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강도단' 충분히 현실성 있게 보이는 이유

 

육혈포 강도단 영화 포스터 주인공 할머니들을 연기한 세 여배우, 김혜옥, 나문희, 김수미씨

▲ 육혈포 강도단 영화 포스터 주인공 할머니들을 연기한 세 여배우, 김혜옥, 나문희, 김수미씨 ⓒ 네이버, 이경윤

영화 <할머니 강도단>의 포스터를 보고, 또 영화의 복고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제목을 보고 이 영화가 재미있을 것이다라든지, 혹은 감동적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도 나 뿐만이 아니라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포스터부터 다른 영화 포스터와 현저히 다르지 않은가? 여자 세 명이 등장하는 포스터인데, 젊은 여자들도 아니고, 물론 연기파 배우들이시만 주인공 역할보다는 주인공의 어머니나 할머니 등의 조역에 주로 등장하던 나이 드신 분들이(우리나라 영화에서 중년 이후의 여배우가 주연인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은가? 연령에 의한 차별은 영화계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터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하철의 광고 문구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노인이라는 의미를 '노하우가 많은 인력'이라고 풀이해 놓은 사전을 펼쳐 놓고 '노인'에 대한 우리 인식을 바꾸자는 호소가 들어 있는 공익광고였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노인'을 그렇게 존중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에다가 노인인구가 점점 증가하여 초고령사회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제 곧 사회의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될 '노인'에 대한 인식은 어쩔 수 없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영화 속의 할머니들이 강도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어쩌면 그들의 피치 못할 이유 속에는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많은 노인들의 현실이 그려져 있다. 사회에서는 퇴물 취급을 받지만, 엄연한 소비계층이고 노인들도 욕구가 있다. 노인복지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노인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시사하듯이 노인들의 취업기회를 넓히고, 노인복지 혜택의 폭을 더욱 넓혀야 할 것이다. 노인복지보다 더 필요한 것은 초고령사회에 걸맞은 정년연장이나 노인들이 사회의 생산인력으로 보람을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일터의 확대일 것이다. 영화속의 할머니 강도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세 할머니의 캐릭터와 노련한 연기가 주는 재미와 감동

 

영화 속의 은행강도가 된 세 할머니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8년간 세 할머니가 작은 월급, 혹은 좀도둑질을 해가며 모은 837만원이라는 돈을 보상해 주지 않는 은행은 노인에게 냉혹한 사회의 얼굴을 대표한다. 그녀들의 강도 행각이 분명 나쁜짓임에도 불구하고 동정을 받는 이유이다. 영화 속의 할머니들은 갈 데까지 간 사람들로 그려진다. 이제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으로 범죄를 선택한다.

 

영화는 이런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강도가 된 세 할머니들의 좌충우돌 범죄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드라마를 통해 관객들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마음대로 한다. 할머니들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안타까운 대상이며 그 행동의 동기가 안타깝고 딱하게 여겨져 웃다가도 눈물이 난다. 

 

세 할머니의 캐릭터 또한 분명히 다르고 독특하다. 소심한 신자 할머니, 강단 있는 정자 할머니, 정자 할머니가 오토바이 몰고 나올 때 <델마와 루이스>의 자동차 추격신에서 느꼈던 통쾌함과 자유로움이 일순간 느껴지기도 했다. 김수미씨의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걸쭉한 웃음을 선사한다. 세 할머니를 돕는 임창정은 어리버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의리를 발휘하는 귀여운 남자다.

 

또한, 할머니들보다 더 나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어서 할머니들의 범죄는 오히려 그것에 비하면 죄질이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범죄가 동정을 받기도 하고, 일면 할머니들의 소박한 꿈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마음과 달리, 영화는 할머니들의 꿈을 성취시켜주는 방향으로 끝을 맺지는 않는다. 만일 할머니들이 꿈을 성취했다면, 비록 범죄지만 '그래, 노인들도 뭔가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 는 식의 단순한 코미디 영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할머니들이 범죄로는 꿈을 이룰 수 없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노인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할 여운을 남겼다. 

 

예상외의 흥행을 거두었던 영화 <과속스캔들>이 가족애의 확인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면, 이 영화는 할머니들의 의리와 우정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정자 할머니의 유골을 강물에 뿌리면서 남겨진 두 할머니들이 '정자 빼놓고 우리끼리 갈 수는 없잖아. 누가 보내줘도 가기 싫어'라고 했을 때, 내 뒤에서 영화를 보던 어떤 분이 "그렇지, 맞지. 갈 수 없지" 라고 맞장구를 치시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얼마 전에 친구분이 뇌일혈로 쓰러지셨을 때, 밤잠을 못주무시고 걱정하시던 일이 생각났다.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 사정 알고 노인들이 노인 사정을 아는가 보다.  노인들은 공감대가 분명히 형성될 수 있는 계층이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분들이다. 기회를 준다면 젊은 시절 못했던 열정을 쏟으며 살아온 세월이 가르쳐 준 힘으로 어떠한 일도 열심히 해 낼 잠재력이 있는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속 세 여배우들이 독특한 캐릭터를 잘 연기하시며 환상의 연기흡을 보여주시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 영화를 코미디 영화라고 한다면, 영화 수준이나 재미에 대해 흡족하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외면하던 노인문제를 건드려 준 것만해도 충분히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영화, 본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3.21 14:1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이버영화, 본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육혈포강도단 김수미 나문희 김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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