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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6자회담이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한반도 상공을 뒤덮어온 짙은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5차 3단계 6자회담에서 진통 끝에 9·19 공동성명의 첫 단계 이행조치에 합의한 것이다. 2005년 9월 19일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공동성명이 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이번 합의를 통해 길게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짧게는 2002년 10월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충돌 이후 위기에 직면해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다량의 플루토늄, 그리고 2차 북미 핵대결의 원인이었던 우라늄 농축 문제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합의를 '불완전'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들 문제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경수로 문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동되어 있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동결'을 넘어 폐쇄와 봉인, 그리고 상응조치에 병행될 불능화 조치에 동의했다는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합의된 내용을 성실히 이행할 경우, 최소한 북한의 핵무장 능력을 현재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

흔히 "한반도 정세를 예측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고들 말한다. 뭔가 될 듯 하면서도 잘 안되고, 파국을 맞이할 것 같았는데 화해 무드로 반전되는 일이 계속 반복되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작년 7월에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10월에는 핵실험마저 강행하면서 "6자회담은 죽었다"는 진단이 팽배했었다. 대북 강경파들은 김정일 정권이 있는 한 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며 정권교체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미소간의 냉전시대와 유사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과장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대화 수용 및 확실한 인센티브 제시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리고 중동에 힘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결코 평화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부시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배경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노렸다기보다는 '협상의 재구성'을 원했다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핵실험까지 한 북한은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핵군축 회담을 고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협상이 시작되자,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요구하거나 6자회담 의제가 핵군축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비록 그 방식이 거칠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북한 역시 '핵에 의한 생존'보다 '다른 방식을 통한 생존'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북한은 '약해진 부시 행정부'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의 조합을 미국과 담판을 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한 걸음, 그러나 험난한 여정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다. 극적인 반전은 위기에서 기회로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존 볼튼이 예고편을 보여준 것처럼 미국 내 강경파들은 꼬투리 잡기와 허점 노리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미국 언론들도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도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어렵게 할 걸림돌들은 많다. 2차 북미 핵갈등의 원인이었던 우라늄 농축 문제, 9·19 공동성명에서 미래의 의제로 넘긴 경수로 문제,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검증 문제 등은 자주 거론되는 암초들이다.

또한 미국이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교역법에서 북한을 빼줄 것인지, 관계정상화의 조건으로 다른 요구들을 내놓지는 않을 것인지, 일본이 납치 문제를 앞세워 훼방을 놓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 가지 난관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내심과 집중력이다. 또 다시 상황 전개에 일희일비하거나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면, 어렵게 들어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언제든지 이탈될 수 있다.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 평화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태그:#정욱식, #칼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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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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