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포스터 이미지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포스터 이미지 ⓒ 찬란

 
현대 사진의 최전선에 선 작가의 용감한 공개 고백 기록
 
예술의 결과로서 창작물과 예술가를 분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에 따른 일정한 '거리 두기'는 언제나 화두였고, 그 간격의 적정선은 늘 논쟁거리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개념예술' 면모가 두드러지게 된 현대에는 과도할 정도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일체화되어 해석되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결과물의 예술성보다는 구구절절하게 예술가의 생각과 콘셉트가 강조되다 보니 정작 사전학습이 되지 않은 이들에겐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공공연히 나올 지경이다. 즉각적인 이해와 해석이란 불가능에 가까워진 현대 예술작품은 누군가에겐 그저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도저히 개별적으로 독해하기 힘든 나머지 '권위'에 의지해 이식된 정보로 판단을 대체해 버리곤 한다. '비평' 혹은 '평단'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두드러지지만, 과연 현대 예술 분야 전반에서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부호가 적지 않게 붙는다.
 
마르셀 뒤샹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나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현대 예술의 표상일 테다. 이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예술가가 내놓은 개념과 의도를 숙지해야만 한다. 해당 작가에 대한 독해가 이뤄지지 않고는 접근 불가 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기에 난해함은 분명히 과거보다 현저히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예술가의 사회적 기능이 한층 더 높아져야 하지만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바로 상업주의 예술 시스템 아래에서 해당 예술가가 내세우는 관점이나 주장이 온전히 작가의 발언인지 유행에 영합하는 것인지 대중이 감별해야 한다는 문제다. 세계의 흐름이나 문제를 사회과학적 시점과는 다른 결로 풀이하고 발언해야 하는데 이는 고도로 훈련되고 자주적이어야만 가능한 경우다. 예술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룰 때는 더더욱 허들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평단의 호들갑이나 겉보기에 의식 있는 설정이라 혹하지만, 은근히 들여다보면 공허한 경우를 발견할 때 허탈감은 작지 않다.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사진작가 낸 골딘의 작업은 현대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접하지 않기 힘들 만큼 명성을 떨쳐왔다. 반세기에 가까운 장구한 시간 동안 그의 작업은 현대 사진 역사에 상당한 파장과 논란을 일으켰고, 작가 특유의 '스타일'은 패션 화보나 광고 등에서 숱하게 참조 및 인용되어왔다. 그 때문에, 작가가 왜 그런 콘셉트로 사진을 작업했는지 진의는 잊힌 채 오직 '스타일'로만 오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히려 왜곡된 이미지 해석이 적지 않게 벌어지곤 했다. 그의 사진이 일으킨 파급력과 명성을 따져보면, 낸 골딘의 작업을 소개하는 과정은 국내에선 의외로 드물었다. 공식적으로 국내에 출간된 그의 사진집은 발췌 형태 1종에 불과하다. 이것부터 은근한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낸 골딘의 작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의 작품세계 소개가 만만치 않은 과업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예술의 개념적 측면을 누수 없이 온전하게 구현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즉 낸 골딘의 사진 작업과 작가 개인의 삶은 애초 분할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그런 기이한 삶의 이면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일까?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유독 인색한 세계 3대 영화제 중 202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그해 최고 영화라 할 '황금사자상'을 역대 2번째 다큐멘터리로 수상한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그런 궁금증에 답을 내놓았다. 이제 확인하면 될 일이다.
 
대작가의 은폐된 잔혹 가정사 구원자 '사진'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 찬란

 
영화는 2시간 남짓한 분량 동안 낸 골딘의 파란만장한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낸 골딘에 대해 다룬 영상 작업이 그동안 없진 않았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고 작가 본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형태는 거의 최초라 해도 무방할 만큼 그동안 이 저명한 사진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마음껏 풀어주는 내용과 구성이다.
 
