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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 외곽에 있는 정원, 예원 담장의 용머리
ⓒ 이승철
다음 날은 곧 바로 상하이 지역에서 멋지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정원인 예원을 관광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우선 고풍스러운 구 시가지를 잠깐 들렀다가 예원으로 향했다.

"여행을 많이 하신 어르신들이니까 북경의 이화원이나 소주의 유원을 구경하신 분들 계시죠?"

현지 가이드의 질문에 나이든 일행들 중에서 몇 사람이 다녀왔노라고 이야기를 한다.

"지금 가시는 예원은 그런 정원들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약간 초라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4대 정원에는 들지 못해도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가이드는 우선 중국의 4대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국이 자랑하는 4대정원은 우선 옛날 황실에서 만든 북경의 이화원과 함께 하북성에 있는 승덕 피서산장을 꼽는다는 것이었다. 하북성의 피서산장은 청나라 때인 1702년에 강희제가 착공하여 1790년에 건륭제가 완성한 넓이만 해도 564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 피서산장은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궁궐 정원으로서 강남지방 명승지를 본떠 수려한 자연경치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승덕은 본래 지명이 열하로서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배경이 된 지명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둘레만도 10km나 된다는 것이었다.

4대 정원의 나머지 두 개는 모두 소주에 있는데 모두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졸정원과 유원을 일컫는다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들이 돌아볼 상하이의 예원은 우선 규모면에서 이들 4대정원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 멋진 정자가 있는 예원풍경
ⓒ 이승철

▲ 관광객들을 위해 연주하는 전통 악사들
ⓒ 이승철

"그러나 예원은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인정원이어서 이름이 높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예원은 1559년 명나라 말기에 반윤단이라는 사람이 벼슬길에서 은퇴한 아버지 반은에게 선물하기 위해 18년 동안 지은 집이라는 것이었다.

반은이라는 사람은 인근 지역에서 자사를 지낸 사람인데 그가 은퇴하자 그의 아들인 반윤단이 아버지의 노후 생활을 편안히 지내게 하려고 18년 동안이나 정성들여 세운 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18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 죽고 말았지만 효심이 깃든 집이라 하여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예원은 상하이 구시가지 외곽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예원에 들어서자 하필이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정원을 걸어 다니며 구경해야 되는데 비가 내린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호텔에서 나올 때는 날씨가 맑았기 때문에 아무도 우산을 준비한 사람이 없었다. 짐 꾸러미 속에 들어있는 우산들은 모두 버스 화물칸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일행들은 이리저리 비를 피하며 불편한 정원 구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이날은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이동하는데 불편은 없었다. 정원은 소주의 유원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규모가 작아 유원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곳곳에 중국식 특유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고, 구멍이 숭숭 뚫리고 기묘하게 못생긴 정원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연못 옆에 세워져 있는 정자는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연못 속에 있는 수많은 비단잉어들은 관광객들을 따라 이리저리 몰리며 물속을 이동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 예원 연못 풍경
ⓒ 이승철

▲ 정자와 정원석
ⓒ 이승철

"여길 보십시오, 용머리가 보이지요? 담장 위로 길게 이어진 것이 몸통이고요."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에는 검은 색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용머리가 하늘로 치솟기라도 하려는 듯 힘찬 몸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본래 개인집이나 정원에는 절대 용의 모습을 만들어 놓을 수가 없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저렇게 버젓이 용의 머리와 몸통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세요?"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용 모양은 황실의 궁전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윤단은 어떻게 용의 모양을 담장 위에 만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 이 예원 담장 위의 용 모양이 결국 황실에 알려져 반윤단은 황궁에 불려가 심문을 받게 되었다.

아차! 하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반윤단은 황제가 묻자, 이 집의 용모양은 황궁의 용과 다르다고 변명을 했다. 황궁의 용은 발톱이 5개지만 이 예원의 용모양은 발톱이 3개밖에 없는 용의 친척뻘이 되는 동물이라고 설명해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었다.

"거참, 황제가 멍청했었을까? 아니면 효심에 감동해서 너그럽게 봐 준 걸까?"
"허허허, 정말 그러네, 우리들이 보기에도 저건 틀림없는 용모양인데 말이야."

일행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좁은 회랑을 지나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 곳에 이르니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중국전통 음악이었다.

