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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저녁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일만광장에서 열린 신영복 교수 정년퇴임식 및 기념콘서트 '여럿이 함께'에서 신영복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성공회대의 교수들로 결성된 '더 숲 트리오'와 함께 '상록수'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퇴임식 참가자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신영복 교수와 함께 '상록수'를 함께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5일 금요일 저녁 7시쯤. 방학 기간이지만,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작은 학교 교정이 북적이고 있었다. 학교 축제 때보다 한층 더 들뜬 분위기다. 한쪽에선 테이블과 음식준비가 한창이었고, 다른 한쪽에선 시끄럽게 무대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큰 느티나무가 있는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아줌마, 아저씨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서성이는 데 조명도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번쩍였다. 신영복 교수였다. 그곳에서 신 교수는 초대장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손님들을 한 분 한 분 반갑게 악수로 맞고 있었다.

보디가드들이 따라붙은 유명 인사부터 모시 옷 차림의 동네 할아버지까지 그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악수를 청했다. 그 중 어려보이는 학생에게 다가가서 "신 교수님을 직접 보니까 어떠냐"고 질문하자 박성진군(16·부산시 해운대구 좌3동)은 "생각했던 대로 얼굴에 지적인 게 묻어난다"고 답했다.

내 뒤쪽에서 또다른 사람은 "이렇게 정년 퇴임식을 하는 분은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판에 박힌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형식과 격식을 파괴하고 '열린 콘서트' 형식으로 치르는 퇴임식을 처음 본 사람들이 신기해서 하는 말이다.

저녁 8시, 일만광장 무대에서 행사를 시작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얼른 무대로 달려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건 처음"

광장 옆 학생회관에는 이번 퇴임식 제목인 '여럿이 함께'라는 글씨가 신영복체로 쓰여 크게 걸려 있었다. 앞의 의자는 다 차있었고, 나는 뒤에 서서 행사를 지켜봐야 했다. 한 1500여명 모였을까.

주위에서 한 성공회대 학생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적은 입학 후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그 옆에 있던 또다른 학생은 "나는 7년이나 됐는데 처음인 걸"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신 교수의 다큐멘터리가 시작되자, 7분 동안 장내엔 정적이 흘렀다. 신 교수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희미한 감탄사들이 새어나왔다. 다큐는 신영복의 일생을 짧게 압축해 놓은 내용이었다.

연출자 이동현(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04학번)군은 "평소 존경하던 분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어 영광이었다"며 "인간 신영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다큐멘터리에는 신영복의 초등학교 시절 응원단장의 모습, 여장했던 이야기 등 평소 신 교수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신영복 교수 좇아 입학한 가수 윤도현

▲ (왼쪽부터) 신 교수의 스승인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 소설가 조정래씨,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03학번인 가수 윤도현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사회자 박경태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신영복 교수를 좋아해서 우리 학교 학생이 된 사람"이라며 우리에게 익숙한 가수를 소개했다. 바로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03학번 윤도현이었다. 짧은 머리로 무대에 등장한 그는 신영복 교수님의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를 좋아한다며 10년 전 1집의 노래 '타잔'을 열창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다른 학교 음악 관련 학과에 가지 않냐고 물으면 "성공회대학교가 제일 좋으니까"라고 대답한다며 특별한 애교심을 표현했다. 윤도현씨는 "신 선생님, 너무 멋있습니다. 땡큐!"라는 말에 이어 두 번째 곡으로 새 앨범에 수록된 '오늘은'을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어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신영복 교수의 스승), 조정래 소설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시간 관계상 축사 시간을 2분으로 제한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조정래씨는 "대하소설을 세 작품이나 쓴 나에게 2분이라니…. 너무한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근태 의장은 자신이 직접 써온 편지를 꺼내들고 "감옥에서 20년, 대학 강단에서 20년 그리고 오늘부터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데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열정을 나누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신영복 교수의 여인들?