기록영화에 도전하게 된 건 사실 작가의 예술세계 조명보다는 어떻게 보면 과외활동에 가까운 관심사 때문이었다. 낸 골딘은 2017년, 'P.A.I.N.(처방 중독 즉각 개입)'이란 이름의 단체를 설립하고 대표 격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는 해당 단체 활동을 알릴 겸 그동안 누구라도 공개하기 망설여왔을 법한 자신의 은밀한 과거를 공개한다. 이 둘조차 하나로 합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구성의 큰 줄기는 ① 감독과 낸 골딘이 함께 한 자택에서의 라이브 인터뷰 ② 작가의 사진과 슬라이드 작업 발췌 인용 ③ 'P.A.I.N.'의 주요 활동들의 조합이다. 대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가 작업과 관련성이 있더라도 일정한 '외도' 형태로 사회참여 캠페인이나 액션에 가담하는 그림이 일반적일 텐데, 낸 골딘의 경우는 위의 3가지 요소가 마치 삼각편대를 이루듯 고스란히 조화를 이룬다. 낸 골딘의 사진이 곧 낸 골딘 자신이고, 낯설어 보이지만 낸 골딘이 직접 참여한 시위와 투쟁이 바로 낸 골딘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대 개념예술의 최전선에 낸 골딘이 꼭짓점으로 위치를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라이브 인터뷰에선 작가의 굴곡 가득한 생애가 구술역사로 소개된다. 작품의 제목을 결정짓게 한 요소처럼 어릴 적 낸 골딘에게 언니 바바라의 존재감과 상실은 일평생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격동의 1960년대 유·청소년기를 보내던 주인공은 대외적으로는 중산층 지식계급 유대인 가정에서 당대 사회운동의 격랑을 비교적 진보적으로 흡수할 수 있었지만, 가족 내부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한계와 취약점 때문에 온전한 보살핌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니 바바라의 비극적 생애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공개되어 왔기에, 사실 자체가 생소한 건 아니지만 낸 골딘의 육성과 자료들로 채워진 화면으로 목격하는 건 별개의 문제일 테다. 그렇게 외양과는 다른 가정사의 비밀스러운 지점 때문에 낸 골딘의 청소년기는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제자매의 비극은 전이되게 마련이다. 부모 역시 민감한 자녀를 대할 방법을 숙지하지 못한 가운데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된 10대를 보내던 낸 골딘을 구원한 건 바로 그가 평생을 함께 하게 된 '사진'이었다. 그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실어증에 걸리다시피 타인과 대화를 단절하고 살던 자신에게 언어이자 표현이 되어준 게 사진이었다고 밝힌다. 히피 운동과 1968년을 경유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개별 가정 내에선 가부장제 권위와 억압, 그 사이의 방치가 일반적이던 시절에 정체성 위기를 겪던 낸 골딘은 히피풍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장한 대안학교에서 숨통을 틔고 친구를 사귀며 세상과의 끈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스턴의 예술대학에 진학해 사진을 전공하면서 그는 자신을 편견 없이 받아주는 친구들과의 교류를 이어갔고, 그들은 낸 골딘의 첫 번째 모델 집단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인연은 생애 내내 이어질 운명이었다.
 
자신이 속한 하위문화 공동체의 일대기를 담은 사진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 찬란

 
우리가 예술로서의 사진을 말할 때, 누구나 쉽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대개 머릿속에 떠올리는 스타일은 흑백 색조-가로 비율의 액자일 테다. 그저 무의미한 찰나가 아니라 프레임 속 이미지에 담겨 있는 사진가의 관점과 시각, 피사체가 함축한 의미와 시대적 타이밍이 조화를 이뤄내야 '예술'적 사진이라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다. 그런 고정관념 탓에 낸 골딘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작업이 예술 사진과 동떨어져 있다는 격한 비판에 노출될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진 순서에 가까웠던 셈이다.
 
히피 운동에서 비롯된 격렬한 하위문화(Sub-Culture) 혹은 반(反)문화에 둘러싸인 일상을 살던 낸 골딘은 그의 주변에 가득한, 하지만 평범한 이들에겐 낯설고 생소하기 따름인 소수자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필름 값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심의 드러나지 않는 구석에는 성 소수자들이 넘쳐났고, 자신과 일상을 공유하고 교류하던 이들의 찰나를 낸 골딘은 폼 잡고 구도 설정해가며 뜸을 들이는 게 아니라 그저 문득 속사로 찍어댔다. 그렇게 가득 찍어낸 사진들은 곧 낸 골딘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연대기이자 일상 라이브러리로 기능한 셈이다. 그는 초기 작업부터 사진 게시와 병행해 슬라이드로 동영상화한 전시를 선보여왔다. 영화 보기를 즐겼고 존 세일즈 같은 미국 독립영화의 상징적 인물들과 교분도 깊었기 때문이다.
 
