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이 좋은 걸까. 장병윤씨는 외모만으로는 전혀 '타짜'같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천호영

그는 1톤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였다. 부산의 한 식당에 컨설팅을 해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케이블방송 촬영팀이 동행하고 있었다. 이미 내 곁에도 나처럼 그를 기다리는 주간지 기자가 있던 터였다. 22일 경남 산청에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세 매체의 취재진이 내려온 것이다. 장병윤(52)씨. 현재 그의 직업은 농부이자 어부. 고구마 농사를 짓고, 민물고기를 잡아 판매한다. 그러나 19년 전까지 그는 내로라하는 '타짜', 쉽게 말해 '전문도박꾼'이자 '도박기술자'였다.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허영만 화백의 만화 <타짜>에 도움을 줬고, 또 그 인연으로 영화 <타짜>(최동훈 감독)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주인공들 모두가 타짜 기질 있어예" '타짜' 장병윤씨와의 인터뷰는 "원래 도박은 여관에서 하는 것"이라는 그의 권유도 있고 해서 산청의 한 모텔방에서 이뤄졌다. 인터뷰와 함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선 조용한 공간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 들고 있던 가방을 펼쳤다. 카드 6벌, 화투 4벌, 그리고 자신이 쓴 책자와 면도기 등이 나왔다. 먼저 영화 <타짜>에 관한 질문부터 풀었다. - 영화 <타짜> 보셨나요? "시사회 때 서울 올라가 봤습니더. 감독님이 도박세계를 박진감 넘치게 잘 그렸더라고예. 물론 재밌게 하기 위해 다른 점도 있지만 90%는 사실과 가깝습니더. 그리고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잘 표현하셨더라고예. 영화 보면 아시겠지만, 그게 도박의 폐해를 알리는 거지 도박하라는 얘기가 아니거든예."
 케이블방송 촬영팀이 장병윤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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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의 도박영화들은 카메라 장난이어서 성공 못했지만 이번 <타짜>에선 배우들이 실제로 기술을 연기했기에 성공확률이 90% 이상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배우들에게 '기술' 전수를 위해 미팅자리도 두 번 가졌다. "처음에 몇 번 잡아줬는데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넉 달 뒤에 보니까 화투가 딱딱 붙더라고예." - 누가 제일 잘하던가요? "다들 열심히 하셨는데 감독님이 잘하시더라고예, 책임감이 있어 그런가. 밑장빼기(화투패의 윗장을 빼는 척하면서 밑장을 빼는 기술, '미싱' 또는 '밑식'이라고도 함) 성공시킨 분이 감독님이라예." 그는 밑장빼기 기술을 직접 보여줬다.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윗장을 빼는지 밑장을 빼는지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다. 그는 이후에도 인터뷰 내내 카드와 화투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 배우들 가운데선 누가 가장 타짜 자질이 있던가요? "주인공들이 다 그래예. 우선 눈들이 다 살아 있잖아요. 타짜가 되려면 눈이 살아있어야 합니더. 싸움도 좀 하고. 그런 면에서 조승우씨 유해진씨 보면 카리스마가 있더라고예." 눈감아주는 경찰 "영화가 허구는 아니지예"
 장병윤씨는 요즘 '기술' 자문을 위해 이 가방을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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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처럼 실제 폭력이 쓰이기도 하나요? "실제로도 많죠. 손가락 박살나는 경우는 많아예. 손가락 잘리고 그런 건 한번도 못 봤지만, 두들겨가지고 박살나는 경우는…." - 기술을 쓰다가 들켜서 그런 건가요? "그것보다는 한 군데서 많이 해먹다가 면다구리('타짜'로 얼굴이 알려지는 경우)가 나죠. 손으론 안 잡히니까 얼굴이 팔려가지고 아는 경우가 있어예. 저는 그런 적이 없는데, 후배 중에는 면다구리 당해가지고 딴 돈을 물려준 적이 있어예." - 도박판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신체포기각서를 쓰는 경우도 있나요? "꽁지(하우스 - 도박장 - 에서 높은 이자를 받고 자금을 대주는 사람) 돈을 썼을 때 그런 경우가 많아예. 물론 실제 그런 게 이뤄지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꽁지돈 쓰면 도망 안 가고는 못 견뎌예. 반드시 갚아야 된다고, 그러니까 도망가버려예. 도망갔다 걸리면 묵사발 되는 기고." 영화에서처럼 경찰이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는지 물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영화가 허구를 얘기하는 게 아닌데…. 요즘은 모르겠어예. 예전엔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예. 고발이 들어오면 정보가 와예. 