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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 이현숙
운주사는 첫 머리부터 탑이다. 여길 가도 저길 가도 탑이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우리나라 지형을 배 모양에 비유, 배를 진압할 물이 없으면 침몰하기 쉬워 중심부분에 해당하는 운주곡에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한다. 탑이 죽 늘어서 있는 입구를 지나자 와불을 알리는 표시가 나온다.

'당연히 와불부터 봐야지' 하고 계단으로 이어진 산을 오른다. 그런데 올라가면서도 계속 탑이 나온다. 특히 바위 밑에 오롱조롱 모여 있는 탑들이 아주 정겹게 다가온다. 탑이 정겹다니, 불심에서 본다면 내가 경망스러운 걸까?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옆에서 말린다. 와불이나 찍지, 그런 걸 뭐하러 찍느냐고.

▲ 운주사 와불과 그 밖의 탑들...
ⓒ 이현숙
'알았어' 하고 그냥 오른다. 아침 잠이 많은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 일정에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머리는 멍멍하다. 길게 누워 있는 와불. 이른 아침인데, 한 아주머니가 와불을 돌면서 정성을 들인다. 와불은 생각보다 길다. 길이는 긴데다 나무 그늘이 있어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다. 세계에서 유일한 와불이라는데.

내려오다가 난 기어이 그 바위 밑에 모여있는 탑을 찍는다. 와불이 권위를 갖고 있어 대장 같다면 이 모여 있는 탑들은 오롱조롱 모여 머리를 맞대고 사는 서민들 같다.

난 권위가 싫다. 종손 집 칠남매 막내인 나, 위계질서가 단단한 집안에서 늘 눌려 살았기 때문인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우리 언니들 들고 일어난다. 내가 고집이 세서 그런 거라며. 아무튼 난 위아래 따지지 않고 오소도손 모여 사는 게 좋다. 바위 아래 모여 있는 정겨운 탑들처럼.

운주사에서 나와 어제(4월 28일) 갔던 길을 되짚어 쌍봉사로 간다. 역시 작지만 아름다운 절이다. 보물로는 철감선사 탑과 철감선사탑비가 있다. 가는 곳마다, 특히 절에 가면 어김없이 꼽게 되는 게 보물과 문화재다. 보물과 문화재가 많으면 더 이름이 나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든다.

▲ 쌍봉사...
ⓒ 이현숙
▲ 쌍봉사 철감선사 탑비(왼쪽)와 철감선사탑(오른쪽)
ⓒ 이현숙
그러나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난 작지만 정감이 있는 절이 좋다. 그런데 쌍봉사는 바로 그런 절이다. 3층 전각의 사모지붕 대웅전도 특이하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보물이라는 탑이 나온다. 다 둘러보고 길로 나와 연록에 싸인 절 전경을 바라보니 이것 역시 아름답다.

쌍봉사에서 나와 송석정으로 가는 길. 이정표도 나가는 길도 없다. 오른쪽으로 지석천이 보여 이 부근이 분명한데 나가는 데는 없으니. 다시 돌아와 국도에서 우측으로 나가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는다. 동네로 들어가야 한단다. 그러나 동네로 들어가서도 길이 만만치 않다. 좀 더 들어가려다 길모퉁이에 차를 세운다. 걸어가는 게 낫겠다며 차에서 내려 걷는다.

▲ 송석정과 지석천
ⓒ 이현숙
5분쯤 걸어가니, 비탈길 위로 마당이 보인다. 개가 짖기 시작한다. 왕왕 짖는 소리가 무섭다. 이 년 전 혼자 배낭여행을 하다가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 나는 개가 무조건 무섭다.

조심조심 정자를 향해 걸어간다. 여행객은커녕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정자. 광해군 때 양인용이라는 선비가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내려와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를 나누며 유연 자약한 여생을 살았다는 정자다. 마당 끝으로 지석천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정자는 어디나 뒤에는 산이요 앞에는 강이다.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는 것이다.

