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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萬里長城)’. 중국 하면 먼저 ‘만리장성’이 떠오를 정도로 장성은 중국의 상징이자 중국인의 마음속에 긍지와 자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행진가>도 “노예가 되기 싫은 자 일어나서 피땀으로 새로운 우리의 만리장성을 쌓아가자” 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 빠다링장성의 설경이다. 베이징근교에서는 가장 크고 웅장한 맛을 느끼게 하는 빠다링장성이다.
ⓒ 김대오
시간적 길이 2400여년, 공간적 넓이로는 10만 리에 달하는 장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류건축사의 기적이자,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를 이어 거대한 역작을 만들어가는 중국의 정신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일찍이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고 말했다. ‘장성’에 대장부로서 지녀야 할 역사의식과 호연지기, 온갖 고난을 극복해내는 지혜와 노력 그리고 도전정신이 녹아있다는 의미다.

진시황이 장성을 연결하고 장성의 안을 곧 ‘진(Chin)의 영토(Area)’라 칭했으니 오늘날 중국을 ‘China’라고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만리장성 덕분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과거의 그 만리장성이 아니다.

장성의 원래 길이는 10만 리였다. 그러나 이중 9만 리는 20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사라진 상태. 지금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건 명나라 때 축조된 6300km 정도의 장성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만리장성 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그나마 남아있는 만리장성도 40%(2500km) 정도만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60%(3800km)는 자연풍화나 무분별 개발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돼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만리장성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근거 없는 기우만은 아닌 듯하다.

민초들의 피땀으로 10만 리를 쌓아올리다

▲ 지엔커우장성의 무너진 구간이다. 심하게 붕괴된 지엔커우장성은 등반이 어려운 상태이며 관리도 안 되고 있는 상태이다.
ⓒ 김대오
중국장성학회 동훼이훼이(董輝會) 비서장에 따르면 장성은 춘추전국시대 이후 총 20개의 왕조를 통해 축조 및 보수되었는데 춘추전국시대 2만 리, 진시황 때 1만 리, 한대 2만 리, 서진, 북위, 동위, 북제, 북주, 수, 송, 요, 금대까지 4만 리, 명대 약 1.46만 리가 쌓아졌다.

이에 동원된 인적, 물적 자원은 그야말로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는데 진시황에 의해 추진된 2차에 걸친 장성 축조에 동원된 인력만 군인 30만, 민간인 5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또 북제 때는 10차에 거쳐 180만 명, 수나라 때는 7차에 거쳐 140만 명이 동원되었다. 명나라 때에는 200여년에 걸쳐 14차례의 장성 축조가 있었으니 그 수를 추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산정과 절벽을 잇는 험난한 장성공사에 동원된 그 수많은 민초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피땀으로 거대한 10만 리 장성을 쌓아 올렸다. 혹독한 노동을 못 이겨 달아나는 이는 산 채로 장성아래 쌓이고, 계속 무너지는 공사구역에서는 점을 쳐서 길일(吉日)을 택한 뒤 그 날 태어난 아이 수백명을 돌 대신 쌓기도 했다는 전설까지 전해져 오니 장성에 서려 있는 절대권력의 횡포와 민초들의 수난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실제로 중국의 4대 전설 중의 하나인 <맹강녀(孟姜女) 설화>는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진나라 말(B.C 209년)에 장성공사에 동원되었던 허난(河南)성 농민 진승과 오광(중국 최초의 농민 반란이라 불리는 진승오광의 난 주모자)은 폭우로 강물이 불어 정해진 기일 안에 어양(漁陽)에 도착할 수 없게 되자 “어차피 참형(허리를 잘라 죽이는 형벌)에 처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민란을 일으켜 결국 진의 멸망을 가져왔다. 장성 축조가 얼마나 삼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많은 민중의 희생으로 힘들게 쌓여진 장성이 90% 가량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리장성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에 의한 만리장성의 수난

장성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장성 6300km는 자연과 주민, 정부에 의해 파괴되어 왔다.

자연에 의해 훼손된 게 197곳인데 자연붕괴 165곳, 홍수에 의한 붕괴 13곳, 모래에 매몰된 곳 16곳, 지진, 풍화작용에 의한 붕괴 3곳 등이다.

