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이 29일 오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이 열리는 서울고법에 도착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5월29일 서울고등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사건' 항소심 판결(이하 '에버랜드 판결')에서 에버랜드의 전·현직 대표이사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에버랜드CB 헐값발행이 이재용씨에게 삼성 경영권을 상속하기 위한 편법이었다는 것을 재확인함과 더불어 관행처럼 이어오던 재벌들의 부도덕한 편법상속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 손해액 판정 없이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는 데 그쳤던 1심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손해액 89억원을 산정함으로서 특경가법위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의 배임죄를 적용한 것도 진일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정된 손해액 89억원은 애초 공소제기 된 969억여원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지나치게 낮게 산출된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지적을 받고 있다. 에버랜드CB를 취득한 이재용씨 등이 얻은 재산상의 이득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버랜드CB는 1996년 발행됐으나, 기소는 2000년에야 검찰이 아닌 법학교수 43인의 고소에 의해 이뤄졌다. 기소 이후에도 담당 검사와 재판부가 반복적으로 교체되고, 심리와 선고가 지연되는 등 사법부 내부의 혼란도 적잖았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 일부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피고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 판결에 그친 것이나, 이재용씨 등의 부당 취득 금액을 제대로 판결하지 않은 것,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를 판단 대상에서 제외한 것 등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에버랜드 판결 관련, 신문기사들을 살펴보니...

미국 등 서구의 경우, 회계부정이나 탈세와 같이 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 엄정한 법적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의 사법부는 '경제 살리기' 등의 이유로 기업인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관대하게 처리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조소를 받아왔다.

이에 본회는 이번 사건을 다루는 보도의 중요성을 주목하며 판결 다음날인 30일과 31일 주요 신문의 보도를 모니터했다.

'에버랜드 판결' 관련 신문기사의 ▲기사건수 및 종류 ▲기사제목 주제별 분류 ▲취재원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중앙일보>의 '삼성 감싸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표1] 참조). 기사 건수는 <조선일보>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겨레신문>이 관련 보도를 많이 내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사설·칼럼 보도에서는 <중앙일보>만 유일하게 사설을 싣지 않았다.

[표1] '에버랜드 판결' 관련 기사 건수 및 기사 분류

 

                                                                                       (단위: 건)

 

일반기사

사설*칼럼

총 보도건수

경향신문

3

2

5

동아일보

4

1

5

조선일보

9

1

10

중앙일보

6

0

6

한겨레신문

8

1

9

※ 기사의 큰 제목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 민언련
'에버랜드 판결' 관련 기사의 제목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주제별로 분석했다. 편법승계에 대한 비판을 담은 제목은 <경향신문>이 3건, <한겨레신문>이 2건인데 비해, <중앙일보>는 전혀 없었다.

반면 삼성측 입장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듯한 제목의 기사는 <중앙일보>가 3건이나 되었고, <한겨레신문>은 1건, <경향신문>은 전혀 없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삼성측 입장과 편법승계 비판의 비중을 각각 1건씩 보도했다([표2] 참조).

[표2] '에버랜드 판결'관련 기사제목에 대한 주제 분류

 

 

법원판결

내용보도

삼성측

입장보도

편법승계

비판보도

재계의

입장보도

삼성 지배구조

전망

수사과정과 향후

수사전망

향후 재판전망

총 계

경향신문

1

 

3

 

1

 

 

5

동아일보

2

1

1

 

 

 

1

5

조선일보

3

1

1

1

1

2

1

10

중앙일보

3

3

0

 

 

 

 

6

한겨레신문

2

1

2

 

1

2

1

9

ⓒ 민언련
취재원 분석에서도 신문별로 차이가 있다.([표3]참조). 각 신문이 직접 인용을 한 취재원을 분석한 결과, <경향신문>은 재판부, 검찰, 삼성측, 시민단체 등 비교적 비등한 취재원 분포를 보였다. <한겨레>는 검찰 41.1%, 삼성측 29.4%순의 비율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삼성측 34.8%, 재판부 26.1%를 보였으나 검찰측은 7.7%로 적게 보도했다. 반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삼성측 취재원이 각각 50.0%, 57.1%로 지나치게 삼성측에 쏠려 있었다. 또한 이번 사건을 최초로 문제제기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해 온 시민단체 측도 취재원에서 제외했다.