"저쪽을 보십시오. 저 사람들이 우리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르신들을 위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바라보니 2층의 정자 위에서 몇 사람의 악사들이 우리들을 바라보며 연주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 공항으로 가는 길가 농산물 판매소의 한글 안내판
ⓒ 이승철
▲ 마당가에 쌓여 있는 석물들
ⓒ 이승철

"그래요? 그럼 잠깐 연주를 들어주고 가야겠네, 그냥 가버리면 저 사람들이 무안할 것 아냐?"

역시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이다. 그들이야 장삿속으로 하는 연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들을 위하여 연주를 한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와 연주소리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그러나 우리 정서에 맞는 음악이 아니어서 별로 마음이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잠깐 연주를 듣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몇 번 쳐주고 잽싸게 일어났다.

그곳에서 나오자 밖으로 나가는 출구였다. 역시 규모가 크지 않은 정원이어서 어느새 한 바퀴를 모두 돌아 나왔던 것이다. 곧장 버스가 대기 하고 있는 곳에 이르러 버스에 올랐다. 이제 공항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내륙지방에 있는 장가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공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그쳐있었다.

"가시는 길에 참깨를 사실 분들 말씀해 주십시오, 시간여유가 있으니까 사 놓으시면 저희들이 보관하고 있다가 돌아가실 때 드리겠습니다."

난데없이 가이드가 불쑥 참깨를 사라고 권한다.

일행들 중에서 몇 사람이 참깨를 사겠다고 나섰다. 그때였다.

"아니 중국에서 농산물을 사가지고 가시겠다는 말입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알만하신 분들이 그러면 안 되지요."

한 사람이 거칠게 항의를 하고 나섰다. 그는 60대 중반의 은퇴한 수의사였다.

"조금씩 사간다지만 관광객들이 모두 이렇게 사가지고 가면 우리 농산물이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그가 푸념처럼 한 마디 더하고 입을 다문다. 평생을 수의사로 일하면서 우리 농촌의 현실을 지켜본 그로서는 관광객들이 분별없이 중국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참깨를 사겠다고 의사표시를 했던 몇 사람이 주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조금 더 달리던 버스는 한 곳에서 정차했다. 일단 잠깐 쉬어가겠다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바로 옆에 무슨 유적지처럼 커다란 문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앞에는 역시 상당히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 마당가에 관상용으로 놓여 있는 엄청나게 큰 돌산
ⓒ 이승철
▲ 판매장 입구의 한글 안내문
ⓒ 이승철

그런데 이 안내판이 놀라운 모습이었다. 거의 모두 우리 한글로 써 있었기 때문이다. '농원 직판소', '농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소' 중국글자인 한문자는 몇 자 보이지도 않는다. 이건 순전히 한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안내판이었다.

"무공해 좋아 하시네."

몇 사람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흘겨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안은 굉장히 넓은 마당과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다. 마당가에는 어디로 반출이라도 하려는지 나무판자로 짐을 꾸린 옛날 석상들이 세워져 있고 집채만큼이나 커다란 돌산도 놓여 있었다.

"화장실 다녀오실 분들 다녀오시고요, 저 안에 판매장이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일행들을 판매장으로 안내했다. 가이드는 항의한 일행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농산물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판매장 입구에도 역시 한글로 '녹색식품마트'라고 쓰여 있었다.

"이건 순전히 한국인들에게 자기네 농산물 팔아먹으려고 만들어 놓은 매장이구먼."
"얼마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중국 농산물을 구입했으면 이런 전용매장 같은 것이 다 생겼겠어요?"

일행 중 몇 사람은 씁쓸한 표정으로 쯧쯧 혀를 찬다.

매장 안에는 참깨 등과 함께 가공한 각종 농산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농산물 매장 옆에는 조잡한 모양의 장난감과 장신구들, 그리고 의류들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일행들 중의 몇 사람이 참깨를 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못마땅해 하는 다른 일행들을 의식해서인지 조심스럽게 참깨를 구입하는 모습이었다.

▲ 판매용으로 포장해 쌓아놓은 농산물들
ⓒ 이승철

잠시 후 구입한 농산물들은 가이드와 매장 사람들이 손에 들고 버스의 짐칸에 실었다. 구입한 사람들이 멋쩍어하며 직접 손에 들고 승차하기를 꺼렸던 모양이었다.

"참깨는 국산이 없어요, 우리 농촌에서는 재배를 하지 않는답니다. 국내에서 파는 것들도 어차피 모두 중국산이랍니다. 값만 비싸지. 마누라가 꼭 사오라고 부탁을 해서…."

참깨를 구입한 일행 중 한명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우리 일행들은 석양 무렵에야 상하이 포동 공항에서 장가계행 국내선비행기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상하이, #예원, #농산물판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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