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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Usurisk)에서 한카호(Hanka湖)에 이르는 두 시간 남짓은 이국적인 풍광과 러시아의 현실, 그리고 우리에게 낯익은 일상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여정입니다.

▲ 공동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들어섰는데, 흡사 정겨운 우리네 시골마을 같다.
ⓒ 서부원
척박한 기후조건에도 황금빛 밀밭의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광활한 대평원을 이루고 있고, 들판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은 우리네 풍광처럼 정겨워 조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노는 아이들, 길가에서 반갑게 손 흔들어주는 몇몇 주민들의 모습 또한 친숙하고, 이웃마냥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고려인들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6년 전 연해주로 재이주해온 한 고려인 가정엘 들렀습니다. 문패에 우리글로 된 이름이 적혀 있어 의아했는데, 기부를 통해 이 집을 지어 준 독지가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런 외진 곳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끈'이 이어지고 있다는 고마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 마을 바로 곁에 이곳 주민들이 묻힌 공동묘지가 있는데, 전혀 음습하거나 스산하지 않고 아이들 뛰어노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 서부원
TV와 전화기 외에는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는 단출하고 소박한 집이지만,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꽤 안정되고 성공한 정착민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 내외, 손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단란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대문 너머 집 뒤로는 천 평 가까운 텃밭이 일궈져 있습니다. 그들의 직장이자 삶의 터전입니다. 광대한 영토의 나라답게 러시아에서는 농사지을 땅을 임대하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누구든 땅을 놀리지 않고 꾸준히 경작한다는 조건만 있으면 거의 무상인 셈입니다. 비록 임대료는 '공짜'일지언정 거친 자연환경과 열악한 관개시설과 농기구, 걸음마 단계의 초보적인 기술 등 정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감자, 피망, 호박, 콩, 산초 등 이름도 다 못 욀 정도의 다양한 곡물이 자라고 있어, 텃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곡물 박물관'이라 해야 더 어울릴 듯합니다. 게다가 곁에 수확한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고, 다른 한쪽에 갖춰진 널따란 축사에는 거위떼의 울음소리가 요란합니다.

▲ 방바닥 밑, 집집마다 갖춰진 겨울철 곡식 저장고. 이는 혹독한 추위 탓인 듯하다.
ⓒ 서부원
농약과 비료 등이 워낙 비싼 탓에 생산량은 많지 않을지언정 '본의 아니게' 모든 곡물이 유기농산물이지만, 거의 자급자족에 머무를 뿐 판로가 마땅치 않습니다. 생산해봐야 팔 곳이 없는 현실은 농업경쟁력을 따지기에 앞서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낙후한 러시아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가 민족적, 인도적 차원에서 연해주 고려인들의 정착을 돕는다면 무엇이 시급하고, 또 어떠한 방식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현재 이곳에 와 그들을 돕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역시 공감하며 가장 깊이 고민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 우즈베키스탄에서 6년 전 이곳으로 재이주해 정착한 단란한 고려인 가정(아들 내외와 손자)의 모습을 담았다. 러시아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 고려인들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 서부원
친숙한 마을을 벗어나니 다시 '낯선 땅'입니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도로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건물 한 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심어져 있지 않은, 그야말로 버려진 황무지를 한 시간 넘게 달렸습니다. 버스가 우거진 잡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군데군데 건물의 잔해가 널브러진 곳에 닿았습니다. 허물어지고 녹슨 채 방치돼 있지만 뼈대는 그런대로 남아 조금만 손보면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연해주 고려인 정착 사업을 지원하는 한 시민단체에서 이곳을 '생태문화벨트'로 가꾼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곳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관정(管井)이 있고, 전기를 끌어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포장이나마 도로가 놓여있는, 말하자면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한 시민단체가 '생태문화벨트' 사업을 추진중인, 옛 소련의 국영농장터의 모습.
ⓒ 서부원
기실 이곳은 소련이 붕괴되기 전 국영농장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주변 곳곳에 남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모두 그때 세워졌던 것들입니다. 잡풀을 헤치며 걸어 오르니 철골을 앙상하게 드러낸 거대한 양계장 건물이 막아섭니다. 안에서 닭을 키웠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큰 규모로, 경직된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참담한 실패를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이것이 제도와 관습에 젖어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인지, 비효율적이며 경직된 계획 경제 시스템의 실패인지, 아니면 사회주의 이념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인지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옛 사회주의 소련의 실상은 그렇게 피폐해진 몰골로 우리를 만나고 있습니다.

▲ 옛 소련 시절, 양계장으로 사용되었다는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의 잔해를 통해 이곳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 서부원
벽에 큼지막하게 '1988'이라고 적힌 콘크리트 건물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그 숫자는 아마도 건물이 세워진 때를 기록한 듯합니다.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인데도 왜 그리 낡아 보이는 건지. 포위하듯 주변을 덮고 있는 무성한 잡풀들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겁니다.

일단 야심찬 계획에 따라 첫 삽을 뜬 이상 이곳이 어떻게든 변모할 테지만, 부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살아있고 주민들의 건강한 삶이 묻어나는 곳으로 새롭게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드넓고 고요한 벌판을 무척이나 소란스럽게 하는 큰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나 우기가 있기는커녕 이슬비조차 구경하기 어렵고, 관개 시설조차 태부족한 이곳에서는 이런 잠깐 동안의 비조차 농작물 생육에는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입니다. 순식간에 낮을 밤으로 만들어버린 무서운 비였지만 연해주 와서 처음 만나는 것이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카호와 백사장의 모습. 평일에다 비 온 뒤의 스산한 날씨인데도 가족 단위 피서객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서부원
한카호에 닿았습니다. 호수 입구에 포효하는 호랑이가 그려진 연해주기(旗)가 반갑다는 듯 펄럭입니다. 아무르강을 중국에서는 헤이룽쟝(黑龍江)으로 부르듯, 중국과의 공유하고 있는 까닭에 싱카이후(興凱湖)로 더 잘 알려진, 우리나라로 치면 충청남도 넓이의 거대한 내륙 호수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동쪽 국경선이자, 아무르강의 가장 큰 지류인 우수리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호숫가는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건축 공사가 한창인데, 주변에 방갈로 같은 목조 캠프장이 여럿인 것으로 보아 대단위 휴양시설을 세우려는 듯합니다. 평일인데다 비온 뒤의 스산한 날씨 탓인지 고운 모래의 넓은 백사장에는 피서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물놀이 시설이 갖춰져 있고 요트도 떠 있는 등 연해주에서는 각광 받는 피서지임을 알겠습니다.

백사장에 서서 수평선이 하늘과 맞닿은 호수 저편을 바라봅니다. 아득한 저 수평선을 향해 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 가면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다시금 실감하게 된 것이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또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대자연은 훨씬 더 장엄한 것입니다.

오늘 밤 모스크바(Moscow)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하바롭스크(Havarobsk)로 떠납니다. 닷새 동안 머물렀던 연해주(프리모르스키)를 떠나 또 다른 신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연해주와의 이별이 아쉽지 않도록 이곳보다 더 낯선 하바롭스크와의 만남이 반갑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사)동북아평화연대가 주관하는 연해주-동북3성 답사에 참가한 후 정리한 기록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연해주, #한카호, #우수리스크, #고려인,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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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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