전남 화순은 운주사만 보면 된다고 했던 우리, 화순에 큰 코 다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달랑 관광지도 하나. 멋모르고 국도를 달리다 영벽정은 놓치고 환산정으로 향한다. 초행길인데다 시내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몇 번을 물어보고, 몇 번을 되돌아 겨우 환산정으로 가는 동네로 접어들었는데, 이건 가도 가도 좁은 오솔길이다.

울울창창 숲으로 싸인 길, 앞에서 차가 와도 피할 곳 없는 진땀이 나는 길이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이정표가 얼마나 반가운지, 또 카페나 음식점을 알리는 표시는 어찌 그리 많은지…. 천신만고 끝에 도착은 한 것 같은데, 눈앞에는 만발한 꽃에 둘러싸인 카페와 펜션뿐이다. 펜션 마당에 서 있는 주인인 듯한 남자에게 묻는다.

"여기 환산정이 어디지요?"
"환산정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런 동네 사람도 모른다면 환산정은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 거야.' 자신 없는 차는 움틀 꿈틀 움직여 조그만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큰 건물이 있는 우측으로 돈다. '저기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외침. 거기 연록에 숨은 그림 같은 정자가 물 위에 떠 있다. 연록에 감춰져 간신히 형체만 드러낸 정자. 우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서성저수지 한 쪽에 그림같이 떠 있는 손바닥만 한 섬, 그게 환산정이다.

▲ 연록에 숨어 있는 비밀의 정원, 환산정
ⓒ 이현숙
▲ 환산정을 즐기는 사람들...
ⓒ 이현숙
▲ 환산정을 열결해 주는 가느다란 길...
ⓒ 이현숙
그러나 되돌아간 길엔 환산정으로 들어가는 길이 없다. 아무런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 아까 본 꽃에 싸인 카페 들어가는 길과 주차장만 보인다. 한참 망설이다, 들어갔다 그냥 나오더라도 카페로 들어가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무작정 들어간다.

주차장 한쪽으로 흐릿하게 길이 보이고 서성저수지의 섬, 환산정을 연결한 가느다란 길이 나타난다. 조선조 병자호란 때 의병장 류함이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거생활을 위해서 지었다는 정자라더니 과연 찾기 어려운 숨은 그림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주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자연 돌아갈 길이 걱정이었다. 다시 그 길로 나가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런데 맞은 편에서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나온다. 온 길보다는 나을 듯싶은 길, 우리는 그 길로 들어선다. 길을 따라 농가와 식당과 카페가 이어진다. 큰 산이 나온다. 수만리큰재라는 이정표도 나온다.

▲ 수만리 들국화 마을에서 바라본 수만리 큰재 꽃길
ⓒ 이현숙
화순온천에 두부가 유명하다며 점심을 거기 가서 먹기로 했는데, 기사가 자꾸 한눈을 판다. 언제 또 오겠느냐며 수만리 재를 가봐야 한단다. 그것도 그럴 것이 멀리서 봐도 수만리 재에는 꽃과 차들로 북새통인 것이다. 어디에 가나 연록의 잔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계절에 우린 화순이라는 화려한 꽃동네에 초대받은 것이다.

꽃길로 산길로 화순온천에 갔지만 두부 집은 겨우 한 집. 힘도 들고, 배도 고프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집으로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적하긴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반찬을 놓는 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에 정성이 들어가 있다.

▲ 화순온천 입구에서 먹은 점심 밥상, 순두부 찌게, 순두부 청국장, 모두부, 그리고 두부를 만드는 부엌..
ⓒ 이현숙
우린 제대로 찾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한 번도 잡지나 TV에 나온 적이 없단다. 맛도 좋고 반찬도 많았는데, 더구나 들어가는 입구에는 두부를 하는 부엌도 공개해 놓았는데. 맞다. 꼭 유명한 집만 맛있으란 법 있나.

우린 배고픈 판에 허겁지겁 먹고 쉴 새도 없이 차를 탄다. 우리가 얕본 화순, 아직 반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 송석정
* 주소: 전남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화순-능주-춘양-입교

환산정
* 주소:화순군 동면 서성리
  화순-수만리 큰재 넘어 우회전-서성저수지 보이는 데서 다리 건너 까페 들어가는 좁은 길 우회전.

*두부로 유명한 곳은 화순온천이 아니라 화순에 있는 도곡온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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