어떤 방법으로든 하우스장(하우스의 총책, 게임의 전체 운영 및 경비, 보안을 책임진다)에게 정보가 와예."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21살에 전국 최연소 타짜가 되다 장병윤씨, 그는 산청에서 7살 때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형님이 카수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논밭 다 팔아줬는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쫄딱 망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빈궁한 생활이 계속됐다.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도 마칠 수 없었다. "국민학교 6학년 다니고 졸업 때 사진 찍잖아예. 며칠 있으면 졸업이니까 선생님이 앨범비를 달라고 그래예. 그런데 집안이 망해논 께 앨범비 줄 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교를 못가겠더라고. 6년 다녔는데 앨범비가 없어서 학교도 못가고 졸업장도 못 받고…." 그 길로 형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14살 때였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서울을 올라와보니 형님 형편도 넉넉치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형님집 옆에 아이스케키 도매상이 있었다. 서울 온 지 이틀 만에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종로바닥에서 신문팔이, 껌팔이, 번데기장사 안 해본 게 없어예."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우연히 요리연구가 왕준연씨를 소개받아 요리수업을 시작했다. "주방장 퇴근하고 나면 밀가루와 국물을 가지고 씨름했어예." 그같은 노력 덕에 어린 나이임에도 2년만에 주방장이 됐다. 그러나 서울의 밤문화는 어린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홍은동 유진상가 근처 식당에서 주방장을 했는데, 그 앞에 룸살롱이 있었어예. 밤마다 벌거벗고 있는 여자들을 보는 바람에 이상하게 돼버렸어예. 그래갖고 충무로에 재벌들 오는 룸살롱에서 일하게 됐어예. 그러다 부산으로 흘러들어와 또 재벌들 오는 룸살롱에 취직하게 됐는데, 그 때부터 잘못됐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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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는 주방장을 하며 월급 2만원을 받았다. 면서기 봉급은 1만2천원. 그런데 그가 있는 룸살롱에 드나들던 '그 사람들'은 하룻밤에 1천만~2천만원을 우습게 썼다. 그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버지하고 형님이 참 어지셨는데, 하루는 생각을 해봤어예. 절대로 정상적으로 살면 안되겠더라고예. 그럼 우리 아버지나 형님처럼 살겠더라고. 그래 이건 아니다, 그래서 도박을 하게 된 기라예.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었는데…." 어느날 도박판에서 그동안 번 돈을 몽땅 날렸다. 가게 한 채 값이었다. 이미 결혼해 아이도 있었다. 아내에게 얘기도 못한 채 8개월 동안 집에 안 들어갔다. 알고 보니 타짜에게 당한 것이었다. 억울했다. 자신이 타짜가 되기로 결심했다. "우연한 기회에 불행인지 불행중 다행인지 지금도 헷갈리는데(웃음)…. 타짜를 만나게 됐어예. 만약 그 사람을 안 만났으면 아직도 어느 도박판에서 사기당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를 만나 기술을 배웠다. 밤잠을 안자고 화투패를 붙들고 살았다. 10시간이든 15시간이든 좋았다. 영화 <타짜>에서 고니(조승우)가 기술을 익히는 장면, 그대로였다. 집념이었을까, 타고났던 것일까. 2개월만에 그는 '스승'을 넘어섰다. "광복동에서 시작해서 부산 하우스판을 휩쓸며 잃었던 돈을 다 땄지예." 그 사이 아내는 집을 나가고, 딸아이는 입양됐다. 그는 더욱더 도박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술과 여자, 마약에까지….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돈을 엄청 벌었는데..." 당시 전국에서 활동하는 타짜는 1백명이 채 안됐다. 그는 '최연소 타짜'의 명예(?)를 얻었다. 부산을 근거지로 전국 방방곡곡 도박판을 누비며 승승장구했다. 게임 종류처럼 도박판이 벌어지는 곳도 다양했다. 만화 및 영화 <타짜>의 선상 도박 장면은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삼천포에서 선주하고 게임할 때 얘기를 해줬죠. 배를 출발해갖고, 밤에 섬에 있다가 아침에 나오거든요. 파출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통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페리호 타고 가면서도 하곤 그랬죠. 도박판이 어디서 잘 되고 또 어디에 돈이 있는지 타짜들은 잘 알아예." 상대 역시 다양했다. 재벌2세나 대학교수를 상대할 때도 있었고, 폭력배나 밀수꾼을 상대할 때도 있었다. 재벌2세들은 하루밤에 1억~2억을 우습게 날렸다. "그들에겐 돈이 돈이 아니었어예." 또 밀수꾼들과 판을 벌일 때는 게임이 끝나면 돈 대신 받은 시계들을 팔에 줄줄이 차고 나왔다. 어쨌든 그에게 그들 모두는 고마운 '호구'(타짜들의 먹이감으로 돈 많고 도박 좋아하는 사람)였다.
