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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세계화에 따라 날마다 새로운 외래 문화가 들어오고 있다. 그중 일본 대중 문화는 역사적인 적개심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짧다. 유독 문학이라는 문화 갈래에서 보면 다른 갈래보다 그 전파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일본 문학작품들을 누가 그리 권하지도 않았으며, 나 역시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본 작품에 대해선 청맹과니 같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일본문학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 <설국>이란 책을 읽어 보았다.

눈만 오면 교통편이 끊기는 온천마을(설국이라 표현됨)에 시마무라는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다. 첫번째 여행에서는 기생 고마코를 만나 연정을 쌓게 되고, 두번째 고마코를 만나기 위한 여행에서는 고마코의 옛 남자(애인)와 요코를 알게 된다.

기마무라는 기차 안에서 고마코의 옛 애인을 정성껏 간호하는 요코의 모습을 보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게 된다.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화려한 정원의 앵두알 같은 고마코와, 후에 죽어버린 애인에게까지 헌신을 다하는 요코의 순정적 모습에 시마무라는 갈등을 일으킨다.

그후 세번째로 찾은 설국에서 요코는 불이 난 건물에서 낙사하고 자신과는 다르게 순정적인 그녀에게 냉소를 품었던 고마코는 시체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곳에 가정을 갖고서도 두 여자에게 애정을 구원했던 남자, 시마무라가 서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본의 그야말로 눈으로 둘러싸인 설국이다. 좀더 구체적인 배경은 고마코가 기생으로 일하고 있는 여관과 기차역으로 나뉘게 된다.

영화 <철도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코 낯설지 않을 설경과, 기차역에서 우동 국물의 뒷맛 같은 깔끔하고 상큼한 분위기에 심취했었다. 소위 대박난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의 뮤직비디오에서의 배경도 우리에게 가슴한 구석이 편안히 좌정(坐正)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와는 다른 정서인 '기생'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이 작품은 한껏 이국적인 풍광을 더해준다. 대부분의 오늘날 사람들이 기생이라 하면 요즘의 창녀란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선 환락가가 아닌 조용한 시골 여관이 무대이다.

벌써 이만해도 머릿 속에 그려지는 설국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물론 나 역시 감정의 동요를 느꼈으며 '동화 속의 나라가 따로 어디있을까? 아이들만의 동화가 아닌 어른들의 동화라고 억지를 부린다 해도 좋겠다'라고 느꼈다.

주제는 아이들의 동화에서 나오는 일종의 교훈이 아닌 사랑과 인생의 환멸이라지만 그것도 어떤 기법으로 색을 입히냐에 따라 어른들 특히 여성분들이 소설 막판에 보면 가증스러워할 지도 모를 시마무라를 보자.

유부남이면서 휴가를 이용해 온천마을로 와 기생과 즐기고, 순정의 상징인 백합꽃보다 하얗다는 순정적 여인인 요코를 탐내기도 한다. 소설이 씌여진 시기가 오래전이어서 그리 반향이 크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소설에서 시마무라는 도쿄에 두고온 가족을 속박이라고 볼 때 더없이 자유로워진 인간일 뿐이다.

배경만이 아니다. 앵두라 표현했던 고마코는 마치 홍색(紅色)을 더 짙게하려는 듯 시마무라의 사랑을 빨아들이고만 싶다. 복잡한 세상의 번뇌란 찾아볼 수 없는 설국에서 붉은 앵두와 자유인은 그렇게 각자의 색을 진하게 함으로써 더욱더 순정적이어 질 뿐이다. 거기에 애인에게 미사구가 필요 없을 정도의 순정을 바치는 요코라는 캐릭터는 그냥 그렇게, 설국이란 이미지에 맞게, 어떤 해석이나 난해한 분석이 필요없게... 그렇게 작품을 순정이란 결론으로 치달아 오르게 해 준다.

결국 나 역시 줄곧 책을 읽으면서 내가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봤으면 했고 설국이란 배경 자체의 맑은 이지감에 취해, 그렇게 책장을 덮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설국'을 읽은 후의 독후감입니다. 기사로 쓰기에 독후감이란 자체가 궁색한 것 같네요. 제 못난 글솜씨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민음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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