▲ (왼쪽부터) 현정은 현대 회장, 심실 유니온커뮤니케이션 회장,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가수 한영애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 뒤에 시·노래모임 '나팔꽃'의 무대로 장내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소주 '참이슬'과 '산'의 이름을 지은 손혜원 크로스 포인트 대표는 '처음처럼'이란 이름을 짓게 된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또 "처음처럼이라는 소주 이름으로 인해 남녀노소빈부에 관계없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그 글씨를 무상으로 제공해준 신 교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신 교수가 대학생 시절 가정교사로 지도했던 심실 유니온커뮤니케이션 회장은 신 교수가 했던 '사랑은 그 생활에서 이루어가며 경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새기며 살아간다고 전했다.

유난히 경호원이 많이 따라 붙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무대에 올라와 글씨를 통해 맺게 된 인연을 소개하며 마지막엔 "대북사업을 도와달라"고 해서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다음 무대는 '누구없소'의 주인공 가수 한영애였다. 그만의 노련한 무대매너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신 교수께 '처음처럼' 글씨를 선물 받고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며 신 교수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영화배우 권해효씨가 머쓱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대학 시절에 연기를 공부하던 때 신 교수의 글을 외우고 다니며 감성을 키웠다"며 그 자리에서 직접 외워 낭독해 장내를 숙연케 했다.

그 다음에 무대에 오른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도 고향·고등학교 선배인 신 교수가 자신의 하숙집에 자주 놀러왔었다며 신 교수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고향·고등학교 선배인 신영복 교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비는 차갑게, 분위기는 뜨겁게

명사들의 말을 적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취재수첩 위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 굵진 않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초대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비를 걸치고 있었다.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우산을 지니고 있었지만, 펴는 사람은 없었다. 신 교수의 퇴임식 콘서트라서 였을까.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즈음 강산에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 유일한 러브송이라는 '지금'을 무반주로 불러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구구단을 이용한 노래 역시 즉석에서 반주를 만들어 불러 또 한 번 박수를 받았다.

소문난 소리꾼 장사익은 특유의 입담으로 관객들과 호흡하며 '동백아가씨'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열창했다. 절창이었다. 그의 선율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의 구성진 노래 가락 때문인지 객석 곳곳에서 추임새가 새어나왔다.

기타를 달랑 둘러매고 무대 위로 올라온 사람은 가수 안치환. 그는 "퇴임식을 축하드린다기보다는 석좌교수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린다"며 '광야에서'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관객들은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신이 났고, 비가 오는 와중에도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안치환의 노래가 끝난 뒤 밤 10시가 다 되어서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이 무대 위에 올랐다. 시간은 늦었고, 비가 내리는 데도 사람들은 빠져나갈 생각을 안했다. 김 총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뒤이어 신영복 교수가 무대 위로 올랐다.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꽃다발을 건냈다.

기다리던 사람이 무대에 서자 객석에선 사진도 찍어대고, 수군거리며 신 교수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有朋而 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는 논어 첫 장 한 구절을 인용해 기쁜 마음을 표시했다.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자신이 퇴임 후에도 할 일을 열심히 할 것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성공회대의 교수들로 결성된 '더 숲 트리오(김창남 교수, 김진업 교수, 박경태 교수)'와 신 교수의 합작무대로 '상록수'를 불렀다.

관객들은 촛불을 들고 모두들 상록수를 따라 부르며 신 교수의 정년퇴임식 마지막 무대를 함께 마쳤다.

특별하게 하지만 다함께

▲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신영복 교수가 밝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준비된 의자가 부족하자 많은 참가자들이 바닥에 앉아서 퇴임식을 지켜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퇴임식은 기존의 논문발표나 지인들과의 자리가 아닌 일반인들과 다 함께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그리고 유명가수들의 노 개런티 공연과 지인들의 축사 그리고 빗물과 촛불까지도 함께하는 자리.