 타짜의 손. 인터뷰 내내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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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는 꼭 필요할 때만 속여예. 간단히 한 수만 속이면 됩니더. 카메라에도 안 잡혀예. 타짜는 화투패를 다 보면서 치는 것과 똑 같아예. 그런데 이런데서 돈 따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예?" 타짜의 기본기술은 세가지. 밑장빼기, 낱장치기(카드나 화투를 자기 원하는 대로 섞는 것), 바꿔치기(패를 손바닥 손등 등에 숨겼다가 다른 패와 바꿔치기 하는 것)가 바로 그것. 이를 응용해 게임 종류에 따라 200가지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그가 바꿔치기를 보여줬다. 분명 바닥에 5광 다섯장이 깔려 있었는데, 그가 가져갔다 다시 펼치자 다른 패로 바뀌어 있었다. 기술이라기보다는 마술에 가까웠다. "타짜는 쪼고 그러지 않아예. 이미 몇 끝 줬는지 알기 때문에 흉내만 낼 뿐이지예. 타짜는 게임을 몇 분 있다가 끝낼 것인가, 누구를 밀어줄 것인가, 개평을 얼마나 줄 것인가, 돈을 얼마나 갖고 갈 것인가 그것만 생각해요." 하루밤에 17억원을 딴 적도 있다. 그런데 '호구'를 그같은 판에 앉히기 위해선 영화 <타짜>의 정마담(김혜수)과 같은 '설계사'를 비롯해 8~10명이 '공사'를 벌여야 한다. 그래 실제 정산해보니 2억원이 남았더란다. 그 가운데 타짜의 몫은 30%. 그렇더라도 타짜로 돈을 많이 벌지 않았을까? "돈 엄청 벌었는데(웃음), 마약에 다 집어넣었어예, 여자한테도 집어넣고. 또 무대뽀로 사니까 사기도 좀 당하고, 기천만원 돈 빌려줬는데 안 줘도 고발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타짜 해서 돈 번 사람은 못봤어예." 그는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줬다. 멀쩡했다. 그런데 마약을 할 때는? "바늘 꼽을 데가 없었어예. 얼마나 찍어댔는지 당시엔 여기가 시커멓게 죽었었지예". 도박이나 마약이나 한번 빠져들면 끊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 두가지를 한꺼번에 끊을 수 있었을까. 그는 "부끄럽지만 제 처(그는 현재 세번째 만난 아내와 살고 있다)가…"라면서 말을 이었다. "입이 돌아가고 눈이 떠가지고 1년 동안 안 감기더라고예. 한의원에 가니까 산후조리 잘못해서 그렇다, 병원에 가니까 신경성이다 그러더라고. 하도 안 나아서 무당에게 가니 귀신이 쓰여서 그런다고 하더라고예. 그래 굿을 하며 제가 대를 딱 잡으니까…." 귀신이 내렸다고 한다. 그 뒤 2개월 반 동안 꿈인 듯 생시인 듯 지옥과 천국을 경험했다. 자신이 그동안 지은 죄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한번은 악마가 칼을 주더라고예. 내가 내 살을 포로 뜨는데 그게 화투장으로 변해 날아가더라고예. 또 뱃속에 화투·카드·마약·담배·권총·맥주, 여자…가 바글바글 들어있는 거예요." '지옥'을 경험하고 뱃속에 있던 그 모든 것들을 딱 끊었다. 34살, 그리고 봄이었다. '기술' 쓸 수 없는 화투 개발해 팔기도 1톤 트럭을 구해 고물장사를 시작했다. 사할린에 있는 친척 형님의 도움으로 연어를 수입해 판매하기도 했다. 주방장 실력을 되살려 음식점도 열었다. 한 때 하루 매상이 5백만원이 넘었다. 그런데 IMF가 닥쳤다. 하루 매상이 10만원으로 떨어졌다. 결국 음식점 내기 위해 빌렸던 은행돈 이자를 갚지 못해 망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아, 옛날에 화투 쳐가지고 뺏은 거 마지막으로 이렇게 갚는구나 싶더라니까예." 3~4년 전에는 화투공장을 경영하기도 했다. 타짜들이 '기술'을 쓸 수 없는 화투를 개발해 판매했다. "깨끗하게 하는 데는 이걸 사가예. 그런데 구라가 있는 데는 이걸 안 사가는 거라, 속일 수 없으니까." 결국 공장도 팔아버렸다. 그 무렵 타짜와 도박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 '노타짜' 사이트도 열고, <타짜들의 히든 테크닉>(도서출판 보보스) 등의 책도 펴냈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몇 곳에 '타짜' 자문을 하기도 했다. 그의 책에는 당시 도움을 줬던 만화 <타짜>의 스토리작가 김세영씨, 그리고 드라마 <올인>의 총감독 유철용 PD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며칠 전에도 영화 <마파도2> 촬영 현장까지 가 '기술'을 가르쳐주고 왔다.