그런 낸 골딘의 작업과 그 배경이 된 삶은 히피와 펑크 문화를 우리가 연상할 때 떠올리는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골고루 포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수자나 혹은 급진적 문화 운동에 천착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동시대 문화혁명의 첨단에 서 있었지만, 그런 전위들이 처한 난국에도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던 셈이다. 양성애, 마약, 성노동 등 실정법과 사회 통념적 윤리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거듭하며 주인공과 동료들은 질풍노도의 20~30대를 보낸다. 낸 골딘의 사진에는 특히 급진적인 성 해방과 퀴어들의 삶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런 지속된 작업은 1986년 발표된 그의 첫 번째 사진집 <성적 의존의 발라드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로 일차 결실을 이룬다. (해당 작업은 발표 후에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낸 골딘의 사진은 자신의 눈에 비친 도시의 컬러와 풍경으로 가득하다. 흑백이 아니라 천연색, 하지만 밝은 원색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대도시의 단면을 떠올릴 때 상상하는 탁하고 음울한 색채감이 그의 작업에 가득하다. 밝고 환하게 인위적인 표정을 짓는 인물들 대신에 낸 골딘의 사진 속에는 각박하고 험난한 삶을 살며 가난에 찌들고 상처받은 이들의 자연스러운 표정들로 채워진다. 외로움, 쓸쓸함, 갈증과 욕망, 그 직후의 공허함이 그의 사진을 보고 나면 드는 감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푸르스름한 미국 대도시 뒷골목의 새벽과 이물감이 가득한 섹슈얼한 장면들, 하지만 전혀 선정적이라기보단 슬픔이 배어나는 풍경이 그동안 주류 사진예술에선 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이미지로 수면 위로 분출하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라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특성을 잘 포착해내 공적 역할과 사적 명성을 골고루 획득한 운 좋고 영민한 예술가로 낸 골딘의 경력을 이해하기 안성맞춤일 테다. 하지만 낸 골딘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연인과 나누던 섹스 장면이나, (그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이기도 한) 헤어진 연인에게 폭행 당해 만신창이가 된 자화상처럼 그의 카메라는 사진이 본질적으로 총으로 대상을 저격하는 형태와 동일 방향으로 접근하는 취약점을 돌파하려는 고군분투에 직면한다. 만약 자신은 카메라 뒤로 숨은 채 주변의 친밀한 이들만 사진에 담았다면 낸 골딘에겐 수많은 착취 논란, 그리고 법적 소송이 함께 했을 테다. 하지만 누구나 감추고 싶은 치부, 그리고 가장 비참한 순간을 용맹하게 고백하듯 펼쳐버리기에 그런 함정을 단칼에 무력화시키는 괴력을 펼쳐 보이기에 이른다. 누가 비슷한 시도라도 함부로 저지를 수 있을까.
 
카메라를 넘어 삶과 투쟁으로 작업을 확장하는 예술가의 초상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 찬란

