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왼쪽부터 배우 안성기, 박중훈, 안미나, 이준익 감독. ⓒ 이선필

 
제작자로, 기획자로, 그리고 감독으로 이준익의 행보는 한국 대중영화의 큰 맥 중 하나다. 해외 주요 영화계와 달리 유독 창작자의 조로현상(빠른 은퇴)이 심한 국내 영화계에서 그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역이며, 대중영화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소통해 온 영화인이다. 그런 그가 말대로 벌써 데뷔 30년을 맞이했다.
 
이준익 감독을 춘천영화제가 소환했다. 10회를 맞아 운영위원장 등 조직과 사무국 인원의 대거 변화를 꾀한 직후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춘천영화제는 '클로즈업'이란 섹션을 신설했고, 첫 주인공으로 이준익 감독을 모셨다. 그 부름에 응답한 감독, 그리고 영화 나이 30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배우들이 9일, 10일 이틀간 춘천시를 찾았다. 그 마지막 상영일이던 10일 오후 <라디오스타> 주역들을 춘천시 메가박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감동을 나누다

이날 행사가 특별했던 이유는 이준익 감독이 애정하는 작품의 상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 안성기가 모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섰고, 박중훈과 안미나(당시 활동명 한여운) 등 주역들이 감독과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자 시절 <라디오스타> 상영이 끝나고 현장에서 1분간 잔잔한 박수가 이어지던 풍경이 있었다"고 회상한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말처럼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진심 어린 질문과 애정을 드러내며 주역들을 맞았다.
 
현장에선 영화 <라디오스타>가 한물간 스타 가수 최곤(박중훈)과 라디오 피디 강석영(최정윤)간 로맨스물로 기획됐다가 이준익 감독의 주장으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간 브로맨스물이 된 사연부터 다양한 비하인드가 공개됐다. 외지로 취급받던 영월 지역 중개소에서 주민들의 고충과 애환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게 되는 이야기는 개봉 당시엔 약 150만 관객 정도 동원하며 흥행에 아쉬움을 남겼지만, 배우들이 주연상을 받고 해외 영화제에서도 꾸준히 회자되는 사랑스러운 영화로 남아 있다.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선필


이날 객석에선 영화 주요 장면 중 동강 및 서울 도심을 내려다 본 항공 촬영 일화를 묻는 말이 나왔다. "(영화가 나온 지) 16년간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았다. 설명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준익 감독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영화에도 나오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비롯해 그의 노래를 경배하고 싶었다며 이 감독은 드론 촬영 기술이 없던 당시 헬리콥터를 빌려 찍은 것이라 설명했다. 주어진 예산을 절대 넘기지 않는 걸로 유명하던 이준익 감독 입장에선 나름 과감한 결정이었던 것.
 
배우 박중훈의 노래 연습 사연도 공개됐다. 1988년도 가수왕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당시 크게 인기였던 실제 노래와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어야 했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던 것. "3, 4개월 촬영하는 동안 매일 아침 노래를 들었고 휴대폰도 정지시킨 채 일상 대화는 거의 하지 않은 채 연습만 했다"던 박중훈은 "(배우로서) 이런 히트곡이 있다는 게 아직도 꿈같다"고 말했다.
 
연기란 무엇인지 묻는 말에 안성기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드는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게 연기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잘 해냈을 땐 뿌듯하고, 못했을 땐 엄청 욕을 먹는 것"이라 말해 객석에서 폭소가 나오기도 했다. 혈액암 투병 중임에도 춘천까지 배우 박중훈과 동행한 그를 향해 관객들은 발언 때마다 박수를 보내며 환대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성 배우들 사이에선 오디션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김양의 독백 장면 주인공 안미나도 특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현재는 단편 영화를 발표하는 등 감독으로도 활동 중인 안미나는 "그때 첫 작품임에도 감독님이나 선배님들이 북돋아주셔서 늘 신이 난 상태로 연기했던 기억이 있다"며 "독백 신 때도 두 번째인가에 오케이 사인이 났는데 감독님이 헤드셋을 벗고 눈물을 흘리고 계신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이에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자의 첫 연기를 볼 때 일단 마법이 시작된다"며 "단 1초도 현실로 빠져나가지 않는 그 마법의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 또 뭉클해진다"고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감명 깊게 봤다던 한 관객은 감독의 작품이 유독 주인공과 함께 그 주변인이 크게 부각되는 이유를 물었다. <동주>의 친구 송몽규(박정민)가 그렇고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처럼 말이다.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스타>의 박민수, <황산벌> 거시기(이문식)도 마찬가지다. 우뚝 솟은 사람보단 그 옆에서 우뚝 솟게 만들어주는 사람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며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하자고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그렇게 흘러간다"고 답했다.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 이선필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제10회 춘천영화제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이준익 감독과 영화 <라디오스타> 출연 배우들. 육동한 춘천시장이 상영 직후 인삿말을 하고 있다. ⓒ 이선필


영화인들의 우정 

40분 이상을 질문과 답으로 가득 채워진 자리였다. 이준익 감독 30주년 행사를 기획한 김형석 위원장은 "사실 다른 영화제가 하겠지 싶었는데 아무 곳에서도 요청이 없었다더라. 감독님이 수락하셨을 때 내심 기뻤는데 시간이 지나며 큰 영화제에서 다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다"며 "정말 감사하게도 제가 섭외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전화 한 번에 배우들이 모두 오시겠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말처럼 10일과 11일간 배우 이준기, 최희서, 박정민 등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배우들이 춘천을 찾았고 관객과 만남 행사에 참석했다. 이에 따라 해외 팬들도 덩달아 몰리며 모처럼 극장 내부가 인산인해가 되는 풍경이 나오기도 했다. 현장을 깜짝 방문한 육동한 춘천시장은 "영화 삽입곡인 '비와 당신'을 세 번 듣고 왔다. 제가 어렸을 때 춘천이 영화의 도시였는데 그런 모습을 되찾도록 노력하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행사 직전 기자에서 이준익 감독은 "우정의 관계"라며 한걸음에 달려온 배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이번 30주년 행사에 그는 "김형석 위원장에게 낚였다"고 유쾌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현재 그는 차기작으로 12부작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1920년,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또한 행사 후 사석에서 박중훈은 "이번 자리가 너무 기쁘다. 안성기 선배님과는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그리고 <라디오스타>(2006)으로 함께 했는데 극 안에서 협력자였다가 대립자기도 했다"며 "그렇게 치고받고 호흡을 쌓아온 게 박민수와 최곤으로 결실을 맺었다"며 특별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봉만대 감독을 비롯해 방은진 감독 및 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춘천을 찾아 이준익 감독 일행과 함께 소회를 나눴다. 저녁 식사를 하며 30주년 케이크도 소소하게 나눈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10일 춘천의 밤은 그렇게 '영화롭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준익 춘천영화제 안성기 박중훈 안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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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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