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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나가면 ARS를 통해 후원금이 몇 천 만원씩 들어오는 줄 알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300만원 넘기면 굉장히 많이 받은 거예요. 100만원도 못 받은 환자도 있던 걸요. 이렇게 방송 한 번 나가면 그 뒤론 후원 얻기 힘들어요. 민간후원이란 게 아무래도 1회성이죠."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들이 가끔씩 '희귀질환'이란 이름으로 TV와 언론, 인터넷을 통해 소개된다. 정부 지원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환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시청자들과 누리꾼들은 ARS 버튼을 누른다.

평생 병을 앓고 살아야 하는 희귀질환자들에게 1회성 도움은 잠깐 동안 웃음을 줄 뿐이다. 그마저도 지원대상은 대부분 아동들에 집중돼 있다. 부모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성인들은 오로지 제 힘으로 병을 이겨내야만 한다.

희귀질환은 온갖 합병증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가정 파탄, 구직난 등 온갖 사회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동안 희귀질환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병이었다.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알리길 꺼리고, 다른 병에 비해 사회의 관심도 적었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희귀질환 문제를 알리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희귀난치성환자 후원 모임인 '여울돌' 대표 박봉진씨와 스터지웨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은총이 아버지 박지훈씨는 지난해 희귀질환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전국 도보순례를 했다. 올해는 똑같은 구호를 내걸고 마라톤에 도전할 예정이다.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서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광훈 소장은 지난해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희귀질환자들의 생활 실태'를 발표할 때 도움을 줬다. 대한의학유전학회는 지난해부터 연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희귀질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의료 및 사회지원 등 현장에서 그들과 부딪히는 이들의 입을 통해 현실적 한계를 짚어보고 희귀난치병 치료의 전망 및 희망에 대해서 짚어봤다.

보여주기 식 민간지원 한계, 정부 제도화된 시스템 필요

▲ 김원철 고대 구로병원 의료사.
ⓒ 나영준
"민간차원 지원의 경우, 사실 18세 이하 아동에게만 관심이 있고 성인에 관한 지원이 없습니다. 재원은 한계가 있는데 어린 아동을 도와야 뭔가 일을 한 것 같으니까…."

고대 구로병원 사회사업실의 김원철(35) 의료사는 희귀난치질환의 경우 정부의 시스템화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민간지원 또한 '보여주기'식의 사업이 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고대의료원은 2005년 한 일간지와 함께 희귀난치병 환자 지원사업을 펼친 바 있으며, '사회사업실'은 저소득층, 희귀난치병 지원사업을 하는 부서다.

종합병원의 경우 각기 이름은 다르지만 사회사업을 진행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환자들의 심리, 사회 상담과 경제 지원 등을 담당하며 기타 의료, 자원봉사 등도 진행한다. 또한 소아과나 정형외과 진료 중 희귀난치성 질환이 발견될 때 연결, 우선 상담을 한다.

희귀난치성 질환의 경우 육체적 고통은 물론 그로 인한 심리적 부담이 학교나 사회부적응, 성인의 경우 직장 및 결혼 등의 문제로 나타난다. 그중 무엇보다 큰 것은 가족 간의 관계. 이는 부모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물론, 간병에 있어 모든 관심이 한 자녀에게 쏠리기 때문에 형제 간 갈등도 심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소득층의 희귀난치질환에 대해서는 병원 자체적으로 바자회나 직원들의 성금, 후원자 개발 등을 통해 직접 지원키도 하고 외부적으론 사회복지 단체나 기업을 통해 연계시키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긴 하지만 현실상 넉넉하진 않다. 김 의료사의 말이다.

"후원자들도 각자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지원은 기초생활 수급권자 또는 그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계층이라 할지라도 병원비와 약 값 등을 대다보면 감당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죠. 때문에 융통성 있는 지원이 필요한 겁니다."

그는 장애시설 쪽에 숨어 있는 희귀난치질환 아이들이 많다며, 시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병명도 모르고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예전보단 나아졌죠. 초창기보다 국가인정 질환도 많아졌고…. 하지만 외국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인정하는 질환수가 다르거든요. 그것이 우선 선행되어야 의료보험 수가가 떨어집니다. 또 환아 가족들도 인터넷상 모임 등을 통해 정보교류를 하고 지지집단 형성을 해야 합니다."(보건복지부가 등록한 국내 희귀질환은 107종 200여종, 세계보건기구(WHO)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약 5000가지 이상으로 보고 있다.)

사실 정보공개는 민감한 문제다. 희귀질환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도 당사자들이 쉬쉬하기 때문이다. 이웃들에게 희귀질환 사실이 알려지면 서둘러 이사를 가거나, 조금이라도 병이 나아지면 희귀질환 단체와 연락을 끊는 것도 병 자체를 알리고 싶지 않은 환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원철 의료사는 아이의 경우 부모님이 결정을 할 문제지만 성인이 되면 본인의 선택 여부라며 꼭 공개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질환을 앓는 다른 이들을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이어 희귀질환의 치료와 희망을 위해선 실제 환자들이 뭉쳐 치료받을 권리를 요구해야 하며 이에 정부는 소외되지 않았다는 믿음과 가이드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지원, '기브 앤 테이크' 경우 많아

▲ 박봉진 여울돌 대표.
ⓒ 나영준
희귀난치성 질환어린이 후원모임인 '여울돌' 대표 박봉진(32)씨는 "알면 알수록 복합적인 측면이 많은 것이 희귀질환"이라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장애인은 장애인증이 발급되는데, 보호자 기준이 아닙니다. 하지만 희귀난치병은 보호자 소득기준에 묶여 있습니다. 희귀난치병은 정신적이나 면역력적 측면 등 장애인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희귀병까지 겹쳤는데도 말입니다. 그나마 보호자마저 없을 때는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희귀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심할 경우 가정의 해체를 불러오기도 한다. 해당 환아 기준으로 의료보호 혜택이 주어지지 않아 소득기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는 사례까지 벌어지는 현실이라고.

