는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 코디네이터나 가족 구성원 등의 도움을 얻어 평소 패션감각을 기르는 것도 방법이다. 또 패션잡지 등을 보면서 그런 쪽에 관심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관심이 있으면 자연히 손길이 미치게 마련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옷차림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적어도 일반 사무직이거나 대외활동이 있는 사람이라면 깔끔한 와이셔츠 차림은 기본일 것이다.

와이셔츠(Y셔츠)는 일본에서 'white shirts'를 억지로 줄여서 만든 단어인데 영어권에서는 그냥 shirts나 dress shirts라고 한다. 요즘은 컬러 와이셔츠나 다양한 형태의 와이셔츠가 생산되고 있어 나름대로 자신의 취향과 함께 미적 감각을 살릴 수 있다.

주문 와이셔츠의 경우 소매나 윗주머니 또는 왼쪽 팔뚝 부분에 자신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겨 넣을 수도 있다. 넥타이와 조화를 잘 맞추면 제법 그럴듯한 패션감각을 나타내게 된다.

옷에 관해 몇 가지만 부탁하자.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일로 인해서 그러했던지, 아니면 다른 짓을 하다가 그러했던 지는 몰라도 어찌됐던 다음날 아침 전날에 입었던 옷과 와이셔츠 차림 그대로 출근하는 경우이다.

바깥옷이 그렇다면 당연히 안쪽의 내의도 어제 그대로일 것이다. 불가피하게 외박을 했더라도 옷은 미리 챙겨 갈아입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집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사우나 등에서 양말과 내의를 사서라도 갈아입는 게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옷을 깨끗하게 관리하라는 것이다. 옷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구기는 일과 같다.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인을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의 경우 윗옷을 어깨 상단에 걸치고 가는 사람,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고 가는 사람, 팔짱을 낀 채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 허리 뒤편으로 두 팔을 돌려 양반처럼 서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100%가 한국인이다.

술집이나 식당 등에서도 윗옷을 벗은 채 옆의 의자나 방석 위에 그냥 던져놓는 사람도 적지 않은 데 그다지 바람직스럽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돈도 깨끗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자신의 옷도 역시 깨끗하고 관리하는 것이 맞다.

덧붙이는 글 | 아들과 딸,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태그:#직장, #출근, #옷차림, #정장, #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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