'좌파 대학'에 찾아와 무대에 선 굴지의 대기업 인사들과 여야 정치지도인들, 젊은 감성을 노래하는 가수와 우리시대의 참 소리꾼이라 불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것이다. 신 교수의 광범위한 인간적 관계와 사상적 깊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색다른 퇴임식을 본 박윤숙(46·서울특별시 양청구 목동)씨는 "평소 신영복 교수님을 좋아해 가족끼리 왔는데 정말 재미있었다"면서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스태프로 참가하게 된 석찬우(성공회대 사회과학부 06학번)군은 "아직 1학기 수업밖에 못 들어 봤는데 벌써 가신다니 너무 아쉽다"면서 "교수님의 수업은 다른 학교에서도 청강하러 오기 때문에 항상 강의실이 꽉 찬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날 행사를 총연출한 사람은 탁현민 다음기획 콘텐츠 팀장. 그는 지난 99년 신 교수의 조교 생활을 1년 동안 하기도 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새삼 선생님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알 수 있었다"면서 "정재계, 연예인들, 그 누구를 섭외해도 다 나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선생님께서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불편해 하셨다"면서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선생님께 이 자리를 헌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신 교수님을 은사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실천하며 살자는 다짐의 자리라는 데 퇴임식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다른 장소에서 피로연이 열렸다. 그곳에서는 지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와인과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초대권이 없어서 신 교수의 책을 받지 못한 분들께는 두산에서 제공하는 소주 '처음처럼'을 나눠주며 차별과 담이 없는 피로연을 즐겼다.

사람들은 시간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 삼삼오오 모여 우리시대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신 교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 위로 '여럿이 함께'라는 글씨가 쓰인 하얀 플래카드가 비에 젖은 채 펄럭이고 있었다.

▲ 신영복 교수 퇴임식에 참석한 1천여명이 기록영상물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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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교수가 청중들 사이에 앉아서 자신의 영상기록물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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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경계를 넘은, 우리의 은사"
현장서 만난 후배 교수들이 말하는 '신영복'

이날 퇴임 콘서트에는 신 교수의 선후배 학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신 교수는 어떤 존재였을까.

수염을 기른 채 웃는 얼굴로 행사장 뒷자리에 서서 공연을 지켜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든든한 분"이라고 말했다. 한 말씀 더 해달라고 물으니 되돌아오는 답변도 똑같다. "그냥 계신 게 든든한 분".

일찌감치 행사장에 나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박호성 서강대 교수는 신 교수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칸트가 말했다. 이론 없는 실천은 맹목적이고 실천없는 이론은 공허하다고. 신 선생님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신 분이다. 지행합일."

감색 개량한복을 입고 검은 색 가방을 든 채 행사장에 나타난 조희연 교수.

"얼마 전 월정사에 갔는 데 혜원 스님이 <나무야 나무야> 읽기 모임을 하는 것을 봤다. 신 선생의 사상적 영향력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민주-진보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철학적, 사상적 은사이다.

그 점이 위대하다. 진보에서만 통용되는 담론이 아니라 보수 진영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이 있고 감동을 주며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과제를 일깨워주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성공회대에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교수들이 많은 데 이들은 색채는 비슷하지만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라면서 "이들 사이에서 신 선생의 끌어당기고 안아주는 능력 때문에 우리 학교의 공동체적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원담 교수도 "우리는 스승이 없는 시대에 산다"면서 "신 선생은 우리가 형상할 수 있는 스승의 상을 보여 주시는 게 아니라, 제자와의 관계 속에서 생산적으로 스승의 상을 만들어가는 힘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동춘 교수(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는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동시에 지닌 분"이라면서 "이론이나 사상적으로 봤을 때 차고 완고한, 타협점이 없는 분명한 태도를 지녔고, 정반대의 입장이 아니라면 공격하기 보다는 두루두루 인정해주는 부드러움, 이 두 가지 이미지를 갖춘 분이다"라고 평했다.

김창진 교수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라는 러시아 소설이 있다"면서 "인간이 20년 동안 감옥이라는 용광로에서, 험한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자신을 단련시켜 세상의 소금과 밀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분"이라고 말했다. / 김병기

덧붙이는 글 | 윤태호 기자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1학년에 재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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