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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박물관 주출입공간. 지붕은 있으나 벽은 없고 실내도 아니고 야외도 아닌 이곳은 빛과 그림자가 서로 넘나들며 교감하는 초월적인 공간이다. 한국 고유의 공간인 마루에서 그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한다.
ⓒ 이종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엄청난 유물을 보고 문화적 상실감에 빠졌다. 이는 대만의 고궁박물관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우리 민족은 얼마나 한심한 역사를 가졌기에 그런 대작들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그때부터 서양문명에 대한 막연한 사대주의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내 나라 문화를 모르고 어찌 다른 문화만을 찬양하겠는가? 호기심반, 기대반 경복궁 옆 국립중앙 박물관을 홀로 찾은 적이 있었다. 물이 흐를 것 같은 선의 예술, 투박한 자연미… 조심스레 거닐었지만 내 가슴은 이미 쿵당쿵당 뛰고 있었다.

'아! 우리에게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중국과 일본과 다른 우리 고유한 문화가 있었어.'

그리고는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났고, 만나면 만날수록 느낌은 커지고 공부하면 할수록 감동은 배가되었다. 기어코 회사까지 그만두고 여행작가라는 직업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이렇게 박물관은 내 인생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8년의 대공사, 규모상 세계 6대 박물관으로 변모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개미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전시실에서 5천년간 이어온 우리 숨결을 만났고 그리고 그 감동을 마음껏 앵글에 담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이 맛이 좋듯이 훌륭한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대청마루

광복 60주년이다. 60년 세월 동안 용산은 미군이 주둔했던 지역이다. 그 장소에서 우리 문화의 정수가 집약된 박물관이 들어선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의미가 깊다. 마루 공간 사이로 남산의 자태가 슬며시 들어온다. 정신적 주권을 이제서야 찾았던 것이다.

국산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네모난 건물 형상은 성곽의 개념을 도입했다. 한눈에 봐도 한국인의 강인함과 웅혼함이 전해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직각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하면서 한국인의 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열린마당 공간으로 들어서면 한국인의 고요가 흐른다. 다소곳한 여인네가 대청마루 한 켠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것만 같다.

▲ 박물관의 출입구이자 휴식공간, 만남의 장인 으뜸홀
ⓒ 이종원
으뜸홀

마루에서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로비인 으뜸홀이 나온다. 출입구이자 휴식공간, 만남의 장이지만 기나긴 역사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유리지붕을 얹어 자연채광을 강조했고, 날이 어두워지면 아래에서 위로 조명을 비추어 주어 은은한 빛이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황토방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리지붕으로 덮여 있어 자연광이 들어온다. 아래쪽 조명을 받은 빛은 태양열 판처럼 생긴 반사판에 부딪혀 은은한 빛이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

▲ 5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의 길'
ⓒ 이종원
역사의 길

하늘을 찌를 듯한 으뜸홀을 지나면 '역사의 길'이 동선을 유도한다. 기나긴 돌벽을 스쳐 지나가면 5천년 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반구대 암각화 탁본과 경복궁 화단에 놓여 있는 팔부신중 조각이 좌우 벽에 걸려 있다.

전시실

15만여 점의 소장물을 갖추고 있는 상설전시실은 총 8100평,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역사의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진다. 특히 새 박물관은 설계에서 동선 처리에 신경을 써서 전시실에 들어서면 처음부터 끝까지 보아야 나갈 수 있는 동선몰이식이 아니라 하나의 전시실을 관람한 후 다음 장소를 주관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동선이 그리 길지 않아 관람중 언제든지 가운데 '역사의 길'로 나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박물관 정보화 시스템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 전시실마다 단말기가 있어 각종 유물정보를 설명하고 검색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역사관, 아시아관, 기증관, 어린이 박물관이 새로 신설되었으며 서예실, 불화실, 목칠공예실, 중국실, 일본실, 중앙아시아실, 발해실, 낙랑실도 독립전시실을 갖추게 되었다. 전시유물에 따라 고고, 역사, 기증, 미술1, 미술2, 아시아의 6개관으로 구성된다.

▲ 천장을 덮은 유리섬유는 유해한 광선을 차단하고 가시광선만 들어오게 했고 반사판을 설치하여 은은한 조명이 박물관을 비추게 했다.
ⓒ 이종원
최첨단 과학이 집약된 박물관

자연광과 인공광의 적절한 조화. '역사의 길' 천장도 반사판이 설치되어 있고, 천장을 덮은 유리섬유는 유해한 광선을 차단하고 가시광선만 들어오게 했다. 대기오염 감시시스템, 황사농도를 측정해 자동환기가 될 수 있도록 자동제어기기가 움직인다.
수장고도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 옮겼다. 지하는 환기가 어렵고 수해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상에 배치했고, 한강의 범람에도 침수가 되지 않도록 지반을 평균 4미터 정도 성토하여 안전성을 확보했다. 특히 유물안전을 위해 진도 6에도 끄덕 없을 정도로 방진장치가 갖추고 있으며 모든 공간을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인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 박물관 최고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
ⓒ 이종원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

역사의 길에서 끝을 장식한 것은 바로 고달사지 석등이다. 예전에 경복궁 뜰 가장 구석에 박혀 있어 이 유물을 보려면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화단 안쪽 깊숙이 들어가야 했고 여러 번 관리인의 호각소리를 듣고 쫓겨 나와야 했다.

