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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판각에 보관된 목판들을 설명하는 박경환 실장. 그는 유물기탁시스템을 고안해낸 장본이기도 하다
ⓒ 김기
경북 안동시 유교문화박물관(confuseum.org)은 전시실보다 수장고가 훨씬 더 크다. 비영리 사립박물관으로써도 상위 규모이지만 전시실 뒤편에 건축한 2동의 장판각(수장고)을 보면 더 놀라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년간 수집한 목판만 5만여점에 이르고 장차 10만점을 확보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록을 목표로 하기에 그 정도 규모는 최소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훈민정음, 직지심체요절,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로 등록되어 있는데, 고대 인쇄출판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던 것을 감안한다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수임에 분명하다.

유교문화박물관이 주로 수집,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은 고문서, 고서 그리고 목판들이다. 그중에는 국가지정 문화재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비지정 상태의 문화재들로써 그동안 도난 및 훼손의 위험에 방치되던 것들로 유교박물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장시스템에 의해 안전을 확보하게 됐다.

지난 5년간 안동 주변의 문중들을 중심으로 해서 꾸준히 유물기탁이 이어져 목판만 5만여 점, 고서, 고문서 등을 모두 합하면 20만여점을 수집할 수 있었다. 물론 문화재청에서 개인에게 개인 수장고를 설치해주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유지보수비용 등의 부담으로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도난 방지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 유교박물관의 기탁시스템이 문중과 개인들에게 큰 안심을 주게 되었다.

▲ 유교문화박물관에 기탁된 유물들은 분류작업을 마치고 보존처리실로 이동한다. 고서 등보다 목판들이 벌레 등 훼손이 더 심해 전국적인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 김기
이처럼 유물기탁시스템을 고안한 유교문화박물관 박경환 실장은 "연구기관에게는 유물이나 자료의 소유권은 중요치 않다. 소유를 버린 접근이 효과를 거두게 되어 국악자료들의 보전·연구에 기반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또한 이런 성과가 경북만이 아니라 각 문화권역별로 진행되어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 많은 국학자료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안동 유교문화박물관은 달리 말하자면 고서, 고문서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양의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 실제 기탁된 유물은 보존상태에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들도 많아 보존처리를 위한 훈증시스템은 쉴 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런 믿음직한 유물관리로 인해 도산서원의 목판 및 서책 대부분이 박물관에 보관되는 등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중·일 고서와 우리 것을 구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흥미로운 고서의 세계

▲ 고서, 고문서가 보관된 유교문화박물관 장판각 실내
ⓒ김기

조선이 중국의 정치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일반적 경향과 달리 조선의 제책은 중국은 물론 일본과도 달리 독자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다. 간혹 사극에 잘못된 책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우리 고서를 구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을 묶는 바늘 수를 세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네 바늘을 꿰어 책을 묶는데 반해 우리는 다섯 바늘로 한다. 이를 오침안정법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한 답이 나와 있지 않지만 서지학자 등에 의해 그 흥미로운 배경이 조만간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고서의 제본 방식도 다양해서 권자본, 절첩장, 호접장 그리고 선장 방식으로 나뉜다. 권자본은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 끈으로 묶는 것을 말하고, 절첩장은 병풍모양으로 좌우를 반복하여 접어서 처음과 마지막에 두터운 표지를 붙이는 방식이다. 호접장과 선장은 유사한 방식이고 선장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제본법이다. 물론 오침안정법에 의해 꿰맨다.

(흥미로운 사실은 절첩장 제본 중에 수진본이라는 것이 있는데, 수진본이란 말 자체는 소매에 넣고 다니는 귀중한 책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시험장의 '커닝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장의 부정행위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나 보다.)

고서는 발간 주체에 따라 관판과 사판으로 나뉘고, 사판은 다시 서원판, 사가판, 방각본으로 분류한다. 흥미로운 것은 방각본으로 상업용 출판이라는 점이다. 고서는 다시 내용상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경·사·자·집의 방식으로 나눈다. 이 방식은 중국 위진시대에 등장한 이후 유교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도서분류법으로 자리잡았다. 경은 유학의 경전과 주석류, 사는 역사서류, 자는 경전을 제외한 유학자들의 저서와 유학 이외 학파들의 저술류, 집은 개인의 문집에 붙인다.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개인 문집 한 권 간행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140장 정도의 문집을 발간하기에는 보통 3년 정도 시일이 소요됐으며,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요즘 금액으로 환산해도 수천만원이 들어갔다. 경비는 주로 후손과 문중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아 몇 대에 걸친 숙원사업처럼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문집은 해당 인물의 사후 공론을 거쳐 주로 제자들의 발의에 의해 만들어져 필요에 따라 수시로 수정보완의 과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일례로 1600년에 처음 간행된 퇴계문집의 경우 1746년의 8권 4책 규모로 퇴계선생속집을 통해 해석한 문집이 제자들에 의해 간행되어 아직까지도 그 재해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 김기

태그:#유교문화박물관, #장판각, #수장고,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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