[표3] '에버랜드 판결' 관련기사의 취재원 분석

 

                                                                                         (단위: 건)

 

재판부

검찰

삼성측

재계

시민단체

전문가

공정거래위원회

경향신문

2

(33.3%)

2

(33.3%)

1

(16.7%)

 

1

(16.7%)

 

 

동아일보

2

(33.3%)

1

(16.7%)

3

(50.0%)

 

 

 

 

조선일보

6

(26.1%)

2

(7.7%)

8

(34.8%)

2

(8.7%)

1

(4.3%)

3

(13.0%)

1

(4.3%)

중앙일보

3

(21.4%)

1

(7.1%)

8

(57.1%)

1

(7.1%)

 

 

1

(7.1%)

한겨레신문

2

(11.8%)

7

(41.1%)

5

(29.4%)

 

2

(11.8%)

1

(5.9%)

 

ⓒ 민언련
<중앙일보>, 노골적으로 '삼성측 변호'

<중앙일보>는 모니터 대상 신문 중에 유일하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설을 싣지 않았다.([표1]참조) 기사에서도 법원이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소액수의 10분의 1만 인정했다'는 점을 부각해 노골적으로 '삼성'을 편드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지난 30일 1면 하단 '에버랜드 CB 항소심도 유죄 선고/삼성그룹 차원 공모는 인정 안 해'와 8면 '검찰 '970억 차익' 법원은 89억만 인정'에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특히 8면 기사는 "검찰이 기소한 액수(969억원)의 10분의 1도 안되는 89억여원만 인정했다", "재판부에 의해 유죄로 인정된 배임금액은 검찰 공소사실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깎였다"며 재판부의 산정액수가 크게 낮아진 것을 강조하고 반대 입장 논거 없이 "검찰의 수사가 부풀려졌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만 실었다.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혐의에 대해서도 "항소심 판결은 공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삼성 측 변호인들의 입장을 전달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기사 말미에는 "에버랜드가 수년간 적자여서 CB발행 가격이 적정했고, CB발행가격이 낮더라도 발행 주식 수만 다를 뿐 회사에 들어 온 돈은 마찬가지"라는 변호인 측의 아전인수식 주장을 상세하게 실어주기까지 했다.

또 같은 면에 실린 조희대 부장판사와의 인터뷰 제목은 '"피해액 반드시 맞다는 건 아니다"'라고 달아 마치 검찰의 피해액 산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어진 '"배임죄 적용은 법리상 잘못"'이라는 제목의 변호인 일문일답 기사도 제목에서부터 삼성측에 형평성을 잃은 태도를 보였다.

8면 '2심서도 유죄에 '어휴' 공모혐의는 빠져 '휴~''에서는 법원 판결에 대한 삼성그룹측의 입장을 상세하게 실었다. 기사는 "삼성은 이번 판결로 '그룹 공모론'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우려했던 총수 소환사태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등 삼성 측 인사들의 발언을 자의적 해석과 편집으로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에게 자체적 면죄부를 주는 인상을 주었다.

이어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도 최근 비용 절감에 허리띠를 졸라맬 정도로 극심한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법적 공방에 힘을 분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는 황인학 전경련 상무의 발언을 기사 마지막에 싣기도 했다.

31일자 4면 '고민에 빠진 삼성'에서는 이번 판결과 삼성생명 상장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M&A 위험이 제기되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지배구조에 변화 없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기사는 "삼성은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라면서도 "하지만 재계와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개별 기업과 주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좋고 나쁨은 경영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지, 획일화된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편법증여를 통해 왜곡된 그룹 지배구조를 만든 삼성의 문제점은 언급하지 않은 채, 오히려 '경영결과' 운운하며 편법증여와 편법상속을 옹호했다.

<동아일보>, 경영권 방어 빌미로 편법 상속 옹호

▲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이 29일 오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한 항소심이 열리는 서울고법에 도착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동아일보>는 <중앙일보>처럼 노골적으로 '삼성 편들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30일 사설 '에버랜드 판결 '투명한 상속'의 계기가 돼야'에서는 에버랜드CB 불법승계에 대한 비판보다는 경영권 방어를 빌미로 편법 상속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현 상속세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사설은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1등 기업집단으로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와 영향이 막대하다"며 "이런 위치의 삼성이 이른바 'X파일'파동에 이어 편법 증여 시비에 힘을 빼는 것은 안타까운 일", "이 재판은 기업과 부의 투명한 상속이 중요함을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삼성에 대해서는 일반적 평가에 그쳤다.

