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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사드 요원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인 두 명이 불법적으로 뉴질랜드 여권을 입수하려 한 혐의로 뉴질랜드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 뉴질랜드 정부는 이스라엘 정부에게 공식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면서 고위급 수준에서의 외교적 접촉 중단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외교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7월 28일 현재까지 답변을 거부하고 있어, 이 스파이 사건은 뉴질랜드와 이스라엘간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양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두 명의 이스라엘인은 우리엘 켈먼(31)과 엘리 카라(51). 이들은 올해 3월, 휠체어 신세를 지는 뇌성마비 환자의 이름을 도용해 신청한 뉴질랜드 여권을 입수하려다가 이를 미리 감지하고 작전을 펼친 뉴질랜드 경찰 당국에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 7월 15일 뉴질랜드 고등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인물로 여겨지는 다른 이스라엘인 두 명은 경찰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뇌성마비 환자의 이름으로 여권을 신청했던 실제 장본인인 제브 바르칸(36)과 이 세 사람을 배후에서 도와준 것으로 여겨지는 토니 레스닉(35).

현재 뉴질랜드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바르칸은 이스라엘의 전직 외교관으로, 뉴질랜드 여권을 취득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웃에 사는 30대 뇌성마비 환자의 출생신고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다가 지난 7월 24일에야 언론에 그 신원이 공개된 또 다른 이스라엘인 토니 레스닉은 오클랜드 유태인 협회의 회원이었으며 다년간 오클랜드 지역 세인트 존 구급대의 의료요원으로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역시 켈먼과 카라가 체포된 직후 바로 뉴질랜드를 출국했다.

그런데 이름을 도용당한 뇌성마비 환자 역시 세인트 존 구급대의 정규적인 도움을 받아 온 회원이었음이 드러나면서, 뉴질랜드 정보 당국은 이번 사건이 단순 여권사취 사건이 아니라 모사드 요원들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가 '계획된 범죄'로 보는 이유는 모사드 요원의 경우 항상 신분 노출의 위험이 노사리고 있어 위조여권 보다는 신원이 확실한 진짜 여권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권을 유조하려 했던 당사자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해외여행의 기회가 적은 뇌성마비 환자라는 점도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체포된 켈먼과 카라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정보 당국이 그들을 모사드 요원으로 단정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심증 말고도 통신 기록 조회 등을 통해 그들이 모사드 요원임을 확증하는 증거를 이미 확보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질랜드 수상, 공식 사과와 해명 요구

이 때문에 헬렌 클락 뉴질랜드 수상은 두 사람이 체포되었을 당시, 호주의 캔버라에 공관을 두고 있는 호주 및 뉴질랜드 주재 이스라엘 대리 대사를 즉각 소환하여 이 문제를 이스라엘 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아무런 반응 없이 3개월여 동안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15일, 문제의 이스라엘인 두 명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짤막한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다. 헬렌 클락 수상은, 공식적인 사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가 된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해 준 것도 아닌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성의 없는 태도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스라엘 정보 요원들이 저지른 이번 사건을 전혀 묵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주권과 국제법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비난 성명 발표와 함께 헬렌 클락 수상은 고위급 수준에서의 양국간 상호 방문 금지를 포함하는 외교적 제재 조치를 즉각 단행했다. 이에 따라 양국 외무부간 접촉이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스라엘 정부 관리들이 뉴질랜드에 입국시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헬렌 클락 수상의 초청으로 오는 8월에 뉴질랜드를 방문할 예정이었던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의 초청 방문도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 정부의 이러한 강경한 입장이 전해지자,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사건의 전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요 일간지 중의 하나인 <하레츠(Haaretz)> 지는, 이스라엘 외무부는 빠른 시일 내에 뉴질랜드와의 관계 정상화를 희망하고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과 모사드가 외무부에 이번 사건에 대해 일체의 직접적인 논평을 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이처럼 '나 몰라라'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뉴질랜드 정부의 친팔레스타인 성향에 대한 반감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필 고프 뉴질랜드 외무부 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그는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도 만났는데, 당시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이를 두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몹시 언짢게 생각했다는 후문이다. 호주 및 뉴질랜드 주재 이스라엘 대리 대사인 오나 사지브 역시 <뉴질랜드 헤럴드> 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뉴질랜드 정부의 친팔레스타인 성향을 지적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인 호주 정부와는 달리 팔레스타인의 견해를 좀 더 존중하는 뉴질랜드 정부를 보고는 두 나라 사이의 입장 차이를 종종 느끼곤 한다."

헬렌 클락 수상과 뉴질랜드 정부의 이러한 입장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 이슬람 저항 운동 단체인 하마스가 이를 환영하고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해, 이스라엘 정부가 느끼고 있는 뉴질랜드 정부에 대한 반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하마스 대변인은 7월 19일 언론에 배포한 성명서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번 스파이 사건에 대해 뉴질랜드 정부가 취하고 있는 단호한 입장을 매우 환영하며 치하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외국 땅에서 첩보 활동을 펼치기 위하여 위법까지 불사하는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는 뉴질랜드를 그 본보기로 삼아 따라야 할 것이다."