박 대표는 기업들의 기부문화에 대해서도 단호한 의견을 전달했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죠. 아무리 순수하고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소득공제 영수증을 못 끊어준다고 할 때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걸로 법인세 감면을 받으려 하거든요. 외형적인 것과 다릅니다. 세금 감면에 이미지 제고까지. 얻어가는 게 오히려 많습니다. 기업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희귀난치병 치료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무엇일까? 그는 수혜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후원자가 기부를 할 때 수혜자는 받고 끝내면 안 됩니다. 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실질적 자원봉사나 정보교류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많은 이들이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외국의 경우 기부를 받았을 때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통상적 문화다.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작은 지원일 경우에도 크게 받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는 결국 진정한 기부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동정몰이식 여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되겠지'라며 후원만 기다리다 자립의지가 박약해지고 때로는 후원이 적어지면 불평이 생기기도 합니다. 국가적 뒷받침은 당연하지만 환자 자신도 스스로 강해지고 나눔의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병원들도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만큼 치료사례들을 지적재산권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남는 돈 환원하는 것은 당연" 스티븐존슨 증후군 박지훈군 어머니

▲ 희귀질환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이 문제가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영화는 희귀질환인 ADL을 소재로 한 영화 <로렌조오일>.
ⓒ 로렌조오일
지난 2004년, 40도 이상의 고열로 피부온도가 솟고, 마치 화상을 당한 것처럼 온 몸이 검게 짓물러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던 박지훈(12)군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이후 스티븐존슨 증후군을 앓고 있던 지훈이에게 쏟아진 세상의 관심은 뜨거웠다.

다행히 그 후 박지훈군의 상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이 과정 중 다시 한 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가족들의 태도였다. 이들에게 전국에서 날아든 성금은 3억여 원에 달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중 치료비를 제외한 2억 원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든 투병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쓰이길 바란다며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낸 것.

지금은 가족 모두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어머니 신경숙(37)씨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많은 분들의 관심 덕에 지훈이가 건강해져 감사드린다"면서도 "환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당연히 세상에 나누어야 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신씨는 그 자신도 처음 질환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의 어머님에게 연락을 드렸었는데 이야기하기 싫다며 전화를 딱 끊으시더군요. 이해가 가면서도 섭섭했죠. 지금도 저희 집에는 전화가 많이 옵니다. 전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고민을 들어줍니다. 가뜩이나 힘든데… 서로 아픔을 나누어야죠."

정부 지원, 이제 세심한 접근으로 바뀌어야

▲ 희귀질환 문제가 아직까진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 대부분은 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진은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는 근육병 환자들.
ⓒ 최광훈
정부가 희귀질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1년부터. 이제 만 5년에 불과하다. 정부는 2001년 4종류의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대책을 세운 이후, 지난해엔 89종 1만7700명에게 의료비를 지원했다. 지난해 희귀질병 정보 사이트인 헬프라인(helpline.cdc.go.kr)이 문을 열었고, 지방 환자들이 서울에 올라왔을 때 쉴 수 있도록 '희귀난치성질환쉼터'가 개소했다.

국내 희귀난치병에 지원하는 금액은 약 780억원. 일본 2조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금액의 증액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좀더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우선 있는 제도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수술 등 목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긴급지원제도'라는 게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지원조건과 홍보 부족 등으로 인해 책정된 예산 615억원 중 38%(234억원)밖에 쓰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는 33.4%나 축소됐다.

또한 의약품이 아예 없거나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희귀의약품법(Orphan Drug Act)의 제정이 필요하다. 희귀약품은 환자수가 적어 수익성이 낮다. 공익을 위해 희귀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에 세금감면 혜택과 마케팅 독점권 등 혜택을 주어 생산을 독려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1983년, 싱가포르는 1991년, 일본은 1993년, 유럽은 1998년 희귀의약품법을 제정했다.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초중고 지역별 특수학급 비율이 절반이 안된다. 가장 비율이 높은 서울경기가 41%이며, 경상도는 28%, 전라도가 13%며 충청도는 12%에 불과하다. 현재 상태라면 희귀질환자들은 교육기회마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각 병에 대한 세심한 접근도 필요한 시점이다. 모든 병에 다 수술비와 약값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희귀질환인 '근육병'은 치료비와 약값이 거의 들지 않는 대신 물리치료와 보조기구 구입, 간병인 이용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휠체어 지원 외엔 지원이 전무하다. 의료보험 혜택이 있지만, 약값이 들지 않아 거의 쓸 일이 없다.

'스터지웨버 증후군'은 레이저 치료가 필수다. 하지만 200만원 가량 드는 1회 치료비는 미용이란 이유로 혜택을 못받고 있다. 간병인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FOP 환자의 경우도 간병인 지원제도가 절실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국가 지원은 미약하다.

희귀질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전 유전자검사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검사비용이 대략 600~800만원 가량 하는 이 검사에 대해서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아 대부분 환자들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이 모든 것들을 시행하기 위해선 더 많은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스터지웨버 증후군 은총이의 박지훈씨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지금 필요한 것 중 하나를 말하고 있다.

"숨어 있으면 언제까지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스터지웨버 증후군 환자들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나서지 않으려 해요. 게다가 레이저 치료 받아서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지면 연락을 뚝 끊습니다. 이래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태그:#희귀질환, #후원금, #기부금, #치료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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