 그는 스스로를 '어부'라고 했다. 그는 현재 경호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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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는 고구마 농사를 짓고 민물고기를 잡고 있다. 수시로 음식점 컨설팅을 다니기도 한다.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어탕국수 음식점 체인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체인의 이름은 '서울입성'. "이성계는 칼을 갖고, 박정희는 총을 들고 갔지요. 저는 이제 화투가 아니라 국수를 들고 서울로 갈 겁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행복하다. "가족들이 날 필요로 하고, 나도 가족을 필요로 해요. 그게 돈 많이 필요하지 않아예. 타짜 때 하루 200만~300만원을 룸살롱에 뿌렸는데, 그 때는 그게 행복인 줄 알았어예. 그런데 요즘 1만3천원 꽁치 한 상자면 다섯식구가 한 달 동안 먹는 거예요. 큰 욕심 안부리고, 열심히 일 하고, 가족들이 바라는 게 별 게 아니거든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좋지 않은 일 안하면 되니까…." 타짜의 새만금, 그리고 바다이야기 마지막으로 '바다이야기 사태'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얘기를 꺼내자 그는 "먼저 새만금 얘기를 해야겠다"고 했다. "내가 고기를 잡지만 자연 그대로 놔두면 자손만대로 먹고 살아요. 그런데 재작년에 새만금에 조개 캐러가니까, 그 뻘밭이 완전히 썩어가지고 조개들이 허옇게 죽어 있더라꼬. 그냥 두면 새만금으로 자손대대로 먹고 살 건데, 몇 놈 이익 때문에 자손대대로 먹고 살 것을 망쳐놨잖아예." 이어지는 바다이야기. "바다이야기도 누군가 검은 욕심이 있어 그랬을 끼라예. 전 국민을 상대로 도박을 하는데, 도박공화국이라 그러잖아예. 사설하우스장, 카지노, 경마, 경정, 경륜…, 바다이야기도 누군가 설계한 사람이 있을 겁니더." 그리고는 덧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되겠지예. 언제 몸통 잡혀가는 거 봤습니꺼." 그는 또 "도박은 자신과 남을 동시에 망치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며 최근 만연하고 있는 도박문화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길게 털어놨다. "도박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사회분위기도 문제라예. 150억, 200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료보험비를 안내더라고예. 이게 말이 됩니꺼. 또 우리나라 주택보급율이 105%라고 그래예. 그럼 5%가 남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안그렇잖아예. 한 사람이 수십채씩 갖고 있는데 어떻게 갖고 있겠어예. 법 하는 놈들이 즈그들이 많이 갖고 있도록 법을 만드니까…. 내가 환경미화원을 하든, 식당 주방장을 하든, 미장원을 하든, 집 한 채 정도를 가질 수 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도박에 안 빠질거라예.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없게 돼 있다고예. 게다가 곳곳에 도박장이 있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어예…. 나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잘해주면 자연히 도박을 안하게 될 텐데." 인터뷰는 새벽 2시 3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세 매체의 기자들을 상대하느라 무려 5시간 가까이 걸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던 그는 "어이쿠!" 하며 허리를 부여잡았다.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타짜 시절 마약을 하고 여러 여자와 관계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죄 지은 것 갚는 거지예." 다른 취재진들은 서울로 올라가고, 그의 자리를 폈다. 그는 밤새 뒤척이며 끙끙 앓았다. 과연 언제쯤 그는 '속죄'를 끝내고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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