 
사진작가로서의 성공과 명성을 획득하긴 했지만, 그의 정체성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속한 공동체 그룹에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바로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라는 신종 질병의 창궐이다. 성적 소수자가 태반이던 지인 중 상당수가 이 전대미문의 질병에 노출되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만, 문제는 주류 사회가 이 신종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공공의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희생양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다. 마침 미국 대통령은 신보수주의(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이었고, 극우 개신교 구미에 맞게 정책을 펼치던 시절이다. 지금도 악명높은 미국의 선별적 의료보험 체계 아래에서 낸 골딘의 지인 상당수가 제대로 된 공공의료 보호막 바깥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실제 보건의료적 판단보다는 개인의 성적 일탈이나 방종으로 인한 '천벌'처럼 에이즈를 다루면서 그 희생은 고스란히 성적 소수자들에게 전가되었고, 극우세력의 캠페인은 이들을 음지로 내몰아 고립시켰다. 낸 골딘은 친우들의 때 이른 죽음을 연거푸 겪으며 비애와 분노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즈의 확산과 성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공격은 사회적 의제로 자연스레 대두되었고, 낸 골딘과 동료들은 정치 캠페인을 펼치며 저항했다. 영화 속 일갈처럼 예술과 섹스와 정치는 구분될 수 없었다. 해당 시기에 마돈나 같은 팝 음악 아이콘들 또한 극 보수화되어가던 당대 미국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총동원해 마이너리티와 하위문화 집단을 보호하려 애썼고, 이는 '성정치'로 국내에도 소개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 낸 골딘의 좌절과 저항은 영화 속에서도 비중 있게 소개되지만, 차마 지켜보기 힘들 정도의 좌절과 억제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사회적 살인'이라 해도 무방할 당시 미국 주류의 의도적 외면과 책임 전가를 위한 공세는 얼마 후 미국을 추종하던 한국사회 보수진영에서도 판박이로 도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퀴어 페스티발 때마다 벌어지는 반대진영의 주장은 지금 현재도 그 시절 미국 보수 개신교단 캠페인과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세속적 성공과는 별개로 그렇게 1980년대의 광풍은 주인공에게 거대한 상처로 남았고, 본인 역시 이 시기 개인사로 인해 약물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약물중독에서 재활하기 위해 낸 골딘은 의료진의 도움으로 지난한 치료에 돌입한다. 우리 통념처럼 약물중독은 대번에 어디 감금해서 중단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별 과정을 통해 의존성을 줄여나가는 배려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가 약물 의존도를 줄이면서 중독 금단현상을 최소한도로 억제하기 위해 복용하던 처방전이 새로운 문제가 되어버렸다. 당시 낸 골딘을 포함해 미국 내 약물중독 재활을 시도하던 이들이 가장 흔하게 처방을 받던 약은 바로 제약회사 '퍼듀'가 내놓은 마약성분 함유 진통제 '옥시콘틴'이다. 그런데 이 진통제는 중독증세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독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지녔다. 하지만 이윤에 눈이 먼 거대 제약회사는 그 중독성을 축소하는 선전으로 은폐해버렸다. 그 결과 추산 50만 명 이상이 부작용으로 미국 내에서만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된다.
 
끔찍한 1980년대 에이즈의 기억을 가진 낸 골딘으로선 이런 모럴 해저드와 공공의 방기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차원의 사회적 범죄행위였다. 그는 명망 있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리고 주변에서도 도시락 싸서 만류할 싸움에서 선봉에 선다. 사법기관과 미디어의 비호를 받는 거대 자본과의 투쟁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작가의 위상이 방패가 되어줄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표 자격으로 낸 골딘은 'P.A.I.N.'의 주요 활동에 참여해 골리앗과의 투쟁을 지속한다.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에 빛나는 <시티즌 포> 등으로 사회고발 성격 기록영화의 장인으로 공인된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을 찾아가 자신들의 싸움을 기록해 달라고 제안한 것도 낸 골딘 본인이었다.
 
그렇게 원활한 연결을 통해 'P.A.I.N.'의 주요 투쟁은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겨진다. 이는 현대미술이 갖는 상업주의 의혹과도 직결되는데, 거대 제약자본이 이미지 세탁을 위해 미술관과 박물관에 막대한 기부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메트로폴리탄, 루브르, 테이트, 구겐하임 같은 누구나 한 번 쯤 방문하길 선망하는 세계적 명성의 예술 전시장에는 어김없이 퍼듀 제약회사를 소유한 거대 가문의 후원증서와 가문의 이름을 딴 시설이 존재했다. 낸 골딘은 사회적 평판과 함께 자신이 가동할 수 있는 힘-해당 가문의 기부와 함께 자신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는-을 깨닫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휘두르기 시작한다. 감독의 전작들에서 소름돋던 순간들처럼 거대 자본은 단체 주요 활동가들을 감시하고 회유와 협박을 진행하지만, 본인 혹은 소중한 이들을 잃어버린 대상자들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세계 유수의 예술기관 내에서 게릴라 전투처럼 낸 골딘과 동지들의 기습 시위와 저항이 이어진다. 그런 투쟁은 낸 골딘에겐 과외활동이 아니라 자신 역시 그 안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대 예술의 상업주의와의 영합에 대한 내부 저항 자체였을 법하다.
 
고도로 계산된 공적 환기와 예술가 사적 기억의 융합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스틸 이미지 ⓒ 찬란

 
영화는 그런 굵직한 줄기들을 솜씨 좋게 조합해 2시간을 팽팽하게 질주한다. 총 6개 챕터로 구분된 이야기는 각각 고유의 서사 전개를 담당하며 거의 한 순간도 느슨해지길 거부한다.
 