둘째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관련자들이 실제로 모사드 요원이어서,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그들의 임무와 관련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모사드의 전 책임자였던 대니 야톰이 예루살렘에 급파된 <뉴질랜드 헤럴드> 기자에게 한 말은 그러한 추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모사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 조직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주 뛰어난 정보원도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비밀 정보를 수집하는 그들의 임무 때문에 그들이 한 일의 대부분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많은 정보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정보 조직으로 평가받았던 모사드가 이제는 예전의 명성을 많이 잃었으며, 유능한 정보인력도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사드, 세계 최고의 정보 조직에서 쇠락의 길로

1951년에 설립되어 한 때 세계 최고의 정보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모사드가 이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모사드 요원들의 잇단 실책과 내부 정보 누출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을 수 있는 사건이 지난 1997년 캐나다 여권을 소지하고 요르단에 잠입한 두 명의 모사드 요원이 하마스 지도자 암살에 실패하고 체포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체포된 두 명의 모사드 요원과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이스라엘에서 투옥중이었던 하마스 창립자인 야신을 내주어야 했다. 또한 캐나다 여권을 첩보 활동에 사용한 사실에 분노한 캐나다 정부가 이스라엘 주재 캐나다 대사를 철수하는 조치를 취함에 따라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외에도 1999년 두 명의 모사드 요원이 키프러스(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분쟁지역)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군사지역을 정찰하다가 발각되어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2000년에는 모사드 요원 한 명이 첩보 활동과 여러 차례 위조 신분증을 사용한 혐의로 기소되어 스위스 법정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특히 올해 2월에는 현재 모사드의 책임자인 메이어 다간의 차량이 부서지고 그의 핸드폰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에 모사드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정보 요원들의 실책과 모사드의 비밀 첩보 활동이 누수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들이 다수 포착되고 있다.

정보 전문가들은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도 모사드 요원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러한 일련의 실책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적 자존심이 훼손되고 모사드의 첩보 활동이 공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번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침묵을 지키면서 뉴질랜드 정부와 물밑 교섭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1985년 뉴질랜드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당시 일 처리 방식을 헬렌 클락 수상도 참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명 '워리어 폭파 사건(The bombing of the Warrior)'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두 명의 프랑스 정보 요원이 오클랜드 항구에 정박 중인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폭파해서 배를 침몰시키고 1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당시 그린피스는 남태평양의 한 산호초 섬에서 벌어질 예정이었던 프랑스의 핵실험에 반대하기 위한 해상 시위를 계획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두 명의 프랑스 정보 요원은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프랑스 정부의 끈질긴 물밑 교섭으로 복역 1년도 안 되어 남태평양의 한 프랑스령 산호초 섬에 있는 군사 시설로 이감되었고, 이어서 2년 만에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헬렌 클락 수상이 이번 사건의 경우에 이스라엘 정부와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서, 양국간 외교 갈등이 예상외로 오래 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헬렌 클락 수상의 이러한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에 대해서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의 중심가에 있는 한 유태인 묘지의 비석을 깨뜨리고 묘소 앞에 나치 문양을 그려 놓는 등 반유태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적 쇼인가, 정당한 외교적 대응인가

다른 한편으로는 헬렌 클락 수상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과잉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월간 시사 잡지 <더 리뷰(The Review)>의 부편집자인 테드 랩킨이 <뉴질랜드 헤럴드> 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헬렌 클락 수상이 이번 사건에 정도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최근 노동당이 야당인 국민당에 지지도에서 뒤지고 있고, 국민당 당수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자신의 인기도를 만회해 보려는 정치적 쇼라는 것.

"위협에 처한 정치인은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만한 것을 찾게 된다. 영화 <웩 더 독(Wag the Dog)>은 한 편의 풍자이지만, 모든 성공적인 풍자의 중심에는 아주 핵심적인 진실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는 법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것은 빵과 콜로세움이었다. 지금 뉴질랜드에서 스파이 사건, 그것도 이스라엘 스파이 사건보다 더 좋은 건이 무엇이 있겠는가?”

랩킨은 이렇게 생각하는 증거로, 이번 사건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올해 3월에 태국에서 발생했던 뉴질랜드 위조 여권 사건을 거론하고 있다. 태국 경찰 당국은 여권위조범 일당을 체포하고 그들이 암시장에서 거래하던 23개의 뉴질랜드 위조 여권을 압수했는데, 이 여권들이 알 케이다와 연관된 테러리스트들이 유럽에서 한때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는 외무부 대변인의 발표를 통해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이를 부인했다.

랩킨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태국에서의 뉴질랜드 여권 위조사건과 비교해볼 때 이번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의 사건은 매우 경미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헬렌 클락 수상이 오히려 이번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의 사건을 더 문제삼고 있는 것은, 국가 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값싼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강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제스처라는 것이다.

한편 현재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전 모사드 요원 역시 <뉴질랜드 헤럴드> 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모사드 요원들은 단지 뉴질랜드 여권 취득이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뉴질랜드 여권을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은 뉴질랜드 여권이 세계적으로 신뢰받고 또한 쉽게 입국이 허용되는 매우 공인된 여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뉴질랜드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중동의 국제기관이나 NGO에서 의심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또한 여권에 기재된 실제 인물의 배경에 따라 영국의 영주권을 얻을 수도 있고 그리고 나서는 유럽 연합의 여권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캔버라에 소재한 호주 국립 대학교의 국제관계 및 외교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맥킨리 박사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모사드 요원이 여권 획득 말고도 실제적으로 뉴질랜드 내에서 첩보 활동을 펼쳤을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즉, 비교적 많은 수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호주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동조하는 자들도 다수 있어서 이들을 감시하는 모사드 요원들이 감시 및 첩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감시망을 피해 무슬림들이 뉴질랜드로 넘어와 은신하고 있는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뉴질랜드 내에서 은신하며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모사드 요원들도 뉴질랜드로 잠입해 활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며, 이번 사건은 그런 가운데 모사드 요원들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게 마이클 맥킨리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견해와 추측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굳게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을 둘러싸고 헬렌 클락 수상이 보여주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강경한 외교적 대응이 과연 정치적 쇼인지, 아니면 국가의 주권 수호를 위한 지도자로서의 정당한 외교적 대응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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