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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금와왕(金蛙王)의 친아들이 아니라서 부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가 금와왕의 친아들이었다면, 혹 그대로 부여에 눌러 살았을 가능성이 있었을까?

‘금와왕이 주몽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남남이므로 결국엔 대소(帶素)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읽어 보면, 주몽의 ‘출신 성분’이 그의 부여왕 등극에 결정적 장애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금와왕도 해부루왕(解夫婁王)의 친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여 사람들이 선왕(先王)의 친아들이 아닌 자를 왕으로 받아들인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1은 동명성왕(주몽)과 유리왕에 관한 부분이다. 그런데 고구려본기는 정작 주몽이 아닌 금와왕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 금와왕 역시 주몽처럼 본래 왕자의 신분이 아니었다. 늙도록 아들을 얻지 못한 해부루왕이 그를 양자로 삼았던 것이다.

아들을 갈구한 해부루왕은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이란 곳에서 큰 돌을 보고는 갑자기 멈춰 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이를 괴이히 여긴 해부루가 아랫사람에게 그 돌을 옮기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1
ⓒ <삼국사기>
"사람을 시켜서 그 돌을 옮기니, 작은 아이가 있어 금빛(金色) 개구리 모양(蛙形)을 하고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곧 하늘이 나에게 후사를 내려주심이라 하였다. 이에 (아이를)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고 하였으며,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이에 의하면, 해부루는 아이가 금빛(金) 개구리(蛙) 모양을 띠고 있었기에 그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으며, 훗날 아이가 장성한 후에 그를 태자로 삼았다. 김부식은 "일설에는 와(蛙)를 와(蝸, 달팽이)라고 했다"는 주석을 덧붙였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금와가 해부루의 친아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친아들이 아닌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은 정치적 모험이 될 수 있다.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이를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개인적 능력이 없는 한 선왕의 친아들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금와에게는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이 없거나 혹은 약했다.

정통성이 없거나 약한 금와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면 일종의 ‘정치적 조작’이 필요했다. ‘신성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금빛 개구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금와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금와의 정통성이 해부루에게서 나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정통성이 하늘에서 나왔다고 ‘조작’한 것이다.

위와 같이 주몽 출생 이전의 부여에서는 혈통상의 왕자가 아닌 금와가 일종의 ‘정치적 조작’에 힘입어 왕위 계승자로서의 정통성을 구비한 선례가 있었다. 그러므로 부여 사람들은 혈통상의 왕자가 아닌 자를 왕으로 받아들인 경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선례를 고려하면, 주몽이 단지 금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부여에서 배척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금와왕이 양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선례가 있었다. 그리고 주몽은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또 그는 금와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주몽이 부여의 통치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여의 왕자들과 신하들이 그를 유별나게 견제한 데에서 그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몽은 결국 왕위계승자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지만, 주몽이 부여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그가 금와왕의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의 능력이 너무 출중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소를 포함하여 7명이나 되는 금와의 친아들들이 그를 견제하고 또 신하 집단도 왕자들의 편에 선 주된 이유는 주몽의 능력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금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은 부차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주몽은 (그 능력으로 볼 때) 사람의 아들이 아니므로 일찌감치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두렵다"는 대소의 말에서 주몽의 출중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이 너무 뛰어난 주몽은 남의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라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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