그러나 사설은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상 50%의 상속세를 부담하면 대주주 일가의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며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이 주인 없는 회사가 되거나,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 상속제도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재벌의 편법상속은 불가피한 것인 양 호도한 것이다.

그 외에 1면 '에버랜드 CB 항소심도 유죄/주주 공모여부는 판단 안 해'와 6면 '경영권 편법승계 인정…무효화는 힘들어', '이대법원장 한때 변호 맡아…상고땐 심리 관여 안할듯', '삼성측 반응'에서는 법원의 판결 내용과 삼성 측의 반응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

<경향> <한겨레>, '대기업 편법 경영승계 경종 울렸다'

<조선일보>는 사설과 기사에서 삼성의 편법승계 문제를 비판하며 <중앙> <동아>와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사설과 일부 보도에서 CB 발생과 관련한 에버랜드 이사회 의결을 '무효'로 판단한 재판부 판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30일 4면 '법과 관행사이…기업들 "우리 떨고 있니"'에서 "이번 판결이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과 함께 기업 활동에 적잖은 부담감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법원이 이른바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판결을 내리고 있어, 준법 경영, 보수적 경영이 점점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법원과 검찰은 기업에 대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실어 법원의 판단이 지나친 것으로 호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재벌의 편법승계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겨레신문>은 대기업의 편법 경영승계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는 측면에서 이번 법원 판결을 평가했다. 30일 4면 '경영권 승계준비 재벌들/삼성 '타산지석' 삼을까'에서는 "이번 판결로 무분별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재벌들 사이에 더는 '세금 없는 대물림'이 힘들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신세계나 대한전선처럼 세금을 제대로 내고 경영권을 상속하려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이날 사설 '재벌 편법상속 관행 뿌리뽑는 전기 돼야'는 검찰과 법원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했다. 사설은 "법의 엄정함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업과 경제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앤론사의 케네스 회장에 대해 미국 법원이 45년 징역형을 선고한 것을 상기시키고 "늑장수사와 집행유예를 통한 석방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된다면 편법상속과 부당 내부거래 등 재벌기업들의 불법적 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수 신문사들의 자성과 자기쇄신을 촉구한다

<경향신문> 30일 10면 '삼성 지배구조 개선 계기로'는 이번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의 공모혐의와 관련하여 향후 수사방향을 비중 있게 다뤘다. 검찰의 "CB를 저가에 발행, 재용씨 등 4남매에게 넘긴 것은 주인이 바뀌는 일인데 머슴이나 마름(그룹 실무진)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느냐", "언제든지 불러서 조사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가 준비돼 있고 예상질의서도 작성해뒀다"는 언급을 인용하며 이회장의 소환가능성과 향후 수사과정을 실었다.

경제칼럼 '에버랜드 판결의 교훈'에서는 이번 사건 진행 과정상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문제를 지적하며 '법 앞의 평등'에 대해 꼬집었다. 또 "삼성그룹 스스로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재용 씨의 불법 승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설사 이재용씨가 3세 총수로 등극한다 하더라도, 기업의 이해관계자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최고경영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그룹이 이재용 씨의 부당이득을 회사에 반환하고 그룹의 지배·승계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사설 '에버랜드 항소심 유죄 판결에 담긴 뜻'에서도 편법 상속으로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재벌들을 부도덕한 행위를 비판했다. 아울러 삼성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보다는 변칙상속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에버랜드 판결에 대한 보도에서는 재벌기업의 경제범죄에 대해 여전히 미온적인 보수신문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동아일보>는 편법상속을 경영권 방어 측면으로 접근해 본질을 흐렸으며, <조선일보>는 법원의 엄중한 법 적용이 기업경영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방식의 접근을 취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자사의 이해관계에 매여 최소한의 객관성·중립성을 잃고 노골적인 '삼성편들기'에 여념 없었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해 삼성측은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다. 이 문제는 대법원 판결까지 계속 보도될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보도에서 이번과 같은 부끄러운 태도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해당 신문사들의 자성과 자기쇄신을 촉구하는 바다.

태그:
댓글

민주사회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 아래 회원상호 간의 단결 및 상호협력을 통해 언론민주화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가치구현에 앞장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