<1> 무자비한 논리
: 라이브 인터뷰를 통해 낸 골딘의 어릴 적 내밀한 이야기와 언니의 불운한 최후를 풀어내는 사적인 영역 위주 구성
 
<2> 자산
: 억압적 가정에서 생존을 위해 탈출한 뒤 방황하던 낸 골딘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줄 동료들을 만나고 사진으로 언어를 대신하게 되는 과정
 
<3> 발라드
: 불안정 속의 균형을 마침내 찾은 낸 골딘이 자신이 그 일원인 마이너리티 공동체를 기록하는 작업에서 한 순환을 획득하는 과정과 이후의 거침없는 행보 소개
 
<4> 우리의 사라짐에 저항하며
: 에이즈 도래와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생존투쟁의 격렬한 분위기 해설
 
<5> 도피 수단
: 본인과 주변의 비운에 지친 낸 골딘이 약물중독에 빠지고 재활하기 위한 필사의 투쟁,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정된 운명처럼 시작된 ''P.A.I.N.' 활동
 
<6> 자매
: 현대예술의 진정성과 공익적 책무가 결합된 투쟁의 승리와 그 과정에서 얻은 가족들, 그리고 오랜 유년기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
 
그렇게 영화는 장구한 시간과 과정을 거치며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에서 출발해 자신이 안식을 누릴 공동체를 찾아내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진을 배워 일가를 이룬 주인공이 친우들의 비극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세상과 싸우며 마침내 두려웠던 자신과 가족의 과거와 대면하는 일대기를 완성한다. 예술가를 소개하는 기록영화에서 그가 얼마나 대단하며 그의 작업이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가 웅변하는 전형성과는 달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지독히 개인적인 게 결국 정치적이라는 오래된 정치운동 테제를 구현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그에 걸맞은 완결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낸 골딘이라는 사진가가 가진 독보적 면모와 다면성은 논쟁적 인물과 사회모순을 담는 데 정평이 난 로라 포이트라스에 의해 제대로 극적 완성도를 뽑아냈다. 평소 낸 골딘의 사진을 접해온 이들이라면, 혹은 <시티즌 포> 이후 감독의 신작을 기다렸다면 양자를 공히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긴장감과 후련함을 겸비한 작업이다. 하지만 낸 골딘의 방대한 작업 중 특히 그의 첫 작업이자 대표작이라 할 '발라드' 시리즈에 집중된 소개란 점은 언급하고 싶다. 작가의 사진 세계는 20세기 후반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이미지 외에 확장과 실험을 거듭해 나가는 중이기에, 이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사진 이미지만으로 낸 골딘이라는 사진계의 거목을 소화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영화가 집중한 주제 때문에 낸 골딘의 반골적 기질과 정체성이 극명하게 구현된 초-중기 사진 위주로 공개된 것은 합리적 구성이기도 하다.
 
아울러 영화 속에서 낸 골딘의 현재 모습, 사회참여 면모에 주목한 이들이라면 8부작 미니시리즈 <돕식: 약물의 늪 Dopesick>(2021) 속에 상세하게 묘사된 옥시콘틴 사태를 참조하면 좋을 법하다. 이 다큐멘터리 속에서도 충분히 절절하게 잘 해설되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거대한 재앙적 사건인지 체감하고 싶다면 말이다. 두 시간 동안의 다큐멘터리는 비록 낸 골딘이라는 현대 사진의 거장이 구현한 장대한 경력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회적 타살 쟁점에 대한 이해도 100% 구현하기엔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너무나 충실한 태도로 양립하기 쉽잖은 구성요소를 조화롭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우리가 간혹 접하게 되는 현대 예술에 품게 마련인 근본적 의문을 정면으로 다루는 데 의의가 크다. 그런 질문들을 온전히 해소해 주진 않을지언정 그에 대한 모순을 한 예술가의 굴곡 많은 삶과 투쟁을 통해 제기하는 데엔 명확히 한 획을 그었다. 확실히 요즘 범람하는 예술가 자랑 영화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작품정보>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2024│미국│다큐멘터리
2024.05.15. 개봉│122분│15세 관람가
연출 로라 포이트라스
출연 낸 골딘
수입/배급 찬란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공동제공 소지섭, 51k
 
2022 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낸골딘모든아름다움과유혈사태 낸골딘 로라포이트라스 다큐멘터리 시티즌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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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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