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월드컵 이전의 독일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분단 이전의 독일은 그다지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라가 분단된 이후, 서독과 동독은 각각 따로 팀을 구성하여 참가하기 시작했다. 동독은 1964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지만, 월드컵에서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서독은 1954년 마법의 팀 헝가리를 누르고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한 이후 꾸준히 본선 무대에 참가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를 누르고 4강에 진출했지만, 스웨덴과 프랑스에게 패하며 4위를 차지한 서독은,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지만 유고슬라비아에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한 바 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 소련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개최국 잉글랜드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연장에서 패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브라질이 50년대 후반부터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을 때, 비록 그들을 능가하지는 못했지만 서독 역시 나름대로 전열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축구 강국으로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리베로’ 베켄바우어가 2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후방을 든든히 지키고 있었고, 게르만 폭격기 게르트 뮬러가 뛰어난 득점감각을 보여주며 공격을 주도하고 있었다.

# 조별리그

서독은 페루, 불가리아, 모로코와 함께 본선 조별리그 4조에 속했다. 이들 중에서 서독의 전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상대팀들도 그다지 만만한 팀들은 아니었다. 페루는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침몰시키며 등장한 팀이고, 불가리아는 2년 전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나라였다. 모로코는 첫 출전한 팀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는 아프리카의 대표로 호락호락한 팀은 아니었다.

서독은 6월 3일 아프리카 대표인 모로코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가졌다. 모로코로서는 객관적인 전력이 뒤지기 때문에 져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마음을 비운 모로코가 먼저 선취득점을 하면서 전반전을 1-0으로 앞서나갔다. 서독은 후반에 우베 젤러와 게르트 뮬러가 골을 성공시키며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서독의 두 번째 경기는 6월 7일 불가리아와의 경기였다. 불가리아는 지역예선에서 네덜란드와 폴란드를 제압하며 본선에 올랐으며 2년 전 멕시코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었다. 불가리아는 첫 경기에서 페루에게 2-0으로 이기다가 후반에 2-3으로 역전패하며 충격에 빠져있었다.

첫 경기에서 역전패한 불가리아는 전반 12분경 니코디모프(Nikodimov)가 선취골을 넣으며 기사회생을 노렸다. 그러나 서독은 게르트 뮬러가 세 골을 넣는 활약에 힘입어 불가리아를 5-2로 제압하고 2승을 거두며 페루와 함께 2승으로 일찌감치 결승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서독의 세 번째 경기는 6월 10일 페루와의 경기였는데, 양 팀이 모두 2승으로 이미 결승 토너먼트 진출이 확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 1위와 2위를 가리는 경기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서독은 게르트 뮬러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페루를 3-1로 제압하고 조 1위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되었다.

# 결승 토너먼트

서독은 준준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와 맞붙게 되었다. 이들은 4년 전에 결승에서 만난 상대였다. 당시에는 잉글랜드가 연장 승부 끝에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는데, 서독으로서는 결승골 판정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에 이어 조 2위를 차지하고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팀이었다. 조별리그에서 단 두 골을 성공시켰지만 각각 승리를 얻기에 충분한 골이었다. 잉글랜드는 루마니아에게 1-0, 체코슬로바키아에게 1-0으로 승리하고, 브라질에게는 0-1로 패하며 조 2위를 차지하였다. 비록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은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6월 14일, 4년 뒤 설욕에 나선 서독은 초반에 0-2로 끌려다녔다. 조별리그에서 빈약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던 잉글랜드는 전반에 한 골을 선취하고 후반에서도 먼저 추가골을 넣으며 2-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경기는 잉글랜드의 승리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서독은 베켄바우어가 한 골을 넣으며(68분)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곧이어 우베 젤러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76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고, 양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하고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서독은 연장전에서 게르트 뮬러가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4년 전의 패배를 설욕하는 동시에 준결승 진출에 성공하였다.

서독의 준결승 상대는 빗장수비의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지역예선에서 동독을 따돌리고 본선에 진출한 팀이었고,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세 경기에서 한 골을 넣으며 골결정력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준준결승에서 멕시코를 4-1로 격파하며 조별리그의 부진을 말끔히 털어버린 팀이었다.

6월 17일 서독과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연장에서 승부가 가려졌다. 3일 전에 연장 혈투를 벌인 서독은 경기 초반에 한 골을 잃고서 0-1로 90분 내내 끌려다녔다. 서독은 이탈리아의 견고한 수비를 뚫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좀처럼 이탈리아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후반 45분도 거의 다 되어 심판이 호각소리를 불기 시작할 무렵, 서독의 슈넬링거가 천금 같은 공점골을 성공시켰다. 끝내 이탈리아의 빗장수비가 풀려진 것이다.

양 팀 모두 수비가 탄탄한 팀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연장전은 화끈한 공격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한번 풀린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는 서독에게 두 골을 추가로 내 주었고, 리베로 시스템의 서독 역시 세 골을 이탈리아에게 헌납하였다.

이 경기에서 베켄바우어는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 투혼을 보이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이탈리아가 4-3으로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서독으로서는 준준결승에서 잉글랜드와 연장 혈투 이후에 이탈리아와도 연장 승부를 펼치며 축구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선사했지만, 아쉽게 패하고 3-4위전으로 밀려났다.

# 서독,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3-4위전에서 서독은 브라질에게 1-3으로 패한 우루과이와 만났다.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6월 20일) 오후 4시에 그동안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를 연출한 서독과 남미의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10만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비록 결승전은 아니었지만 서독과 우루과이와의 경기는 그만큼 값어치 있는 경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준결승전에서 부상을 당한 베켄바우어가 빠진 서독은 우루과이에게 1-0으로 승리를 하며 3위를 차지하였다.

브라질이 세 번 우승을 달성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수비축구로 준우승을 달성하며 재기에 성공한 이탈리아와, 꾸준히 본선에 올라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서독의 움직임이 포착된 대회였다. 서독은 아직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두 번의 대회(1966년, 1970년)에서 보여주었고, 다음번 대회를 통해서 1954년의 감격을 되풀이하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6-21 11:2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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