▲ 쓰마타이의 산정 구간인데 성벽은 무너지고 축대와 봉화대만 남아 있다.
ⓒ 김대오
더 심각한 것은 주민들의 무지에 의한 훼손인데 총 151곳에 달한다. 성벽의 벽돌을 빼 간 곳이 140곳, 성벽을 허물고 농사를 짓는 곳이 6곳, 성벽을 주택과 돈사(豚舍) 울타리, 무덤으로 훼손한 곳이 4곳, 목적이 불분명한 훼손이 3곳이다. 장성의 돌과 벽돌로 집을 지으면 복과 행운이 온다는 잘못된 믿음이 장성의 훼손을 부추긴 것이다.

정부에 의한 훼손도 32곳이나 된다. 댐 건설에 의해 수몰된 곳 12곳, 도로공사에 훼손된 것 17곳, 건축시공을 위한 훼손 3곳이었다.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장성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수난을 당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밖에도 특정 기업에 의한 훼손이 4곳,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때 파손된 게 11곳, 중일전쟁 등 전쟁에 의한 파괴가 9곳이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장성의 성벽이 그나마 완전하게 보전된 것이 4천 리 정도로 전체의 1/3이고, 나머지 1/3은 심하게 훼손 또는 붕괴되어 폐허가 되었고 1/3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니 ‘장성’이라는 ‘상처 입은 용’은 지금 극도로 지쳐 움직일 기력도 없이 숨만 헐떡이고 있는 셈이다.

장성의 심각한 훼손은 베이징 근교의 장성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베이징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로 들리는 빠다링(八達岭)과 무톈위(慕田峪) 장성은 명대에 축조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최근 보수된 것이어서 진정한 명대의 장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빠다링장성 입구에서 왼쪽으로 끝까지 오르면 더 이상 갈 수 없게 막은 곳에서 무너진 장성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빠다링의 모습일 것이다. 빠다링 바로 앞에 있는 쥐용관(居庸關) 장성도 주변에 흩어진 가늘고 희미해진 돌무덤들이 당시에 쌓여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무톈위 장성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지엔커우(箭口) 장성으로 이어지는데 그곳은 훼손된 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입장료를 받거나 관리하는 사람도 전혀 없이 근방의 주민들이나 장성마니아들의 발걸음만이 가끔 닿을 뿐이다. 최근 중국정부는 이렇게 개방되지 않은 장성에 오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아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이다.

▲ 미개발지구로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된 쓰마타이장성의 13망루 너머의 모습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독수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많은 기암괴석이 장성의 멋을 더해 준다.
ⓒ 김대오
교통편이 불편하여 한국관광객은 잘 찾지 않는 쓰마타이(司馬臺) 장성은 베이징근교의 장성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장성다운 멋과 맛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만력 5년(1577년)’이라고 음각된 수많은 벽돌들에서 생생한 역사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존되고 훼손된 다양한 형태의 장성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험준한 산정을 잇고 있기 때문에 독소리, 거북이, 코끼리 등의 모양을 한 기암괴석과 발아래 펼쳐진 원앙호(鴛鴦湖)와 어우러지는 경관도 일품이다. 물론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는 13망루 이상은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있어서 아쉽지만 쓰마타이 서쪽으로는 진산링(金山岭), 구베이커우(古北口) 장성이 이어져있어 종주가 가능하다.

장성이 제대로 보존됐다면 달에서도 보이지 않았을까

▲ 가파르면서도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무톈위장성의 모습이다.
ⓒ 김대오
고비사막에 우뚝 서서 말을 타고 달려드는 흉노족을 무력화시키며 이민족 문화의 침입을 막아 중원의 경제와 문화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위용, 비단길로 통하는 교역의 전진기지로서의 화려했던 자태는 이미 긴 역사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해도 가장 방대한 군사시설이자 인류건축사의 기적으로 불리는 자존심 만큼은 지켜가야 할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쓰마타이에서 만난 한 영국인은 자신을 장성사랑회 회원이라고 소개하며 “장성은 내 스승이자 또 삶의 원동력이고 목표인데 이렇게 자꾸 사라지고 훼손되어 간다”며 안타까워하였다.

한 때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만리장성이지만 2003년 10월 선저우(神舟)5호를 타고 우주를 비행했던 양리웨이(楊利偉)는 “달에서 장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해 장성의 위용을 무색하게 한 바 있다. 만약 10만 리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면, 아니 1만 리라도 제대로 남아있다면 달에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장성학회의 조사가 있을 때마다 장성의 길이는 짧아지고 있다. 철옹성 같은 개발 논리가 장성을 휘감고 있는 지금의 중국에 지하의 마오쩌둥은 생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되풀이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不愛長城非好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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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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