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명문 정읍고등학교

정읍시 학원체육을 대표하는 두 가지 종목이 있다. 바로 검도와 핸드볼. 지난주에 이어 정읍검도를 취재하는 도중, 이를 ‘핸드볼과 검도’라고 순서를 바꿔 말했다가 면박을 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정읍검도회 신함식 전무의 안내를 따라 정읍시청 검도팀 방문에 이어 이번에는 검도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정읍고등학교를 찾아갔다.

해질 무렵 사선으로 부서지는 햇살을 품은 강당 안에는 56년 전통의 정읍중학교와 40년 전통의 정읍고등학교 소속 20여명의 선수들이 목이 터져라 기합을 토하며 맹훈련을 하고 있었다.

정읍고등학교 검도부는 현재 김계중(57) 감독을 필두로 이영민(46) 선생(겸임 감독)과 장기남(고등부, 37), 배영필(중등부, 29) 코치가 혼연일체 되어 ‘정읍 검도는 전국 으뜸’이라는 자랑스러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읍고등학교는 ‘검도’라는 단일 종목에 관한 한 단연 ‘명문’이라 할 수 있다. 1979년 3월 창단 이후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고 정관묵, 허웅 등 10년 넘게 국가대표로 활약한 선수를 포함해 다수의 국가대표 상비군을 키워낸 명실상부한 ‘검도의 메카’다.

“저희 학교는 지난해 ‘개방형 자율학교’로 선정돼 ‘1인 1기’운동을 하고 있어요. 학교의 자랑인 검도를 모든 학생들에게 가르쳐 졸업할 때까지 최소한 초단을 취득하게 하는 것이 그 취지죠.”

김계중 감독을 뺀 모든 코치진이 모인 자리에서 이영민 선생(겸임 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하자면 이영민 선생은 뭐랄까, 아주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전라북도 육상연맹 상임이사 출신에다 컬링, 수영, 레슬링 등을 섭렵하며 ‘참 매력적인 것이 검도다’는 결론으로 현재 위치에 앉게 된 것.

이 선생은 “현재 강당에서 연습중인 우리 학생들은 전문 선수로 육성하는 것인데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옛날에야 운동한다고 하면 공부는 아예 제쳐두고 오로지 훈련만 했지만 이제는 시대도 바뀌고 상급기관의 지침도 있어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게끔 돼있습니다”며 운동선수들이 대개 학업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우려에 대답했다.

실제 선수들은 6교시(3시 30분)까지는 친구들과 같이 정상 수업을 받고 그 이후에 2시간가량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대회가 임박하면 새벽이나 밤에도 훈련을 강행해야 해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하는 선수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정읍고등학교 검도부
ⓒ 정읍시민신문

최강 실력에 비해 열악한 지원 아쉬워

정읍고등학교 검도부는 정읍중학교에서 검도를 시작한 학생들이 진학해 오면 그때부터 재능 있는 선수를 뽑아 전문 선수로 육성한다. 중학교 때 기초를 다지고 고등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기술훈련에 돌입하는 것. 코치진은 재정 문제와 기숙사 시설의 부재로 타 학교의 뛰어난 선수를 스카우트해 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고 집중적인 합숙훈련 역시 불가능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배영필 코치는 “정읍시를 놓고 보더라도 우리 정읍고등학교의 검도는 분명 정읍을 빛내는 효자 같은 존재예요. 이런 예쁜 자식에게 각계각층의 뜻있는 분들이 도움이 돼주었으면 합니다”고 당부하며 “사실 검도 장비를 갖추는 것만 해도 만만찮은 부담이거든요. 타 도시에 비해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상황에 우리 선수들이 이런 데까지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땀 흘리며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강조했다.

이는 ‘명문’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항의인 셈이다. 장기남 코치 역시 “대회에 출전할 때 선수들을 운송할 차가 없어 학교 선생님들이 승용차로 직접 데려다 주는 형편”이라며 “다른 어느 때보다 각오가 대단한 올해에 이런 기본 지원조차 없어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라북도에는 현재 정읍을 포함해 전주와 익산 세 곳에서 청소년 검도를 육성하고 있다. 이 중 최강은 단연 정읍중.고등학교다. 나머지 두 곳과 실력을 비교할 때 ‘쌍벽을 이룬다’는 식의 표현에도 기분이 나쁠 정도라고 하니 그 실력과 명성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인구비율과 선수층 등을 놓고 보더라도 정읍 검도의 활약은 놀랍다.

더군다나 정읍을 제외한 두 곳은 재정 지원이 훨씬 나은 편이라고 한다. 실력은 최상인데 지원이 미흡하니 당연히 코치진의 고민이 많을 수밖에. 코치진은 정읍에 재능있는 어린이를 발굴, 육성할 수 있는 초등학교 검도부가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모든 게 그렇듯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먼저 시작했을 때 실력 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현재 정읍에서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검도를 시작하는 형편이라는 것. 이런 와중에 소년체전과 전국체전 전라북도 대표로 선발되는 등 기량이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먼저 시작한 타 지역 선수들에 비해 그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엄숙한 훈련 분위기 속에서도 밝은 선수들

이런 어른들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선수들은 그저 묵묵히 훈련에 열중이었다. 그 분위기에서 엄숙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멋진 이미지는 단체 사진을 찍으며 금세 깨지고 말았다. 주장 홍성우(정읍고 3) 선수가 머리에 물을 묻히며 멋을 내느라 뒤늦게 나타난 것. 이들은 모두 운동할 때 외에는 또래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한창 멋 내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들이었던 것이다.

현재 국가대표 상비군 소속으로 검도부 주장을 맡으며 다른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제법 매섭기까지 한 홍 선수는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놀지 못 하는 게 가장 아쉬워요. 중학교 때 관두는 친구들은 모두 그 고비를 넘기지 못 해서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도 “검도를 하면 멋있어 보이는지 여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내심 자랑을 감추지 않았다. 집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만큼 앞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돼 세계를 제패하는 게 꿈이라고.

이민호(정읍중 3) 선수는 “초등학교 때 방황(?)하던 저에게 당시 검도 사범이셨던 삼촌께서 권유해 시작하게 됐다”며 “저 역시 친구들과 함께 놀지 못하는 게 힘들지만 형들이 너무 잘해줘서 매우 즐겁다”고 해 함께 인터뷰하던 홍 선수의 의미심장한 웃음과 기자의 폭소를 자아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단언컨대 이제 대한민국에서 검도를 하려면 정읍으로 보내야한다는 말이 나올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정읍중고등학교 검도부의 코치진과 전 선수들의 열정에서 그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취재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자신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훈련을 계속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프로 못지않은 진지함이 엿보였다.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이 꿈이라는 정읍중고등학교 선수들의 희망이 온전하게 꽃 피울 수 있도록 행정과 각계각층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 현재 지역 업체인 DM푸드(주)와 미미(주)에서 매일 선수들에게 우유와 간식용 빵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꿈을 위해 달려오며 일찌감치 성숙해져버린 어린 선수들의 희망을 지켜줄 ‘키다리 아저씨’가 더 많이 나타나주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북지역신문 '정읍시민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검도 정읍고등학교 정읍중학교 국가대표 1인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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