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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큰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베이징 지하철 역의 한 백화점 광고.
ⓒ 김대오
베이징 밤문화의 중심지인 싼리툰(三里屯) 거리. 맥주잔을 기울이며 하루 일과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젊은이들로 밤 깊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싼리툰의 호프집에서 만난 리(李)양. 리양은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회초년생이다. 한 달 월급이 3500위엔(40만원) 정도 되는데 매달 방값 600위엔을 내고, 생활비를 쓰고, 맥주 한두 잔을 즐기면 한 달 월급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베이징 시민의 평균 월급과 대졸자 초봉이 2000위엔 정도이니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리양은 "늘 빈손으로 새로운 한 달을 맞아야 한다"고 신세타령을 늘어놨다.

왕징 부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산동(山東) 출신의 장(張, 36)씨. 장씨는 12시간을 일하고 일당 25위엔을 받는다. 야근을 해도 한 달에 1000위엔밖에 안 되는 수입이지만 숙사비와 식비, 그리고 담뱃값을 제외한 700위엔을 매달 고향으로 송금한다. 왕징의 한국인 가정에서 일하는 지린(吉林) 출신의 여우(油, 40)씨도 한 달 900위엔의 월급을 받는데 숙사비 150위엔과 용돈 100위엔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고향 가족들에게 송금한다고 한다.

위의 몇 사례는 중국 젊은이들의 '극과 극' 생활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위에광주, 4.2.1운동의 '샤오황띠들'

리양처럼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달 월급을 그 달에 모두 소비하는 30세 전후의 젊은이들을 중국에서는 '위에광주(月光族, 월급을 몽땅 다 쓰는 족)'라고 부른다. 이들 위에광주의 소비문화는 건설현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하층 노동자들의 삶과는 극과극의 대조를 이룬다.

자본주의화한 중국의 인스턴트 세대인 위에광주는 소비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중국사회의 일면으로 근검절약이 몸에 밴 기성세대와 또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살아가는 대다수 하층노동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싼리툰의 한 호프집의 모습이다. 베이징의 많은 젊은이들이 밤늦도록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 김대오
90년대 후반 생겨난 '위에광주'란 말은 풍족한 환경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은 중국 젊은이들이 인스턴트 문화의 편리와 자본주의화된 소비 패턴을 지니고 자기중심의 소비에만 빠져 있음을 풍자한 말이다.

3월 24일 신화서(新華社)가 도시 젊은이 6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위에광주족은 주로 IT, 금융, 출판, 언론, 예술분야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며, 이들의 주 소비품목은 복장, 화장품, 외식, 술, 여행 순으로 나타났다.

란저우(蘭州)대학의 황사오화(黃少華) 교수는 위에광주를 일컬어 "유행을 좇는 도시 젊은이들의 폐단이며 중국사회가 급격히 자본주의화 하는 과정에서 만연된 소비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1973년부터 본격화된 '한 자녀 낳기(獨生子女)' 세대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4.2.1(4명의 조부모, 2명의 부모, 1명의 아이) 시스템' 아래에서 6개의 용돈주머니를 갖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서 '샤오황띠(小皇帝, 작은황제)'로 군림해왔다. 유아기부터 이렇게 자라다 보니 자연히 절약보다는 소비문화에 익숙해져왔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한참 동안 위에광주군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급속한 발전으로 소비문화가 가세하면서 핸드폰, MP3, 노트북, 화장품, 의류 등 거리 곳곳에 산재한 물질적 유혹들이 이들을 위에광주 생활에 눌러앉게 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의 '위에광주 구출작전'

▲ '위에광주 탈출법'을 시리즈로 다루고 있는 <신징바오(新京報)> 4월 6일자.
ⓒ 김대오
'위에광주'와 같은 젊은이들의 소비문화가 사회문제로 인식되면서 <신화서(新華社)>나 <신징바오(新京報)> 등 언론에서는 '위에광주 탈출법'을 시리즈 기사로 다루면서 젊은이들에게 단계적인 재테크 노하우를 소개하기도 한다.

지난 4월 6일 <신징바오>는 '위에광주 시리즈(2)'를 통해 소득에 따른 재테크 유형을 소개했다. '월소득의 10~20%를 저축하자' '월급에 따른 품목별 적정 소비금액' '젊어서 낭비는 가난한 노년을 부른다' 등의 제하 기사들을 통해 '위에광주 구출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싼리뚠에서 만난 시옹(熊)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달 월급은 얼마이고, 어떻게 소비하나?"
"월급은 4000위엔이다. 주택임대료 800위엔, 식비 600위엔, 차비 400위엔, 인터넷 및 핸드폰비용 200위엔, 헬스/영어학원 1000위엔, 기타 생활 잡비 1000위엔을 쓰고, 나머지 1000위엔은 나도 출처를 알 수 없이 어딘가로 사라진다."

"매달 월급의 10-20%를 저축할 생각은 안 해 봤나?"
"매달 500위엔씩 저축해도 1년이면 6000위엔밖에 더 되나? 또 은행 예금 금리도 2% 정도 밖에 안 되고 다른 투자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활방식 아닌가."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치엔성치엔(錢生錢, 돈이 돈을 번다)'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권력과 꽌시(關系, 사회적 관계) 혹은 요행이 없으면 돈을 벌기 힘들다는 현실인식이 팽배해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위에광주에게 내일이 올까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생활을 하는 중국젊은이들 중 위에광주의 비율은 약 30%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부모님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이라는 날개를 갖기는 했지만 그 날개가 아직 여물지 못해 스스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모에게 기대려는 의존성을 보인다.

이들도 결혼을 하게 되면 네 명의 노모를 공양해야 하고, 자녀도 돌봐야 한다. 이들이 독생자녀들이기 때문에 4명의 노모가 생기는 것이다(중국에서는 두 명 이상을 낳으면 불이익을 받는다). 또 자녀교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위에광주족들에게 내일은 매우 불투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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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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