한번은 하도 화가 나서 항의했다.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석등인데 이렇게 구석에 처박으면 보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차라리 화단 목책 근처에 세워 놓으면 들어가지도 않잖아요?"
"이해는 가지만 한 사람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도 들어갈 것 아닙니까? 제 입장이 난처해져요."
"사람들이 많이 봐야 이 유물이 소중한 것을 알지요?"

그런 고달사지 석등이 새 박물관에서는 '명동 1번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지붕돌이 폐사지에서 발견되어 새로 올려지지 않았던가? 연오랑 세오녀 전설 같은 이야기다.

가장 감동을 주는 곳은 사각의 지대석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쌍사자다. 우리나라 쌍사자는 거의가 서 있는 것이데 반해 이곳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좌우에서 앞발을 앞으로 내밀고 웅크리고 앉아 서로 마주보는 형상이고, 그 사이에 구름문양을 양각했다. 즉 사자의 등은 구름을 받치고, 구름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장고처럼 생긴 몸돌도 특이하다.

▲ 새 박물관 최고의 명품인 경천사지 10층석탑(국보 86호)
ⓒ 이종원
경천사지 10층석탑(국보 86호)

새 박물관의 최고 명품은 경천사지 10층 석탑일 것이다. 1384년에 건립된 탑은 우리 탑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대리석 석탑으로 1-3층 기단은 사방으로 돌출된 亞자형이며, 4-10층은 직사각형 옥개석을 올렸고, 탑신에는 부처와 보살, 꽃이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개성 근처 경기도 풍덕군 부소산 경천사에 세워졌던 이 탑은 일제 때 해체하여 일본으로 밀반출하여 탑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옮겨진 뒤 제대로 세워지지 못하고 방치되었다가 국내외 항의를 받아 1918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내로 다시 돌아왔지만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된 것을 1960년에 들어서서 당시 첨단 접착제라 생각한 시멘트로 훼손 부위를 땜질한 후 경복궁 뜰에 외롭게 세워졌다.

90년대 들어 환경오염과 비둘기 배설물에 의해 훼손이 더욱 심해졌고 탑이 무너질 위험까지 안은 채 1995년 다시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밀반출과 훼손 그리고 10년간의 대수술을 겪었다. 현대사의 질곡을 간직한 탑은 기어코 국립박물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탑 옆에 에스켈레이터가 설치되어 천천히 올라가면서 탑을 감상할 수 있으며 2층, 3층에서도 탑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가 전시되어 있는 도자공예실
ⓒ 이종원
3층 도자공예실은 우리나라 고려청자, 백자, 분청사기의 명품들이 몰려 있었다. 전박물관 때는 정면만 볼 수 있어 무척 아쉬웠는데 이 곳은 사방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박물관에서 준비한 개인휴대단말기와 MP3 플레이어 단말기를 대여 받아 작품 앞에 서면 전시품 위에 설치된 적외선 발생장치가 작동되어 관람객에게 화상과 음성으로 전시물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첨단 안내시스템이다. 시간이 없는 관광객을 위한 명품 100선코스, 수학여행 100선코스, 어린이 안내코스 등 12종의 추천코스가 있다.

진열장도 온도, 습도, 조도가 자동 조절되도록 특수 제작되었으며 전시품이 손실되지 않도록 국내 처음으로 광섬유 조명을 사용했다. 열을 배제하고 빛만 들어가도록 자외선을 거르는 특수필터가 장착되어 있다. 바로 우리 기술이란다.

새 박물관에서 가장 멋진 변신이 유물이름을 우리말로 바꿔 놓은 것이다. 예전엔 '은제도금타출표현병'이라는 이름표를 가지고 있어 이것이 무슨 용도의 자기인지 헷갈렸는데 지금은 '넝쿨무늬 도드라지게 새긴 병'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이 유물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일을 했다.

▲ 컴컴한 방에 반가사유상만이 홀로 앉아 금빛을 발산하고 있다. 고요함 속에 파도가 꿈틀거리듯 생동감이 넘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표정이지만 가장 격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 이종원
내 인생의 획기적 변환의 계기가 되었던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 어린이 박물관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체험식으로 꾸며졌다
ⓒ 이종원
어린이 박물관

우리 나라 최고의 시설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체험식으로 꾸며졌다. 놀면서 자연스레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빗살무늬토기 만들기, 암각화에서 동물 찾아보기, 말 장신구 달기, 옛집 만들어보기, 탁본 뜨기, 온돌체험 등 최고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이다. 민요 따라부르기, 향가 따라부르기 등 노래방 체험 시설까지 갖추었다. 아이들이 흥미를 위해 원색의 실로 베틀을 짜게 하여 자연스레 그 원리를 이해하도록 했다.

▲ 805석 규모의 극장 '용'에서는 발레와 클래식, 해외초청공연, 현대무용, 국악공연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 이종원
그밖에 805석 규모의 극장 '용'에서는 발레와 클래식, 해외초청공연, 현대무용, 국악공연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개관공연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발레인 '심청'을 공연한다. 뮤지엄숍을 운영하여 소장유물 및 전통이미지를 활용한 기념품을 판매한다. 식당과 카페테리아등의 편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야외에는 거대한 연못인 거울 못과 석조물 정원, 종각, 미르폭포, 여울마당이 있다.

 

덧붙이는 글 | 개관일: 2005년 10월 28일 
입장료: 무료 (10/28-12/31) 월요일 휴관 
교통: 국철,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5분거리 (2번출구) 
문의 전화: 02)2077-9000 
홈페이지: www.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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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기자는 여행동호회 '모놀과 정수'(http://www.monol.co.kr) 운영자이며, 여행 서적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가림출판사)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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