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한 사람들을 흔히 '전문가'라 부른다. 학습을 통해 단기간에 높은 기술력을 가지게 된 전문가도 있지만, 수십 년 동안 경험을 통해 취득한 지식으로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자동차 정비사가 엔진 소리만으로도 고장 난 부위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문가가 된 사람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라는 것을 갖게 된다. 마치 무수한 결투를 통해 완성된 무림고수의 무공처럼 좌충우돌,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그들만의 '비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에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경험은 뜻밖에도 '마라톤'

 현병택 IBK캐피탈 대표이사.

현병택 IBK캐피탈 대표이사. ⓒ IBK캐피탈

현병택 (주)IBK캐피탈 대표이사는 1978년 기업은행에 입사한 이래 줄곧 '비즈니스맨'으로 살아왔다. 30년 넘는 세월을 고객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그 역시 자기 영역에서는 전문가로 불릴 만큼 실력을 쌓았다.

이런 현 대표가 지난해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쳐라>(원앤원북스 펴냄)라는 이름의 책을 통해 자신의 '비법'들을 공개했다. 책은 은행원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이 세상 모든 비즈니스맨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쉽고 익숙하게 들린다. 다만 쑥스러웠던 탓일까? 자기 '성공담'을 화려하지 않게 그린다. 자신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영업 비법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조목조목 설명할 뿐이다. 그런데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험은 뜻밖에도 '마라톤'이다.

저자는 마라톤 애호가다. 책 곳곳에서 마라톤을 언급하며 자신의 성공 밑바탕에는 마라톤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명함에 '마라톤 풀코스 ○○회 완주'라는 문구를 넣어 다니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고객에게 "마라톤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소개할 정도라고 한다.

뉴욕지점 근무시절, 시작은 '영업 체력'

 마라톤 애호가로 알려진 저자의 춘천마라톤대회 참가 당시 모습.

마라톤 애호가로 알려진 저자의 춘천마라톤대회 참가 당시 모습. ⓒ IBK캐피탈

이와 같은 '자랑'은, 세상 일 대부분이 그렇듯, 뜻밖의 계기로 시작됐다. 뉴욕지점 근무 시절, 저자는 경쟁 회사 직원들이 우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그야말로 '발로 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발로 뛰는' 경쟁자들을 보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마라톤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혼자,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맨인 그에게는 딱 맞는 운동이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자는 매일 아침 어김없이 달린다고 한다.

이렇듯 출발은 '영업 체력'이었지만, 마라톤은 저자에게 점점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한다. 매일 아침 달리기 위해 출발선상에 설 때마다 늘 마음이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처음 은행에 들어오던 그 시절 패기가 되살아나고, 뉴욕지점에서 경험한 생존본능으로 다시 무장하게 된다고 한다.

마라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서, 급기야 마라톤이 '영업의 세계'로 들어오는 일까지 일어난다. 저자가 만들었다는 '마라톤통장'이란 상품이 바로 그것이다.

마라토너들을 떠올리다 무릎을 치다

"IMF 외환위기 시절,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놓고도 시장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선뜻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주목했던 것이 마라톤이었다. 풀코스를 18번이나 완주했고, 하프코스도 35번이나 완주했던 내 경험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내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때보다 부쩍 늘어난 마라톤 인구, 한번 시작하면 중독성이 강해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마라톤, 그리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마라토너들을 보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통장을 만들면 되겠구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나온 것이 '마라톤통장'이었다. '대박'이었다. 1조 3599억 원의 예금고를 올린 것이다. 이처럼 저자에게 마라톤은 각별하다. 그리고 많은 마라톤 동호인들에게 그렇듯, 저자도 마라톤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누구나 1등을 꿈꾼다. 마라톤 역시 마찬가지다. 출발선상에 섰을 때는 최고 기록을 다짐한다. 문제는 출발신호와 함께 그 다짐이 '욕심'으로 변한다는 것.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과욕을 부리게 되고, 그런 과욕은 오래지 않아 후회로 바뀌게 된다. 몸은 힘들어지고 달리려는 의욕은 점점 떨어진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오고 당장이라도 달리기를 멈추고 싶어진다.

"마라톤의 처음을 기억하듯, 처음 그 마음 돌아봐야"

여기서 멈출 것인가, 더 달릴 것인가.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달리기를 멈추면 온 몸을 휘감고 있는 피로와 고통은 즉시 사라질 것이다. 허나 곧 '아쉬움'과 '패배감'에 휩싸일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 또한 자신이다.

저자가 비즈니스에는 라이벌이 없다고 하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라이벌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고객과 1대1로 마주하는 순간, 더 이상 라이벌은 없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세상에 온 몸으로 부딪치는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은 저자의 메시지다.

"적당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몸에 여유가 생기고 삶이 안이해질 때, 마라톤은 여지없이 내 몸에 회초리를 댄다.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몸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걸음이 무겁고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이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하고 자각하게 만든다. 몸과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잠시 동안 나태했던 나를 꾸짖는다.

그런 면에서 마라톤은 꾀를 부릴 수 없는 운동이다. 조금의 태만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마라톤의 처음을 기억하듯, 처음의 그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함경도 고향 고객에게 '가마니 쌀'을 선물한 이유는?
비즈니스 인생 30년이다. 뭔가 비장의 카드가 있을 듯 하다. 허나 저자의 성공 비결은 한편 단순해 보인다. '고객을 믿어라', '겸손하라', '성실하라', '정성을 다하라' …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교장 선생님 '훈화' 같기도 하다.

허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평범함은 '특별하지 않아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당연한 방법이 당연하게 쓰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나타난다.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담에서는 '기본'의 미덕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자는 클래식 공연 티켓 대신 대중가수의 CD를 선물한 경우를 거론하며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고객에게 2시간 짜리 클래식 공연티켓은 선물이 아니라 고통을 권유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병택 IBK캐피탈 대표이사의 30년 비즈니스 인생 '노하우'가 담긴 저서.

현병택 IBK캐피탈 대표이사의 30년 비즈니스 인생 '노하우'가 담긴 저서. ⓒ 장정욱


한번은 함경도가 고향인 고객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다 '가마니 쌀'을 선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북한 술을 선물해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저자는 그런 '흔한' 선물이 싫었다는 것이다. 가슴에 고향을 묻고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가마니 쌀'이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현대식 포장종이에 담긴 쌀이 아니라 짚을 얽어 만든, 옛날 쌀가마니에 담긴 쌀을 통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정성을 다하라'는 저자의 영업 비결이 결코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고객을 만나기에는 비 오는 날이 기회', '때로는 꾀죄죄하게 입어라', '고객이 부담스러워 할 수 있으니 회사 배지는 달지 말라', '고객이 찾는 아침시간, 화장실에 앉아있지 말라' 등 책을 통해 소개되는 이와 같은 비결은 32가지. 이 책에 담겨 있는 또 다른 볼거리다.

현병택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쳐라 마라톤 IBK캐피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